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창간 1주년 기념 기획 ① 신공안정국과 국가보안법

편집주 : <인권하루소식> 창간 1주년을 맞아 이덕우 변호사의 글에 이어 장애인, 양심수, 외국인 노동자등 각 분야의 현안을 점검하는 기획을 마련하였다.


군부독재 분위기와 유사한 요즘

최근 우리 국민 중 많은 사람들은 현재 우리의 정치적 상황이 군부독재시대의 분위기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 뚜렷한 근거를 댈 수는 없으나 유신이나 5, 6공의 암울했던 시절과 흡사한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유신시절 국민학생 때부터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게 하고 한국형 민주주의라는 관제 캠페인이 전국을 휩쓸 때 어린 나이에도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 아닌데”라고 느꼈던 기분 같다 고나 할까.

냉전체제의 붕괴와 전 세계적인 화해와 공존의 흐름과 국내 정치상황을 비교할 때 더욱 참담한 느낌이다. 이념과 체제보다는 각국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며 세계는 급속하게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며 변화하고 있다.

도저히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듯 하였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평화공존의 길을 걷자고 하고 북한과 미국 사이의 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왜 우리 정권 담당자들은 외면하려는 것일까. 이러한 흐름을 역행하여 가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해묵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정국을 불안하게 몰고 가려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많은 국민들은 정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불안한 눈으로 정국의 흐름을 바라보고 있다.


언론, 사제 등이 반북 이데올로기 확산에 앞장서

지난 3월 정부 당국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 이후 이른바 북한의 불바다 발언 파문으로 전쟁분위기를 조장하고 반북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기 시작하였다. 당시 정부당국이 비공개 회담에서 나온 말을 언론사에 제공하여 대대적으로 보도시키자 외신기자들은 국제 관례상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더구나 양측 대표들의 신경전 끝에 나온 말을 앞뒤 상황을 모두 자르고 북한 대표의 한두 마디 말 중 “불바다”라는 부분만 골라 강조하며 일제히 보도시킨 것은 의도적으로 전쟁분위기를 조장하려 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부 당국의 의도대로 언론은 대대적으로 전쟁분위기를 고취시키며 불안을 증폭시켜 나갔다. 그러나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자 안보불감증이라는 등 일면 철없는 어린아이들을 대하 듯 걱정하고 부추기던 정부와 언론이 의도대로 국민들이 동요하고 부유층 가정에서부터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자 하루아침에 비난을 하고 나서는 촌극을 벌이고 말았다. 그야말로 국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느냐고 머쓱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카터의 방북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듯 하자 이러한 분위기가 일순 주춤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예기치 못하였던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조문논쟁으로 기세를 올리더니 박홍 총장의 잇따른 주사파 발언으로 절정에 달하였다.

과거 정부 당국에서 억지로 반공이데올로기로 캠페인을 벌이면 마지못해 장단을 치던 언론이 오히려 공안분위기를 선도하고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언론의 선도적 역할은 철도파업, 조문논란, 한총련배후 등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단적으로 박홍 총장의 근거가 불투명한 발언을 극찬하며 “박총장을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제2의 박총장이 필요한 때”라는 식의 민간(?)캠페인을 주도하며 정국의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다.


다시 보는 로마병정, 백골단

언론의 선정적이고 이성을 잃은 선도투쟁(?)에 힘입어 정부 당국은 특히 학생운동에 대하여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남총련에 이어 한총련까지 일방적으로 주사파 또는 친북세력으로 규정하고 국가보안법을 적용, 엄단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전국 181개 대학 주변에 233개 중대 2만 7천명의 병력을 배치하기에 이르렀고 140명의 학생을 수배하고 1천만 원의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소위 문민정부에서도 우리는 5, 6공 때 신물나게 보았던 로마병정들과 백골단을 거리 곳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과연 5, 6공 때보다 학생들의 시위가 더욱 과격하여지고 정권에서 말하는 체제전복을 지향하는 쪽으로 극렬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반대로 5,6공 때나 마찬가지로 정권의 유지에 커다란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일까.

아무튼 통계에 의하면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지난 7월말까지 구속된 양심수는 634명인데 이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구속자는 전체의 44.63%에 해당되는 283명이다. 그런데 올 6,7월 2개월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람의 수는 102명으로 그 전까지의 구속자 수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신공안정국 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보안법 7조 ‘한정합헌’, 역사적 책임져야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의 수를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아직 그러한 분석 결과를 본 일이 없으나 정권의 위기 또는 실정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할 때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급증하고 정치적으로 커다란 변환기에서 굵직한 국가보안법 사건의 터져 나왔던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위배되고 헌법정신을 짓밟고 있으므로 폐지하여야 한다고 외쳐왔다. 그리고 국회에서도 수 차례 개폐논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4년 전에는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하여 한정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일도 있다. 물론 다수의견이 한정합헌이라는 묘한 이론으로 위장하기는 하였어도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한 것이다.

그러나 한정합헌이란 판정을 받은 7조가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약 90% 이상 적용되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통신이나 창작 노래극에 대하여 국가보안법 7조를 적용하는 것은 물론 대학교재와 태백산맥 등에 대하여도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처벌하겠다는 데까지 이르고 말았다.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7조만이라도 사형선고를 내려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이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구성 자체가 국민들의 참여와 진정한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면이 있어 국가보안법에 대한 사형선고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구성 자체가 어찌 되었건 재판관들의 성향이 어떠하였건 위 결정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가보안법

또한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은 칼자루를 쥔 자에게 언제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자에게는 휘두를 수 있고 따라서 휘두르도록 만들고 마는 일종의 마성을 지니고 있다. 제 아무리 교육을 잘 받고 천성이 선량하여도 손쉽게 눈에 거슬리는 자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귀찮고 힘들뿐만 아니라 승패가 불분명한 토론과 협상을 할 것인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 국가보안법이 있는데 이것을 쓰지 않고.

이렇게 추상적이고 애매 모호한 규정으로 이루어진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한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란 한낮 장식품에 불과하다. 체제의 건강성과 국가안보는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국민들의 피를 보았던 우리가 어떻게 40년 전 미국에서 밟았던 것과 똑같은 전철을 밟아 나가고 있는 것일까. 한 대학 총장의 뚜렷한 근거가 없는 발언에 전 국민이 매카시에게 놀아난 것처럼 이성을 잃고 광기에 들떠 날뛰어야만 하는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피와 젊음을 지불하여야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새로운 사고와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토론문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것일까.

진정 지금 이 순간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지럽히고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협하는 어둠의 세력을 누구일까. 혹자는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당장 북한의 남침위협이 커지거나 국가안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할 지 모르나 매카시즘의 열병을 않고 난 미국의 연방수사국이 매카시에 대한 수사결과를 내린 것을 보면 이해할 지 모르겠다. “매카시는 반공의 명분에 해를 입혔으며,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공산주의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정당한 노력에 대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신장시키고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굳건히 하며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도모하는 길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이런 국가보안법 철폐주장도 북한의 주장과 같다고 하며 국가보안법 7조 위반(북한의 활동에 동조)으로 몰릴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신공안정국이라는데.


이덕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