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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IMF시대 외국인노동자 시련

체불임금 못받고, 해고때도 영순위

이른바 'IMF시대'로 들어선 이 겨울, 외국인노동자들은 어느때보다도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도산한 회사로부터 체불임금을 받지 못하는 숫자가 늘어나고, 해고때는 1순위로 '선정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어느정도 돈을 모은 외국인노동자들은 서둘러 한국을 떠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빚도 지고 일자리도 얻지 못한 외국인노동자들은 오갈데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소장 김해성)은 이미 20여 명의 외국인노동자들로 포화상태가 되어 버렸다. 일부 산재피해자들도 있지만, 오갈데 없는 실직노동자가 대다수다. 또한 연일 실직과 체불임금 문제에 대한 상담이 폭주하고 있으며, 평소 하루에 한두건이던 출국 문의 전화도 20-30건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일자리 못 구해 빚진 채 귀국길

지난해 1월 한국에 온 다우드 알리(35·방글라데시) 씨는 오는 12일 눈물을 머금고 귀국길에 오르기로 했다. 처음 일자리에선 3개월간 일하고도 월급 한 푼 받지 못했고, 그후 4개월 가량 근무했던 직장은 부도로 문을 닫아 버렸다. 알리 씨는 일자리마저 구하기 어려워지자 귀국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 오기 위해 고용브로커에게 지불한 돈은 5백만원, 하지만 한국에 와서 번 돈은 2백여 만원. 곧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의 어깨엔 3백만원 가까이되는 빚만 걸쳐 있을 뿐이다. 귀국이 가능한 알리 씨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아까쉬(28·방글라데시) 씨는 "집에 갈 돈도 밥 먹을 돈도 없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한국의 경제위기를 미처 알지 못한 채 지난해 11월 한국에 온 아까쉬 씨와 동료 2명은 경기도 광주의 영세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과 20일만에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직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아까쉬 씨는 "어써 빨리 일자리를 구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환율폭등으로 인해 사실상 임금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도 외국인노동자들에겐 고통스런 문제다. 중국동포 엄승옥(38) 씨는 지난해 10월 남편의 산재 사망 보상금으로 8천만원을 받았지만, 은행직원이 며칠 기다리라고 하는 사이에 환율이 두 배로 올라 졸지에 4천만원을 잃게 됐고, 이 때문에 귀국도 못하고 있다. 또한 대다수 외국인노동자들도 고국에 송금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외국인노동자 '토사구팽'

국내 노동자들도 이미 해고와 실업 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데 특별히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서만 대책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라고 해서 더 차별받고 버림받아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있게 제기된다.

구미 외국인노동자상담소의 김현 간사는 "회사가 부도났을 때 한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는데 외국인노동자들은 못받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해성 목사(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소장)는 "여성노동자를 감원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부당하듯, 외국인이라고 해서 고통을 더 주는 것 역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3D업종에서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은 뒤, 필요없으면 버리고 마는 정부의 비뚤어진 정책이 오늘의 상황을 초래했다"며 "이는 당장의 이해관계 때문에 국가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소탐대실' 행위"라고 비판했다.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양혜우 사무국장도 "외국인노동자의 집단자살 사태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새로 고용을 창출하기는 어렵지만, 체불임금과 산업재해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해선 적절한 보상을 한뒤 돌려보내는 길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국민이기주의 버려야

나라가 어려워지면서 '내 몫부터 챙겨야 된다'는 이기적 풍조가 일부에서 퍼져나가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국내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해 외국인노동자의 희생은 어쩔수 없다는 국가이기주의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동반자이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외국인노동자들을 이제 와서 사지로 내몰 때, 다시한번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