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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오늘 박종철 열사 8주기, 고문 책임자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고위 관련자들, 국회의원, 변호사 등 사회지도층으로 활약

오늘은 박종철 열사의 8주기가 되는 날이다. 오늘 오전 11시에는 고인의 묘가 있는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서 추모식을 갖고, 오후 3시부터는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제8주기 추모식과 기념강연을 갖는다. 이 자리에는 당시 박종철 열사의 사인 은폐 기도를 폭로하여 6월항쟁의 기폭제로 만든 김승훈 신부(당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와 당시 주임검사였던 안상수 변호사가 증언하게 된다.

<인권하루소식>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고문을 총지휘한 조한경 경위(당시 계급, 이하 동일)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관련자 중 유일하게 복역중이지만, 다른 관련자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고문에 가담 머리를 욕조에 넣은 강진규 경사는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92년 7월 가석방되었고, 양팔을 붙잡은 황정웅 경위와 반금곤 경장, 상체를 욕조로 숙이게 한 이정호 경장은 87년 5월 21일 2차로 구속되어 황경위는 징역 5년, 심 경장은 징역 6년, 이 경장은 징역 3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황경위는 90년 12월 24일, 반경장은 91년 12월 가석방되었고, 이경장은 90년 5월 만기출소 했다. 이들은 모두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수사 2단5과2계 소속이었다.

당시 치안본부장을 맡았던 강민창(62)씨는 88년 1월 15일 구속되었다가 같은 해 3월 1심에서 징역 8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 90년 8월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무죄선고, 91년 12월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 환송, 93년 4월 서울고법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93년 7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강씨는 당시 박열사의 고문치사를 '심장쇼크사'로 은폐, 축소하도록 지시했다.

강씨의 뒤를 이어 치안본부장을 맡았던 이영창(64)씨는 재임기간 중 고문경찰관 축소사실이 드러나 4개월만인 87년 5월 27일 사임했다. 그 후 이씨는 90년부터 91년까지 주택공사 이사장을 맡았고, 92년 14대 총선에서는 민자당 경북 경산, 청도 지역에 출마 당선되어 현재 민자당에 적을 두고 있다.

서동권(62, 당시 검찰총장 )은 6공 때 제7대 안전기획부장과 청와대 비서실 정치담당 특보를 지냈고, 현재는 동서법률문화연구소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김성기(59, 당시 법무부 장관)은 87년부터 91년까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했고, 91년부터 93년까지는 주택은행 이사장을 맡았고, 현재는 동양종합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정구영(56, 서울지검 검사장)6공 때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제23대 검찰총장을 거쳐 현재는 진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상에서 확인한 것처럼 고문 사실을 은폐, 축소토록 지시한 책임자나 지휘 책임을 지고 있던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변신에 성공하여 다시 사회의 지도급 인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65) 유가협 회장은 "역대 정권이 고문책임자들에 대해 너무 관대하게 대했기 때문에 아직도 고문이 근절되지 않는 것"이라며 "직접 고문을 행한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책임자들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