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기획> 안기부와 인권 6 - 안기부의 정치개입

‘안보’ 내세워 국민 기만 서슴지 않아


빛바랜 안보이데올로기가 빚어낸 희대의 웃음거리(문화일보 1993. 6. 17)
‘국가안보용’인가 ‘정권안보용’인가(조선일보 1993. 6.18)
불신과 낭비의 사상 최대의 기념비적 공사(한겨레 1988. 8. 8 <워싱턴 포스트> 8월1일자 재인용)

‘둑’으로 전락한 ‘평화의 댐’에 대한 언론의 비난이 일제히 쏟아진 것은 93년 6월. 86년 10월 당시만 해도 북한 금강산 댐의 저수량이 최대 2백억t까지 이를 것이라며 이를 수공에 사용한다면 12-16시간만에 수도권이 완전 수몰화될 것이라는 가상 시나리오로 연일 신문지상이 떠들썩했다. ‘올림픽 무산을 위한 북한측의 제2남침 음모’ 에 맞선 평화의 댐 공사 착공을 알리던 87년 2월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93년 6월 28일 안기부 창설이래 처음으로 진행된 특별감사에서 감사원(감사원장 이회창)은 평화의 댐이 정권안보용이었음을 밝혀냈다.

정부와 안기부는 무엇 때문에 북한의 수공위협을 그토록 과장했을까.

86년 가을은 야당의 직선제 개헌투쟁, 유성환(신민당) 의원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라는 국시발언, 86년 아시안 게임에 대한 학생들의 반대움직임, 건국대 사태 등등으로 정국은 정말로 혼미했다. 정국을 돌파할 아무런 카드도 없던 정부는 ‘평화의 댐’으로 한동안 국민의 관심을 붙잡아 놓을 수 있었다. 수도권이 물바다가 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어린이의 저금통까지 동원해 6개월만에 무려 6백61억 원의 국민성금이 모아졌다. 온 국민이 정권안보 논리에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셈이다.


정치공작엔 여당도 희생자

안기부의 정권유지를 위한 정치관여 활동이야말로 안기부의 중요한 존재 이유다. 정권안보를 위해서라면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김형욱 4대 정보부장의 정치공작은 여당 의원들을 상대로도 이뤄졌다. 여당내 공작 사찰대상은 주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가로막을 지도 모르는 잠재세력과 김종필 공화당의장 및 그 계열이었다.

64년 10월 24일 공화당 초선의원 이만섭 의원(14대 민자당 전국구)은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재회를 주선하기 위한 「남북가족면회소 설치 결의안」을 제안했는데, 야당의 김대중, 김영삼 의원, 여당의 박준규 의원을 포함해 45명이 서명하고 국회 본회의를 거쳐 외무부로 넘겨진 상태에서 결의안은 결국 사장되고 만다. 당시 김형욱 부장은 대북문제는 정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냉전시대의 논리를 들이대면서,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이 의원을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겠다고 협박했다.(김충식,『남산의 부장들』① ,조선일보사, 1992, 116-117쪽).


훈령조작에 놀아난 이산가족의 아픔

92년 9월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당시 발생한 대통령훈령 조작사건에서 우리는 안기부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사건은 93년 11월 국회에서 이부영(민주당 부총재) 의원의 폭로에서, 11월 30일 감사원의 <훈령 조작의혹사건>에 대한 특별감사로 이어졌다.

당시 평양에서 열린 8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서 정부는 동진호 선원의 송환요구를 북쪽이 수용하지 않더라도 이인모(당시 76세, 비전향장기수) 노인을 송환할 양모 의사가 있었다. 이 노인의 송환이 결정되면 이산가족방문단 상호교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이 씨(남북고위급회담 대변인)는 급히 서울의 안기부에 알려 ‘기존 입장을 고수하라’는 강경한 입장을 담은 가짜 훈령을 만들어 보낼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 사건은 안기부가 남북대화를 주도해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집행 과정에서 안기부가 갖는 위세를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이동복 전안기부장특보는 공직에서 물러났다. 비록 한 사람의 안기부직원이 사퇴했다고 하지만 그가 가져온 여파는 크다. 8차 회담 결렬로 남북관계는 급속히 차가워졌고, 이산가족의 고향방문단 실현과 판문점 면회소 설치는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보위원회 제기능 못한다

문민정부 들어 이러한 안기부의 행동에 제동이 걸린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93년 12월 안기부법 개정으로 국가보안법 제7조와 제10조에 대한 수사권을 박탈했고, 안기부가 행정각부의 업무에 개입하는 통로로 비판받은 정보조정협의회를 폐지하고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에 정보위원회를 설치하였다. 당시로서 정보위원회의 설치는 국회가 안기부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정보위원회는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

다음 한 비서관의 말은 ‘정보위원회를 통한 국회의 안기부 통제가 과연 가능한가’는 회의를 갖게 한다.
“안기부 내 국회담당분실이 있는 듯하다. 안기부 직원들이 국회 내에서 돌아 다니는 것은 물론, 이따금 아는 체도 한다. 또 국회 정보위원회는 안기부를 다룰 수 있는 곳인데, 대외비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통제가 이뤄지니 실질적인 심사를 할 수 없다. 심지어 정보위원회 회의가 열리면 회의장 밖을 안기부 요원들이 포진하면서 관계자 외의 출입을 막는 공포스런 분위기가 조성된다.”

지난해 12월 안기부법의 개악으로 국민 개개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더욱 우려되고 있다면, 정치공작이야말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한 인권침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의 댐 사건, 대통령 훈령조작 사건 등은 국민안보를 앞세운채 정권안보의 목적을 달성하고,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잿더미로 만든 대표적 사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