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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대통령부터 인권을 배워라”

박종철 10주기 추모제에 참가하고


14일 저녁 종로의 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에서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 박정기 씨는 자꾸 '10년'을 되새겼다. 10년 전 아들의 뼛가루를 한탄강에 뿌렸던 그 아버지는 이 겨울 날치기한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철회를 요구하며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거리로 달려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고 있다. 안기부의 불법수사 때문에 학생이 분신하고, 개악된 노동법의 철회를 요구하며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야 하고, 감옥에 갇힌 이들마저 투쟁을 한단다. 복사한 종철이의 영정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고문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외치던 사람들, 흰 머리 수건을 둘러쓰고 울부짖는 어머니들-대강당 입구 로비 벽면에 걸린 사진들은 당시의 절실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10주기 추모제가 열리던 그 시각 파업 지도부가 머무는 명동성당은 경찰이 샛길까지 막아 아무도 근접할 수 없었다.

김영삼 정권은 최초의 문민정부답게 초기에는 인권개혁의 의지를 밝히곤 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다던 취임사도 그렇고, 심지어 정부의 인권정책을 설명한 책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국가권력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방어적인 인권만이 아니라 환경·교육 등 인간다운 생활이라는 적극·진취적인 복지인권의 신장을 위해 경주를 계속할 것이다."({개혁과 인권}, 법무부, 1994년 3월, 88쪽)

그런데, 이런 의지는 한낱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김대통령은 자신과 자신의 당이 저지른 불법행위마저 부정하는 종철이를 죽인 독재자의 모습-그는 권좌에서 물러난지 채 10년도 못되어 감옥에 갇혔다-을 닮고 있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할 의무를 진다. 그렇지 못하고 국민의 위에 군림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만이 정당하다고 강변할 때 그것은 이미 저항권의 대상이 되는 독재자일 뿐인 것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들은 늘 국민의 충복으로서의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국민의 위에 군림하려 했다. 즉, 대통령은 근대적 인권개념조차 모르는 채 자신의 말과 행동이 곧 법이라고 오만을 부리곤 했다. 따라서, 이 나라의 대통령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인권을 학습하는 일이다. 인권에 대한 무지로부터 이처럼 엄청난 전근대적인 언행을 저지르는 것이리라. 필시 김대통령도 세계인권선언조차 단 한번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의 파업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다. 정치투쟁이기 때문에 불법이란 말은 스스로 주장하는 세계화에 역행하는 구시대적인 발상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저항권은 인권개념이 탄생하던 근대 초기 존 로크로부터 확립된 인권개념으로 이제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 광범하게 인정되고 있다. 안기부법을 개악한 것이 이런 저항을 제거하는 선봉부대로 안기부를 활용하겠다는 심산이겠지만, 6월항쟁에서 경험했듯이 이미 시작한 저항은 억누룰수록 거세게 타오른다는 진리를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박종철 10주기 추모제에서 느낀 교훈은 국민적 기본권을 짓누른 권력자들은 언젠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기본권을 박탈당한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제한 저항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