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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작은 글 (마지막 회)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정부최초보고서의 제출은 국제규약을 수용하고 한국의 인권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정부의 자세를 표현한 것으로서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최초보고서는 위원회가 제시한 보고서 작성과 제출의 원칙에 비춰볼 때, 규약이 정한 정부의 보고의무를 충족시키는데 있어서 상당히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첫째, 규약의 조항과 관련된 한국의 법조문을 나열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구체적 실시 상황과는 유리된 추상적 설명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법원의 판례나 실제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규약의 의무이행에 영향을 주는 요소와 어려움에 관한 설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보고서 “직업선택 및 고용조건상 차별대우 금지”에 관한 조항은 헌법 15조, 근로기준법 5조, 남녀고용평등법의 문구를 인용하는데서 그치고 있고 보고서 전반은 이런 방식의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시책을 설명하는 데 있어 구체적 절차와 계획보다는 “······한 풍토를 조성할 것이다”는 막연한 기술에 그치고 있다.

이는 “규약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수용된 법적 조치를 보고하는 데 있어서, 당사국은 단순히 관련 법조문을 기술해서는 안 된다. 보고는 제 권리를 실행하기 위해 채택한 사법적 구제절차와 행정적 절차를 적절하게 구체화시켜야만 한다”는 보고서 제출 원칙과는 동떨어져 있다.

둘째, 정부보고서는 ‘경제적 성취와 정치적 상황변화’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현재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식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의 복지를 보장하는 성숙하고 민주적인 국가”, “민주화 개혁이 완성단계에 와 있다”는 등의 ‘주장’이 실질적인 내용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런 부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관련통계가 있어야 하는 데 문제는 정부통계의 한계성에도 있다.

“제 권리가 실제로 보장되고 있는 수준을 나타내기 위하여 보고서에는 예산할당과 지출에 관한 통계와 정보가 제시 되야만 한다. 정부는 가능한 한 분명하게 정의된 목표와 경제지표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한 목표와 경제지표는 적절성과 통계의 비교가능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국제협력을 통해 성립된 기준에 기초해야만 한다” 는 원칙에 비춰볼 때, 정부가 제시하는 통계들은 경제성장과 정부가 취한 조치들의 성과와 그와 관련된 부문의 완만한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고,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계층의 상황과 개선정도를 나타내는 핵심적인 사항에 대한 정보가 누락됨으로써 그것이 적절한 수준인지 개선된 것인지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한다. 또한 국제수준과 비교하거나 비교 가능한 자료의 제시가 부족하다.

셋째, 가장 중대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보고서 작성과 제출과정의 철저한 비공개이다. 정부는 인권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단체들에게 보고서의 준비와 제출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더욱이, 정부는 민간단체들이 여러 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또는 유엔에서 공식화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94년 6월 16일까지 정부보고서의 복사 본을 제공하기를 거절했다.

또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의 포괄성과 방대함으로 해서 관련분야 전문가와 종사자들의 논의와 조언이 필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과 부처의 입장과 통계만으로 보고서가 작성되었다면 그 한계는 분명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보고의무를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를 실행하기 위한 목적과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공적 토론의 기회로 봐야한다”, “관련 민간단체와 국내기구와의 협의 등 충분한 국내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원칙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고 “민간단체가 협의 자격으로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규약에서 발생하는 권리의 충분하고 보편적인 인식과 실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권고에 비춰볼 때 민간단체보고서 작성에 대한 철저한 비 협조는 비난을 면치 못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권리보장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하여는 다음의 예를 들 수 있다.

