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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별기고>“만화가 등 뒤에서 칼을 들이대는 청소년보호법”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로 어수선했던 올해 초, 민자당 박종웅 의원의 이름으로 입법 제출된 법안이 통과되었다. <청소년보호법>. 이 법안은 모든 대중문화매체를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것으로 전제하고 이것들을 규제하겠다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도둑을 잡기 위해서 모든 국민을 도둑으로 전제하고 모든 국민들의 생활을 감시하고 규제하려는 듯이…

특히 만화와 관련해서는 그 동안 우리만화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서 사전심의를 해오던 (사단법인)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간륜)가 - 공륜의 영화 사전심의가 헌재에서 위헌판결을 받는 와중에도- 그들의 오랜 바람대로 법적 기구로 승격하였다. 또한 사후심의체계와 유통단계의 규제강화를 내걸면서 일부 만화가들을 현혹했지만 최종결정권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갖도록 함으로써 사전심의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전에는 만화창작자의 앞에서 칼을 들고 있었다면 이제는 뒤에서 칼을 들고 있는 형국으로 오히려 검열은 더 강화되었다.


검찰의 만화사냥과 만화가의 분노

그러던 차에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의 문제로 지적되던 청소년들의 폭력문제가 소위 <일진회> 사건으로 갑자기 사회이슈화 되었고 검찰은 이들이 일본 불법폭력만화로부터 이름을 따왔으며 만화를 보고 흉내를 내어 폭력학생이 된 듯 몰아갔다. 그리고 이전에 그랬듯이 대대적인 만화사냥이 시작되었다. 당대의 최고의 만화가중의 한 사람인 <공포의 외인구단>의 작가 이현세 씨의 <천국의 신화>가 4편까지만 나온 상태에서 검찰로부터 음란물로 규정받아 소환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소식은 검찰의 과격한 만화사냥을 우려 속에 숨죽이고 지켜보던 만화가들과 시민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한편으론 한 기독교 관련단체가 주축이 된 시민단체에 의해서 고발된 3개 스포츠신문의 만화 등 연재작가들이 ‘음란조장 연재작가’로 검찰에 고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대대적으로 만화관련 단체들이 모여서 이에 대한 비상대책을 논의하고 결국 7월 25일「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범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 뒤 검찰 항의방문, 성명 발표와 만화작가들의 절필선언 및 그에 따른 성인만화잡지의 휴간이 결정되었다. 또 만화가들이 참여하는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만화사랑 서명운동‘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스포츠 연재만화작가들 거의 대부분이 검찰로부터 불구속 기소 또는 약식기소에 의한 벌금형과 잘못을 인정하는 서약서 제출을 조건으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특히 이들 중 <임꺽정>의 작가 이두호 씨가 포함되어 있음으로 해서 만화가들의 분노의 불길은 더욱 치솟았다.

도대체 검찰이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혹시 일본만화를 들여오기 위해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들을 모두 죽이기로 하는 것은 아닌가?


청소년유해매체물 목록 발표

그 와중에도 정부에서는, 더욱 정확하게는 문화체육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는 지난 10년간의 만화작품 중에서 사단법인이었던 간륜이 이미 심의하였던 자료를 그대로 하여 ‘청소년유해매체물 목록’을 발표했다. ‘성인만화 = 청소년유해만화’라는 단순무식한 등식으로!

이 목록표에는 이희재 씨의 <성질수난>을 비롯해 허영만 씨의 <오, 한강!>과 <오늘은 마요일>, 그리고 문체부 직원들이 흠뻑 빠져 읽었던 허영만 씨의 <들개이빨>등이 치욕스럽게 올라가 있었고 이는 그야말로 정부가 만화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다.

이제 만화가들에게는 다른 길이 없다. 결국 만화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던가 아니면 살아있으나 죽은 목숨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상상력을 권력 앞에 상납하던가 둘 중의 하나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국가 권력에 의한 무식한 검열은 결국 그들이 표방하는 청소년보호도 하지 못하거니와 전 국민들의 문화의식을 옹졸한 틀거리에 가둬 둠으로써 사회발전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동수(만화가, 우리만화발전을위한연대모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