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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아직도 인권타령이냐?"


이른바 문민정부 들어서고부터 나타난 안타까운 현상 가운데 하나가 "아직도 인권타령이냐?"는 반문이다. 인권문제를 이야기하면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그야말로 시대오도적인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 많다. 직업군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민주정부라고 할 수는 없다. 군주시대에나 걸맞은 문민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은 문민과 민주를 자신들이 이룩한 훌륭한 작품으로 도용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절차의 정당성을 중시하여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 3당 야합을 통해 대통령이 된 사건을 문민정부, 민주정부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김영삼 정권의 탄생은 결과지상주의로 이 사회를 병들게 한 대표적 인권침해사건이다.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

요즘 '대통령을 잘못 뽑았습니다'라는 후회성 의견광고는 너무 늦었다. 잘못 뽑은 것을 이제야 알았다면 순진하다기보다는 바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미 92년 12월 대선 결과가 나왔을 때 결과지상주의의 표본인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민주화대장정의 고삐를 다 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군 출신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인권침해현상을 외면해 왔다. 인권침해 사례가 민주주의의 수준을 예측한다면 김영삼 정권의 민주화 수준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노동관계법, 안기부법 개악을 보고서야 김영삼 정권에 대하여 실망했다고 푸념한다면 그 동안 청맹과니로 살았다는 것밖에 안된다. 시위와 진압경찰, 끊임없는 시국사건 그리고 구속사태, 정기적으로 발표되는 간첩사건, 각종 부정부패 등 어느 것 한가지라도 5, 6공과 달리진 것이 없다. 인권침해, 인권유린, 인권무시 현상은 오히려 더 빈번하다.

언론보도에 보이지 않는 성역이 존재하는 나라, 대통령의 아들이 특별한 인물로 행세하는 나라, 대통령이 여당총재를 겸하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제목소리를 못내는 나라, 큰 도둑은 상 받고 좀도둑은 벌받는 나라, 또 다른 우리인 북한을 정권유지에 야비하게 이용하는 나라, 환경을 걱정하기보다는 사상누각적 경제성장에 급급하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과연 인권이 제대로 존중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졌다고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에 그럴듯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러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권침해는 더 이상 없다는 정부당국자들의 거짓주장에 짓눌려 저항한번 제대로 못해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일 전개되고 있다. 시위, 농성현장 곳곳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자들의 주검이 어제도 오늘도 발생하지만 잘 알려지지도 않고 또한 관심도 없다. 이웃이 죽어 가는데도 무관심이 습관화되어 버렸다. 사람이 많다보니 사람값이 떨어진 모양이다. 서로가 무관심하니 인권이 존중될 리가 없다. 함께 힘을 모아 공권력의 폭력에 대응해도 부족할 판에 서로가 무관심과 불신에 사로잡혀 있으나 인권유린을 자초하는 꼴이다.


당신이 지켜야할 자존심

아직도 인권타령이냐고 고개를 내젓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지켜야할 자존심은 어떤 것이냐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다. 혼자만 잘살겠다는 발상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스스로 인권을 포기하고 짐승처럼 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인권문제는 영원한 숙제이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언제나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인권문제이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인권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해서 인권문제에 무관심해도 모든 문제가 때가 되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자에게만 인권이 있는 것이다. 구하지 않는데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사회가 어지러울 때 불평, 불만은 진부하다. 인권의식은 항상심이어야 한다. 인권은 생활화되어야 한다. 부정, 비리사건 보도에 잠시 분노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부정부패가 나의 소중한 인권을 여지없이 유린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회의 모든 현상은 인권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김동한(법과 인권연구소장, 광주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