첫째, 정부보고서는 국제적 노동기준과 배치되는 국내의 제한규정에 대하여 그 개선책을 언급하는 대신에 오히려 제한의 타당성을 설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ILO조약과 배치되는 규정은 ①노동조합가입 권에 대한 규정 ②노동조합의 활동제한 규정 ③노동쟁의의 금지에 관한 규정들로서 이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 제8조, 노동기본권의 보장에 있어 심각한 제약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노동권의 제한조항과 그 타당성을 상세히 설명한 것에 반해 최저임금제 등 각종 제도의 적용에서 누락된 계층과 그 개선책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둘째,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규약의 사회보장의 권리규정에서 나타나는 원칙은 ①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성의 원칙 ②가족생활의 충분한 보장을 위한 가족부양수준의 원칙 ③최저수준의 보장만이 아니라 가능한 수준의 최대의 보장을 지향하는 원칙 ④규약 체결국의 의무로서 표현되어 있는 국가책임성의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보고내용은 위의 원칙에 비추어 우리 나라 사회보장제도의 현황을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이에, 사회복지 분야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정리해보면 ①사회보장제도를 도구적으로 이용하여 선별적으로 전략적 대상에 적용해왔기 때문에 보호가 가장 필요한 계층을 그 적용대상에서 소외시켜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성의 원칙”에 어긋나고 있으며, ②각 제도의 급여수준이 “가족생활의 풍부한 보장을 위한 가족부양수준의 원칙”을 충족시키기에 적절치 못하며, ③ 사회복지기반의 취약성으로 우리 나라의 경제수준에 걸 맞는 “가능한 수준의 최대한의 보장”을 지향하지 못할 뿐 아니라 “최저수준의 보장”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④국가의 사회보장 재정지출수준이 극히 낮아 “국가책임성”을 희석시킨 반면, 국가의 재정책임은 없으면서 관리운영체계를 장악하고 운영의 비효율성과 비민주성을 노출시켜 사회구성원의 충분한 ‘참여’를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사회보장 제도는 ‘권리’와 ‘존중’, ‘참여’로서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국제인권규약에의 가입과 그에 따른 공적의무로서의 보고서제출이 단순히 절차에 따른 정부의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행위에 그치고 있으며, 인류보편의 인권에 대한 이해나 우리 나라의 인권보장 상황에 대한 국내외의 논의와 비판을 수용하려는 노력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평가된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대한 홍보와 국제법상의 의무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의미하며, 사회권 보장 제도의 빈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의 효과적 실행을 위해서는

1)권리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시민․정치적 권리에 대해서는 민감하고 체계적인 대응양식을 보인 반면 사회권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이는 사회권의 주장을 아직도 사회통합의 요소로서보다는 경제발전의 저해요소로, 또한 점진적인 프로그램과 국가 시혜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려는 입장을 용납하고 방치하는 것이다. 경제발전이 사회권보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독재치하에서 기초된 경제발전체제가 국민참여의 배제, 즉 시민․정치적 권리의 억압임과 동시에 사회권의 보장을 위협하는 요소임이 이 글의 앞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 사회․문화적 권리 모두가 인권의 범주 속에서 동등하게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2)인권규약을 비준했다는 사실과 장점만 부각시킨 보고서의 형식적 제출만으로는 규약의 이념과 원칙을 충족시키지 못함이 분명하다. 정부는 관련 공무원과 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주요인권조약에 대한 교육과 홍보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아울러 보고서의 준비와 제출과정이 광범위한 공적토론의 기회가 되도록 하여야 하며 위원회의 심의와 논평을 국내의 사회권보장의 개선을 위한 생산적인 토론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가깝게는 95년 5월에 있을 위원회의 보고서 심사에 대하여 국내의 사전토론을 거쳐 객관적이고 충실한 답변의 의무를 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민간단체활동에 대한 배척에서 벗어나 그 역할을 보장해야 한다.

3)민간단체의 역할강화가 필요하다. 정부최초보고서에 대하여 관련 민간단체들이 신속하게 연대하여 반박보고서로 대응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부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반박보고서의 내용에 충실을 기하고, 그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보장과 관련된 전문가의 참여를 비롯하여 더 넓은 분야의 참여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선 현재 시민, 정치적 권리에 집중하고 있는 많은 인권관련단체들이 사회권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관심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 또한 현재상황에서 기본적 인권과 주요인권규약에 대한 ‘교육’을 현실적으로 개발하여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민간단체의 활동에 있다.

류은숙(참여연대 인권운동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