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단체탐방 30 서울·경인지역 육아시설활동단체연합회 산하 시설문제연구회

꺼멓게 탄 죽을 핥아먹는 고아들 옆에서 통닭파티를 벌이는 나리들의 모습이 그 내용과는 달리 경쾌하게 그려지는 뮤지컬, 올리버 트위스트, 기숙학교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제인에어, 엉뚱한 고아 빨간머리앤 등을 보며 흘린 눈물의 기억 속에 다른 영상이 겹쳐진다. 부서진 집터에서 울고있는 전쟁고아들, 그들이 자수성가 드라마의 주인공을 가장 많이 연기하면서 성장한 오늘, 풍요한 오늘 속에 존재하는 아동들의 모습이 겹쳐지면 왜이리 세상이 뿌옇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서울·경인 지역에 있는 육아시설 관련 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시설문제연구회」는 이 뿌연 화면에 입김을 불어넣고 소매로 닦아 가는 모임이다.

이 모임은 대학생 몇몇이 동아리를 만들어 육아시설방문활동을 벌인데서 시작되었다. 작은 뜻과 풋풋한 정을 모아 찾아간 곳, 그러나 그곳의 아이들은 제대로 된 ‘보호’나 ‘인자’한 원장선생님과는 거리가 먼 환경 속에 있었다. 개별 동아리로 활동하던 이들이 뭉치게 된 계기 또한, 그곳에서 벌어진 성폭행사건 때문이었다. 88년 11월, 폐쇄된 환경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이런 일들에 대한 조직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11개 동아리(중앙대 ‘푸름’, 외대 ‘실천사랑’등)가 연합회와 「시설문제연구회」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생 들 만이 아니라 직장인이 된 선배들이나 시설종사자, 관련분야 사람들과의 연대를 도모하게 되었고, 활동의 폭도 넓히게 되었다.

현재 조직은 회장(이진복), 부회장(김혜경)과 현장활동부, 연구부에 소속된 40여명의 회원과 후원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현장활동은 ‘학습지도’를 중심으로 하여, 국민학생 대상의 지점토, 기타, 한자, 문예반 등의 특별활동, 중·고등학생 중심의 상담활동이 있다. 상담은 주로 시설에서 고민, 퇴원후의 취업문제 등에 관한 것이다. 18살이 되면 시설을 나서야 하는 이들의 직업진출에 대한 분석 등은 전무하며 자립금 1백20만원(이는 대도시의 경우이고 지방은 60-80만원정도)을 쥐고 세상에 나선 이들의 뒤를 보살펴 줄 곳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연구활동은 육아시설활동가 교육과 직원들의 근로조건 현황과 개선, 시설내의 성폭행문제 등과 사회복지전반에 관해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 올 2월에 사회복지 서비스 관련법 심포지엄을 가진 바 있으며, 관련 세미나에서 시설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주제강연을 한 바 있다.

과거에는 전쟁고아, 부모가 없는 진짜(?)고아가 대부분이었다면 현재는 급속한 사회변화, 가족해체로 표현되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한 생(?)고아들, 즉 경제적 문제로 인한 가정파탄, 양육포기, 아동의 장애를 이유로 한 유기 등으로 인해 시설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들이 있다. 이들을 만 18세까지 보살피는 보육사들은 법적으로 아동 14명당 1인으로 되어 있는데 한사람이 14명의 학습, 정서, 건강 등에 세세하게 신경 쓴다는 것이 불가능할 뿐더러 또한 시설의 물질적 기반이 보장되어 있지 않을 경우 세탁, 요리, 청소 등을 떠맡아야 한다면 무게는 더 커진다. 그래서 ‘사랑’으로 버텨보겠다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머무는 기간은 평균 2.4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기에 못 미치고 관두는 경우가 많다. 38-40만원의 보수, 외출, 휴가 등이 거의 없다 시 피한 여건에서 버텨낼 재간이 누구에게 있을까?

이처럼 많은 시설의 문제를 첨예하게 드러내는 시설내 성폭행의 문제를 살펴보자. 일반적 특징으로 피해자는 자기방어 능력이나 범죄인지능력이 부족한 아동이거나 장애인이며, 직원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다. 피해대상이 1명인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여러 명이며 피해기간도 지속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가해자는 최고 운영진이나 이들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87년 이후에야 이런 사건들은 사회민주화와 관련된 성폭력과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 증가, 인권의식의 확대, 시설 내 자원활동가들의 의식과 활동의 급성장 등에 힘입어 공론화 되게 된다. 그러나 가해자가 처벌받은 경우는 극소수이고, 성폭행이 발생한 시설에는 보조비 착복과 같은 재정비리, 강제노동, 아동유기, 직원근로조건 열악 등 총체적인 모순구조가 존재함을 여러 사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문제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중 최고는 시설 장들의 ‘시설사유화의식’이다. 자신의 재산으로 법인을 설립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정부의 보조금이 1백%지원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일정정도의 재정을 확보하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 또한 법인자체를 주로 자신의 친․인척에게 세습하고 있는 상황은 사유화의식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요인이다. 결국 시설은 시설자의 것이라는 사유화의식은 시설에 보호되는 사람들도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자신의 것은 자신의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비뚤어진 고정관념을 갖게 한다. 물론 인정과 사랑으로 아동의 삶과 함께 하는 분들도 있다. 문제는 아동이 그런 사람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로 아동의 보호의 질이 결정된다는 데 있는 것이다.

아동의 권리는 ‘제도’로 뒷받침되어야지, 어떤 사람의 ‘인정’에 맡길 문제는 아닌 것이다. 시설에 대한 사유의식을 버리고 공적개념을 받아들이는 것,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 시설보호가 아동의 권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끝으로 성폭력 사건을 겪은 한 육아원 원생의 글을 읽어보고자 한다. “변화된 것이 없다. 외출 금지령이 더욱 심해졌다. 우리들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다. 너무 슬프고 불안하고 쓸쓸하다. 언니 오빠들이 방문하지 못하게 되어서 섭섭하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다. 자유 좀 주세요 진짜 저희들은 일요일만 되면 꼭 감옥에 있는 것 같아요. 반찬이 진짜 마음에 안 들어요. 때린다고 해도 얼굴은 안 때렸으면 좋겠어요······.”

주소 : 서대문구 충정로 3가 190-36(☏ 313-5701)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