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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터뷰/필리핀 인권운동연합 사무국장 에블린 발래세라노

"철저한 인권교육만이 튼튼한 인권조직 만들 수 있다"


편집자주:호주에서 진행중인 민중외교훈련프로그램(DTP)에 참석중인 이성훈 씨가 <인권하루소식>을 위해 강사 중에 한 명인 필리핀의 에블린 발래세라노와 지난 1월 27일 DTP 사무실에서 인터뷰한 것입니다.


=강의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인권하루소식>을 위해서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필리핀 인권운동연합(PHARA)이 어떻게 창립되었는지 소개를 해주시죠.

-알다시피 PHARA는 86년 8월 즉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민중의 힘(People Power)으로 쓰러뜨린 지 6개월 후에 창립되었습니다. 당시 변화된 정세 하에서 인권운동을 더욱 더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느슨했던 인권운동협의회(PCHR;Conferential body of the Philippine Conference on Human Rights)보다 강력한 조직의 필요성을 많은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이 제기하였으며, 그 결과 86년 8월 100여개 인권단체가 참석한 전국대회에서 정식으로 결성되었습니다.

많은 인권단체 가운데 구속자대책운동(TFDP;Task Force Detainess-Philippines), 정의평화를 위한 범교파운동(EMJP;Ecumenical Movement for Justice & Peace), 필리핀교회협의회(NCC;Human Rights Committee of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개신교 변호인 연맹(Protestant Lawyers' League) 등의 단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상근인력이 부족하여 어려움이 많았는데 하나씩 극복하여 이제는 필리핀 인권운동을 대표하는 연합체로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상근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요? 그리고 복잡하겠지만 조직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십시오.

-현재 상근자는 12명입니다. 그중 한 명은 변호사이고 나머지는 인권대중활동경험을 쌓은 인권활동가입니다. 지역단위에 약 40개, 수도 마닐라의 전국단위 조직 약 39개 그리고 연구소 및 개인회원 등 다양한 분야를 회원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PHARA는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전국총회에서 향후 2년 간의 사업방향과 내용을 결정하고 주요 임원을 선출합니다.

구체적인 사업의 실행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지도자위원회(Council of Leaders)에서 검토를 합니다. 이 지도자위원회 아래에 전국조정위원회(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가 있고, 다시 그 산하에 사무국을 비롯하여 캠페인위원회, 법률구조위원회, 연구조사위원회, 로비위원회, 국제연대위원회 그리고 최근에는 인권교육 및 정보위원회가 신설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PHARA는 유엔의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국제연대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 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PHARA의 주요 역할은 많은 인권단체의 다양한 활동을 전국차원에서 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권단체의 수는 많았지만 전국단위의 인권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즉 영향력이 부족했죠. 그리고 많은 인권단체들이 유엔 등 국제연대와 외교의 장을 필리핀 인권문제를 해결하는데 활용해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규모의 영세성과 재원의 부족으로 제대로 실천을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전국단위의 연합조직인 PHARAR가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국제연대를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립 직후 2명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의 국제인권법 강좌에 파견하였으며, 그리고 1명은 미국에 연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나 국제차원의 회의나 연수회에 지속적으로 회원을 파견하여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그 결과 이들이 현재 국제연대사업에 주도적인 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PHARAR는 국제인권연합(FIDH;Federation Internationl des Driots de I'homme)의 회원이기도 하며, 모든 활동은 국제인권법과 인권헌장 등 국제인권장전에 기반해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방콕과 비엔나 인권대회를 통해서 한국 인권운동가를 많이 만나셨는데 한국 인권운동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아직 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못해 한국의 인권상황과 인권운동을 체험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비엔나에서 만난 한국 인권운동가의 활약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모두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한국 인권운동가들이 보여준 진지한 자세와 패기 그리고 단결된 모습은 저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인권운동가의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비엔나에서 문화운동가그룹(풍물패)의 공연은 매우 훌륭했고, 마지막 날 아시아 연대의 밤 진행이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아시아 인권운동의 현황을 볼 때 그나마 전국단위에서 내용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필리핀 두나라 정도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가 파트너가 되어 '비엔나 이후(Post Vienna)'사업을 아시아에서
주도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DTP 강의를 마치는 대로 '아시아지역 인권운동협의회모임'에 참석하려 방콕에 가신다고 하셨는데 이번 모임에 대해 특별한 기대나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솔직히 말해 특별한 기대 없이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는가 알아보기 위해 참관하는 마음으로 갑니다. 섭섭하게도 이번 회의가 개최되는데 사전협의를 받지 못해 어떤 배경으로 회의가 소집되는지 궁금합니다. 아무튼 좋은 의견이 모아져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인권운동이 진일보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책적으로 인권교육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인상을 받는데 어떻게 인권교육을 발전시켜 왔습니까?

