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평소에 시위 많이 다니지 않아? 그런데 이번 시위는 왜 안 가는 거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건 분명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 문제를 제기한 광장에는 '좌우를 떠나 중요한 문제'라는 말과 '나는 시위대가 아니다'라는 자기규정이 함께 존재했고, 그것들은 내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신호였다. 그러는 사이 집회에서는 ‘중국인을 색출하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남태령 자유발언에서 이주민 혐오에 맞서는 언어를 함께 만들어냈던 경험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었다. ‘안전한 광장’로 기억되는 남태령과 달리, 혐오가 오가는 광장은 내게 안전한 공간일 수 없었다. 이후 재선거에서 부정선거로 구호가 확장된 흐름, 청소년 핸드볼 선수단의 소지품을 검사하려 했다는 소식, 올림픽공원을 다녀온 옛 제자의 이야기를 전한 가수 하림의 글 등을 접하며 생각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던 중 6월 14일 열린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의 긴급 집담회 <올림픽공원 시위에서 우리가 본 것들, 보아야 할 것들>은 그동안 엉켜 있던 질문들을 차분히 정리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집담회의 첫 번째 순서로 플랫폼C 활동가 민희가 이번 시위를 통해 마주하게 된 문제의식 (참정권의 훼손, 제도 불신의 폭발, 정치적 대표의 공백, 권리 침해의 언어와 극우적 언어의 조우, 국가의 선택적 대응)을 담아 <올림픽공원 시위에서 우리가 본 것들>을 발제했고, 이어서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자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장 미류가 <올림픽공원 시위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을 발표했다. 미류는 ‘선거가 잘못됐다’라는 감각이 민주주의와 만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를 짚는 것에 앞서, 1987년에 벌어졌던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 점거농성사건을 소개했다. 1987년 대선 투표 당일, 한창 투표가 이뤄지던 오전에 부정투표함이 반출되려는 것을 목격한 시민의 제보로부터 시작된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폭력으로 진압된 사건이다. 미류는 두 사건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거가 잘못됐다’는 감각이 폭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는 있습니다. 1987년 투표함 반출 저지 농성은 87년 민주화 항쟁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대통령을 직접 뽑는 첫 선거였죠. 동시에 광주학살 살인마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간절함 속에서 노동자와 시민들이 모여서 지킨 농성이었습니다. 2026년의 올공(올림픽공원) 시위는 앞서 시위 참여자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누가 당선자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방향 없는 분노가 폭발했기에 사건을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낳았고 많은 이들이 거리감이나 우려, 냉소,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선거가 잘못됐으니 다시 선거를 하자’는 요구는 ‘1인 1표’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이를 소비자로서의 분노나 공정성에 대한 집착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미류는 “그렇다고 이 요구의 권리적 의미가 격하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민주주의의 핵심 권리인 보통선거권을 둘러싼 요구가 올림픽공원에서는 극우와 만나는 계기가 되었을까. 왜 이 요구는 극우에게 더 유리한 정치적 조건으로 작동했을까. 이에 대해 미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자유주의 이후 민주주의가 ‘더 나은 삶’과의 연결고리를 잃고 ‘더 나은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쯤으로 축소되어 온 역사, 그래서 민주주의에 ‘투표할 권리’만 남은 것이 이번 시위가 시작되는 배경의 현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1인 1표’의 무게가 더욱 커진 것이죠. ‘1인 1표’가 공허하게 들린다면 그 요구 자체가 아니라 그 요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정치적 힘이 공백이기 때문입니다. 올공시위는 분명 민주주의를 질문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민주화할 방향도 세력도 없는 것이죠. 그런 조건에서 재선거 요구의 역설이 생겨난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질문함과 동시에, 민주주의를 민주화할 방향과 세력이 함께 힘을 모으는 장소와 관계들을 떠올려 본다. 내게는 남태령이 그랬다. 동자동의 쪽방 주민들도 그렇다. 울산의 이주노동자 행진도 그렇다. 풍천리의 마을 주민들도 그렇다. 홍대입구역에서 춤을 추었던 차별금지법 만드는 나라 액션크루들도 그렇다. 그러자 나는 다시금 올림픽공원을 향해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집담회를 며칠 앞둔 시점에 정의당에서는 올림픽공원 시위자들이 말하는 재선거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런 방식의 개입이 민주주의를 질문하면서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방향과 그런 방향을 제시하는 세력이 되는 길인 것인지는 고민이 되는 것이다. 미류는 ‘재선거 요구’가 가지는 역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는 판결의 핵심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결과에 영향이 없다면 무효로 처리하지는 않는 것이죠. 법적 제약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재선거를 한다는 것은 이미 투표한 이들의 권리까지 무효화시키는 일입니다. 