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기획> 안기부와 인권 ⑨ 안기부의 개혁방향

지금까지 8회에 걸쳐 안기부의 인권침해 문제를 짚어 보았다. 지난해 날치기 통과된 안기부법에 대한 재개정이 6월 임시국회에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 기획을 준비했다. 하지만, 임시국회에서 안기부법은 여야간에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기획을 연재하는 동안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날치기에 대해 최초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안기부가 국가보안법 제7조(고무․찬양등)와 제10조(불고지)에 대한 수사권을 되찾아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던 기도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비겁하게도 단지 절차상의 문제만을 짚는 한계를 나타냈고, 다음 열리는 국회에서 다시 안기부의 강력한 로비와 여당의 힘으로 날치기 안기부법의 내용이 정식 통과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황장엽씨의 기자회견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공안정국을 조성하려고 집착했던 안기부가 이 문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안기부법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중요한 고비를 맡게 될 것이다.


접근하기 어려웠던 안기부

이번 기획을 연재하면서 우리가 먼저 부닥친 문제는 자료와 연구의 부족이었다. 자료는 기껏해야 언론기사와 그간 안기부에 의해 피해를 당한 사례집, 몇권의 단행본이 있을 뿐이었다. 본격적인 연구서는 석사논문 하나밖에 없었다. 하기야 국회의원들조차도 안기부 요원들의 신원확인을 통과해야만 정보위원회에 입장할 수 있고, 모든 문서는 대외비로 처리되며, 기자들도 기껏해야 공개해도 별 지장이 없는 것만을 브리핑받는 정도니 민간 인권단체로서 안기부에 접근하는 것은 당연히 힘든 것이다. 어쨌건 안기부의 인권침해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여러 구호들이 난무했지만, 이제는 보다 장기적으로 안기부와의 싸움을 준비해야 할 때임을 인식하게 된 것은 소중한 성과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정리를 통해 필진들은 인권이 국가안보보다 우선한다는 관점을 유지하려 했고, 안기부를 인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분명 안기부는 일부 진보세력이나 정치적 반대자들을 감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찰을 진행하고, 전 국민을 공작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누누히 강조하고자 했다. 필진들의 호소가 연재를 마무리하는 지금에 돌아봤을 때는 미흡한 것임에 틀림없다.


풀어진 안기부에 대한 경계심

“모든 공안정보기관은 독재와 폭압, 전쟁과 내전, 이념과 대립의 소산이다.” 안기부도 군사독재의 집권, 폭압정치의 소산임을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이 물러난 지금까지도 안기부는 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권력의 본질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초로 안기부의 수사권한을 축소하는 개혁을 단행했던 현정부도 안기부의 정보력과 공포의 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안기부의 조직보존을 위한 몸부림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지난 94년 주사파 파동, 95년의 김동식사건, 96년 한총련 학생들의 연세대 사태와 북한 잠수정 사건, 올해 황장엽 사건 등을 통해 안기부는 자신들의 조직을 보존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경주했고, 급기야 보수세력의 지원 속에 공안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풀어진 안기부에 대한 경계심 탓이다. 과거엔 ‘안기부의 해체’ 주장도 제기됐었지만, 이제는 ‘안기부의 개혁’ 주장마저도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공포기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그럼, 안기부를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공포의 권력기관에서 끌어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안기부를 공포의 권력기관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잘못된 정보수집관행을 단호히 바로잡고 엄격한 통제장치를 확립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안기부의 과거불법비행에 대해 진상규명과 문책, 기타 필요한 과거청산작업을 수행하는 일, 둘째 그에 바탕하여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각종 민주적 법제개혁을 이뤄내는 일, 셋째, 북풍한파가 몰아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평화구조로 정착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곽노현, 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적 개정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지료집, 1997. 2. 27. 60쪽>

우선은 안기부법의 재개정을 통해 수사권을 박탈하고, 정보수집의 범위를 해외정보만으로 국한시켜야 한다는 대다수 논자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당장은 날치기된 안기부법을 원 상태로 돌려놓은 일만이라도 이뤄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기부는 언제고 다시 자신들의 ‘화려했던 과거로의 복권’을 획책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환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안기부감시모임’을 제안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안기부의 행태를 감시하고, 이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가 보태지고, 안기부의 인권침해와 권력남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항의(사법적인 수단까지 포함하는)하여 국민여론을 안기부의 권한 축소와 통제로 나아가게 하는 일, 이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안기부가 개개인의 파일을 만들고, 그를 통해 국민들을 공포로 장악하듯이 국민 개개인이 안기부를 감시하는 눈이 되고, 항의하는 입이 될 때만이 안기부는 정권안보를 위해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권력기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