-86년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지자 많은 사람들이 "민주정부(?)가 세워졌는데 인권운동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희는 체계적인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절박하게 느꼈습니다. 앞에서 해외의 인권강좌와 연수에 사람을 파견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87년 먼저 각 인권단체에서 선발된 활동가 50명을 대상으로 약 1달간 집중적인 인권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더욱 발전되어 현재에는 기초과정 3주, 본 과정 3주 그리고 인권교육담당자 과정 3주의 3단계 교육과정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전국단위에서 2회를 실시하였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교육을 하면서 너무도 많은 사람이 자신이 정당하게 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고 있으며 권리는 정부 당국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그동안의 성과를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새로운 인권교육 정책이 수립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인권교육을 정규교육 커리큘럼에 반영되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인권운동을 조직하는 것 이전에 인권교육이 선행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즉 철저한 인권교육 없이 튼튼한 인권조직이 설 수가 없습니다.


=인권교육 이외에 현재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도 소개해 주시죠.

-1990년 총회에서 필리핀 인권정보센터(Philippine Human Rights Information Center), 아시아 인권연구소(Aisa Institute for Human Rights), 필리핀 인권협동재단(Philippine Human Rights Cooperative Foundation) 등의 설립을 결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일차적으로 91년에 지도위원회 부설로 필리핀 인권정보센터가 설립되었습니다. 필리핀 민중의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 민족주권과 모든 분야에서의 인권신장을 목표로 하여 92년부터 94년까지의 중점 사업방향은 다음의 4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전국적으로 필리핀의 인권 및 민중적 선언을 위해 노력하고,

2)정부의 무력전쟁 정책을 중단시키고, 강화되는 정치적 탄압과 군사화를 막기 위한 종합 캠페인을 전개하며,

3)인권존중에 바탕한 평화와 내부 갈등을 초래하는 근본문제의 해결을 위한 필리핀 민중의 노력에 동참하고,

4)전망․사업계획 및 조직의 관점에서 인권운동연합을 보다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중 '필리핀 인권 및 민중적 선언(Declaration of Human and People's Rights)'은 작년 말에 인권단체 전반의 의견을 모아 정식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추진하는 사업이 많아 재정이 많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재정을 충당하고 있습니까?

-연합체이기 때문에 공동사업에 소요되는 예산은 원칙적으로 각 회원단체가 부담을 합니다. 각 회원단체가 해외 재정단체에서 원조를 받을 때 아예 연대활동비를 예산항목에 넣습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 공헌하기가 힘든 단체는 인력을 파견합니다. 제가 속했던 구속자대책운동이 그러한 경우이지요. 사무국 예산은 자체적으로 편성하여 해외 원조단체에 재정신청을 합니다.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86년 이후 정부와도 함께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 시행령으로 설치된 대통령 직속의 인권위원회(PHRC;Presidential Human Rights Committee)에 저희 PHARA는 무료법률지원단(FLAG;Free Legal Assistance Group)과 함께 필리핀 인권운동 전체를 대표하여 참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희가 조직적으로 추진한 인권교육 프로그램은 유네스코로부터 1989년에 상을 받았고, 또한 PHARA기 주관하는 인권교육 강좌는 문교부에서 학점으로 인정해줄 정도로 상당한 공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일부대학에 인권강좌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권운동 특히 PHARA에 참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현재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어떤 소감을 지니고 있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많은 다른 활동가와 마찬가지로 저도 학생운동 출신입니다. 70년대 초반 대학에서 사회사업을 공부했습니다. 졸업후 미국유학의 기회가 주어져 한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저는 톤도(Tondo)지역의 빈민촌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농촌에서 일하다가 남편이 82년에 다시 구속된 것을 계기로 구속자 가족과 친척을 조직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86년 92년까지 구속자대책운동에서 일했고, 작년부터 PHARA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단위의 일이라서 일이 많고 국제회의에도 자주 참석해야 하므로 정신 없이 바쁘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