그만큼 현행 질서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겠다는 의지와 책임이 있을 때 가능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가장 적극적일 수 있는 이유는, 지금의 질서를 깨기만 해도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죠. … 부정선거론과 선을 그으려던 노력이 오히려 부정선거론과 만나기 쉽게 된 역설은 우리 앞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 그럴 때 우리는 민주화 이후의 탈민주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내게는 또 하나 진절머리가 나는 장면이 있었다. 올림픽공원을 두고 스레드에는 "예쁘고 잘생긴 20대가 많다", "여기서 소개팅해도 되겠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젊음과 정상성을 셀링 포인트 삼는 극우 집회의 모습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일정한 현실이기도 했다. 헬스, 뷰티, 요리 등 정치와 무관한 분야의 청년 인플루언서들까지 올림픽공원 시위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평소 자취 요리 콘텐츠를 올리던 인플루언서가 관련 게시물을 올리는 것을 보며 이런 변화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책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는 독일 극우가 비건 요리 프로그램이나 격투기 문화를 통해 정치와 무관한 일상 영역으로 지지층을 넓혀 온 과정을 소개한다. 중요한 것은 올림픽공원 시위를 계기로 기존 극우가 “새로운 대중”과 온·오프라인에서 연결될 통로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종교나 노골적인 혐오를 매개로 하지 않고도 극우와 접속될 통로”가 열린 것이다.
이에 미류는 “지금의 사회운동이 올공 시위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만 우리는 “‘민주주의’와 ‘참정권’에 관심이 모일 때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관심이 옮겨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장애인과 청소년을 비롯한 참정권 배제 문제를 폭넓게 묻는 성명들을 일례로 소개했다. 두 번째로는 “참정권 침해의 질문을 확장하는 것”을 제안했다. 무투표 당선에 대해서, 선거운동 과정에서 후보들의 끔찍한 혐오 발언이나 혐오 현수막이 방치되는 문제에 대해서 등. 세 번째로는 “극우 세력화의 쟁점을 이해하기 위한 관점들을 축적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극우 세력화의 양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운동들이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도 말했다. 마지막으로 미류는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위한” 사회운동의 과제를 제안하며, 함께 토론할 것을 제안했다.
“민주주의를 제도와 절차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선다면,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운동의 과제는 대중의 힘을 조직하며 삭제되거나 은폐된 갈등을 정치화하고 권력을 재편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운동은 우리 자신의 문제 설정과 대안을 내놓고 대중적 기반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금 우리가 마주하는 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는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밝히고 공공성의 급진적 대안을 조직해 나가는 운동, 그래서 노동과 돌봄의 새로운 구조와 권리를 창출하는 운동들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다시금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올공 시위는 이런 고민들에 더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 질문해야 하는 과제를 제기한 것은 아닌가 고민도 하게 됐습니다. … 정치적 유동성이 극우 세력화에 훨씬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기 쉽다면, 우리가 얘기해온 ‘대표되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극우와 연결되기 훨씬 쉬워진 조건이라면, 사회운동의 정치는 어때야 하는가 질문하게 됩니다. 운동들이 극우와의 경계 짓기를 넘어서 우리 자신의 대안을 만드는 노력을 충분히 해왔는가 고민도 하게 됐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불신을 고취하는 것과 다른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정권이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위해 기능하려면 참정권의 제도에 대한 제안을 넘어 ‘우리와 함께 정치하자’는 제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거나 좋은 공약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평등으로 가는 풀뿌리를 조직하며 세력을 키워가는 과정, 그 정치적 성과를 함께 축적해가는 과정을 사회운동이 어떻게 함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고민들과 복잡한 마음들 나누면서 함께 토론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미 늦은 타이밍일 수도 있지만, 아직 올림픽공원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늦은 타이밍은 또 아니다. 더욱 늦기 전에 올림픽공원 시위에 관해, 우리가 같이 확인해야 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기존 극우는 새로운 극우를 만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우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는 과정 속에서 놓쳐선 안 될 장소와 시간이 올림픽공원에 있다. 미류의 발제를 혼자 읽긴 아까워서 이번 글에 인용을 많이 해왔다. 전문은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홈페이지 내 [소식] 탭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미류의 발제 전문 보기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긴급집담회 <올림픽공원 시위에서 우리가 본 것들, 보아야 할 것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