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공안검찰은 시대를 거꾸로 살려 하는가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의 진실을 알립니다.


편집자 주 : 황주석 씨 등의 모두진술을 게재하려 하였으나 내용이 많아 이 글로 대신한다.

지난 군사독재 통치 하에서 국가보안법이 어떠한 역할을 했던가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습니다. 언론기본법, 학원안정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사회안전법 등 국가안보를 구실로 민주주의를 능멸하고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마저 억압하려 했던 각종 악법들 중에서도 국가보안법은 단연 중심된 지위를 차지하는 법이었으며, '국가를 변란'하려 한다든지 '적을 이롭게' 한다는 등의 애매한-그러나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수많은 민주인사의 피눈물을 쏟게 했던 법이지 않았습니까.(중략).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월초 서울경찰청 산하 장안동 대공분실 수사대가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조준웅)의 지휘를 받아 [남한사회주의과학원](이하 [과학원]) 회원이었다가 지금 학업 또는 생업에 종사중인 10여명을 불시에 불법연행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수감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소위 문민시대에 정상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을 영장도 없이 강제연행하고, 강압적 밀실수사를 한다는 것부터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정작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 사건을 사법 처리하는 서울지검 공안1부의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태도였습니다.

저희 [과학원]은 진보적 학술운동과 함께 성장해온 젊은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뜻 있는 연구활동을 해보고자 1년 가까운 준비기간을 거친 뒤 91년 7월 정식 결성한 단체입니다. 약 20여명인 [과학원] 회원들은 대개가 대학원 석 박사 과정 중에 있으면서, 각종 학술단체 회원으로도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저희들이 [과학원]을 결성한 목적은 다른 진보적 학술 연구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고 건설적 대안을 제안하는 실천적 연구활동을 하는데 있습니다만, [과학원]을 별도로 새로이 결성한 특별한 이유를 찾는다면, 이제는 사회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소신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단체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희들이 다른 단체를 과소평가 하거나 폐쇄적 태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며, 어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과학원]을 결성했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희들을 어떠한 정치집단, 정파와도 독립적인 단체임을 견지하였으며, 다른 연구단체들과는 가능한 연대하려는 태도를 견지하였으며 실제로 그런 시도를 하였습니다.

[과학원]은 몇 개의 연구분과 단위로 연구 집필 토론활동을 하며 그 성과를 이론지 {우리사상}에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92년 가을경 다수의 회원이 합법적인 연구활동으로 이전하거나 개인적 사유로 탈퇴하는 가운데 자진해산 하였습니다.

또한 [사노맹] 조직원 백태웅 씨가 [과학원] 회원으로 참여했다고 하여, 마치 [과학원]이 [사노맹]의 '산하조직'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만, 백태웅 씨는 역시 다른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사회주의 이론가로서 참여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다가 나중에 그 신원이 밝혀지자 활동을 줄여나가다가 중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과학원]은 다른 정치조직에 독립적인 연구단체임을 설립 초기부터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실이기에 "[사노맹] 산하" 운운은 모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편, 저희들 [과학원]이 비공개적으로 활동한 이유는 오직 정보기관의 미행과 사찰로 인한 만약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부득이한 자구조치였습니다만, 이를 빌미로 무슨 지하음모단체나 되는 듯 매도하는 것은 정말로 적반하장 격입니다.

사정이 이러함을 입이 닳도록 말하였건만, 서울지검 공안1부는 7월 중순경 [과학원] 관련 피의자 전원을 '반국가단체' 가입 등의 죄로 기소하고 말았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과학원]이 '국가를 변란'하려 한 '반국가단체'라는 것입니다.

저희들로서는 '국가를 변란'하려 한다는 죄목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범죄행위를 두고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이는 비단 저희들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허구의 죄목이고 보면, '국가를 변란' 운운하는 것은 오직 그럴 듯한 구실일 뿐 실은 [과학원]의 활동 - 나아가 모든 사회주의에 대한 소신 있는 학문 및 사상활동을 금압 하겠다는 속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이처럼, 존엄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탄압하려는 시도가 문민정부 하에서 또 다시 일어나고 있으니 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자진 해산까지 한 연구단체인 [과학원]을, 그것도 군사독재도 아닌 문민정부 하에서 '반국가단체'라고 기소하려드니 진정 이 나라 공안검찰은 시대를 거꾸로 살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녕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합리적 이성을 영영 상실한 것입니까?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묵인 방조하고 있는 김영삼 정부는 진정으로 민주개혁을 할 의사를 갖고 있는 것입니까?

저희들은 이런 식으로 문민정부 下 반국가단체 1호를 만들어 내려는 작태는 묵과할 수 없는 수구적 책동이며, 있어서는 안될 '학문 및 정치사상활동의 자유'에 대한 침해행위라 믿기에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며, 지금이라도 이런 불순한 책동을 중지하기를 진심으로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는 군사독재의 망령이 있음을 그리고 불순한 수구적 책동을 꾸미고 있음을 널리 민주시민 여러분께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공안검찰은 [과학원]의 강령 규약이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고" 있으며, [사노맹] 조직원 백태웅 씨가 [과학원] 회원이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마치 무슨 지하혁명단체라도 찾아낸 양 불온시하고 있습니다만, 이상에서 보듯이 [과학원]은 어느 모로 보나 학술운동의 발전선상에 있는 진보적 학술단체임에 틀림없습니다. [과학원]의 구성원의 성격, 활동 동기와 내용, 조직체계와 운영방식 등,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이는 '과학'을 유일한 무기로 삼고, '진리'를 자신의 준거로 삼는 진보적 학술연구단체인 것입니다. 굳이 다른 단체와의 차이를 찾으라면, 사회주의도 포함하여 어떠한 연구주제에 대해서도 제한을 두지 않고 소신있는 연구를 하고자 하였던 것이겠습니다만, 이 또한 저희들이 사회주의에 대해 남다른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사상의 빈곤'으로 고통받는 이 시대 민중의 아픔에 공감하는 바 있었기에 이를 빌미로 "반국가적" 운운하는 것은 타당치 못할 것입니다.


[남한사회주의 과학원] 관련 구속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