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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안기부와 인권 ⑤ 안기부 피해자들의 저항

공포를 누르고, 고소해 본다한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제6별관이었다. 이 건물은 지하 3층까지만 존재하고 지상구조는 없어 건물의 존재 자체를 알 수 없게 돼 있으며 본관 지하와 긴 통로로 연결돼 있다. 이 건물 지하 2층은 복도 양쪽으로 화장실이 딸린 4-5평 크기의 취조실들이 10여개 가량 늘어서 있으며 중앙에는 대형 취조실과 함께 밖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특수한 창문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한겨레신문 95년 12월 30일자)

지난 95년 안기부 청사가 내곡동으로 옮기고 난 뒤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던 남산 안기부 청사의 모습이다. 남산 안기부에는 2만4천8백여평의 부지에 총 41개동이나 되는 건물들이 있었다. 제6별관만이 아니라, 제5별관 등의 장소에서 중정과 안기부는 34년 동안 숱한 고문과 인권유린을 자행해왔다.

제5, 6별관 등에서 최소 20일 이상 온갖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검찰에 송치될 때 “검찰에 가서 부인하면 다시 끌고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듣곤 했다. 검찰에서 다시 안기부로 끌려간다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안기부 지하실에서 고초를 겪은 사람들은 안기부의 이 말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개가 입을 다물었다. 입을 열어 다시 지하실에서 알몸인 채로 물고문, 전기고문, 통닭구이 고문 등을 당하느니 잊고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은 수지만 가끔씩 안기부를 검찰에 고소한 사람들이 있었다.


“또 당하느니 잊고 말자”

92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손병선씨(현재 전주교도소 수감중)는 94년 안기부 수사관들을 고소했다. 손 씨는 이 고소장에서 정형근 안기부 제1차장(현 신한국당 의원)을 비롯한 수사관, 수사 보조역, 의사 등 13명의 인상을 세밀하게 적시하였다. 물론 수사관들의 이름을 알 수 없으므로 이름을 특정하지는 못했다. 그후 서울지검은 손 씨를 불러 조사를 하는 듯하더니 지금까지도 조사중이라고만 한다. 93년 김영삼 정권 들어 처음 안기부가 다룬 간첩단 사건인 김삼석․김은주 남매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기부장조차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그 존재를 시인했던 프락치 배인오(본명 백흥용)씨가 독일서 양심선언을 하면서 김성훈 과장과 윤동한(또는 윤봉환)의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도 공개했지만, 검찰은 이들 안기부 수사관들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89년 안기부 고문 수사관들의 얼굴을 몽타쥬로 그려가면서까지 고소했던 홍성담씨의 경우도 수사조차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시켜 버렸다. 89년 서경원의원 방북사건으로 구속되었던 방양균씨도 93년 안기부 수사관 김군성씨와 안종택 검사(현 대검 중수부 2과장)를 고소했지만, 기각당했다.


안기부 인권유린, 대부분 미제로

93년 11월 서울지검에 따르면, 6공 당시 안기부의 불법 인권유린을 고소․고발한 사건 14건 중 13건이 1-4년이 지나도록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고 확인한 적이 있다.

93년 개정된 안기부법 제11조는 이런 불법행위를 금지하고, 제19조에서는 이를 어겼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과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93년 안기부법 개정 이전의 사건은 공소시효가 7년). 검찰은 피고소인인 안기부 직원들을 제대로 불러다 조사도 하지 않은 채 공소시효를 다 흘려버린다. 안기부는 검찰도 다룰 수 없는 성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기부를 두려워 하기는 법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92년 3월 20일 14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인 홍사덕 후보를 비방하는 흑색 유인물을 뿌리다가 현장에서 잡힌 안기부 대공수사국 3단 12과 소속 수사관 4명은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원은 이들에 대해서 “음지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점”을 들어 이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9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수감중인 황대권씨등 장기수 8명이 “고문에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냈던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국제인권조약들이 고문과 같은 반인륜범죄에는 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고 밝힌 원칙을 무시하고 결국 안기부의 과거 불법 인권유린 행위를 합법화시켜 주고 말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94년의 경우 피고소, 피고발된 안기부 직원은 총 426명이었다. 그러나, 이중 289명이 무혐의 처리되었고, 57명이 공소권 없다는 이유로 재판에도 가지 않았으며, 미제사건이 20건이었다. 이런 현상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사법부도 같은 장단

그렇다 보니 안기부는 두려운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최근 외국에서 북한 관계 연구활동을 하다 귀국한 어느 교수는 자신이 발간한 책과 활동을 문제삼아 자꾸 안기부 직원이 전화를 걸어오더라고 말했다. 안기부는 이런 방식을 통해 당신은 언제든지 구속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은밀히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95년 박창희 교수 구속사건은 안기부의 위협과 미행을 두려워 한 한 동료 교수의 밀고에 의해 발생했다.

이 지경이니 안기부를 통제할 어떤 장치도 없는 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안기부법은 “지금은 안기부의 과거 인권유린범죄에 대한 진상조사와 문책 등 철저한 과거청산 작업을 행할 때다. 안기부가 갖고 있는 모든 수사권을 폐지해야 한다”(곽노현 교수, 방송대 법학)는 방향으로 재개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