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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살아갈 집의 최저주거기준 세우기 대.작.전!

기후정의동맹에서 초기부터 기후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온 주제가 있다. 바로 ‘주거권’이다. 특히 2023년 <N개의 기후정의 선언대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기후정의를 위한 반빈곤·주거권 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집이 상품이 되어버린 사회, 더 많은 돈과 집이 있어야만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불평등한 사회 자체가 재난이며 이런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주거권 차원의 ‘기후정의’ 논의를 쌓아왔다.

11월 28일 금요일 아랫마을에서 기후정의동맹의 세 번째 월례포럼으로 <기후정의를 위한 최저주거기준 개정안 만들기 대.작.전> 워크숍이 진행됐다. 폭염, 폭우, 한파가 일상이 된 기후위기 시대에 집의 조건이 생존과 존엄을 위한 중요한 권리임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주거기본법 상 ‘최저주거기준’은 여전히 면적 중심의 논의에만 머물러있고, 난방과 단열 등의 구체적 해결책은 제시하고 있지 못한다. 또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개념 자체가 ‘주택법’에 따른 ‘주택’만을 대상으로 하는 바람에 쪽방과 고시원,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비닐하우스 등의 다양한 형태의 거처는 안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있다. 월례포럼은 소수 전문가나 관료들의 시선이 아닌 비적정 주거에서 살아온 이들의 경험과 필요 위에서, 특히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새로운 주거 기준을 써보자는 취지로 준비되었다.

월례포럼은 크게 세 개의 파트로 진행됐다. 첫 번째로는 홈리스행동, 동자동사랑방, 기후정의동맹에서 한 명씩 이야기손님으로 와서 각자의 자리에서 주거의 최저기준에 관한 경험과 고민을 나눠주었다. 고시원에서 SH공사의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으로 들어간 홈리스행동 용수 님과 15년 동안 동자동 쪽방에 살고 있는 동자동사랑방 수만 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줬다. 기억에 남는 건 기후위기는 목숨을 위협하는 극한 날씨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꾸준히 삶의 질이 깎여나가는 경험이라는 점이다. 폭염 때는 자다가 숨이 차 잠에서 깨다 보니 늘 피곤하다거나, 한겨울에는 추울 뿐 아니라 안팎의 온도 차로 습기가 생겨 매일 기침을 하며 곰팡이와 시름한다거나. 건강하지도 안정되지도 못하는 집이 이제는 나아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또 지금의 최저주거기준은 면적 중심의 논의에 머물러있지만, 14m²라는 최소면적(1인가구 기준)조차 집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경험상으론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좁으니 장롱을 놓을 수 없어서 집 정리가 항상 어렵고, 베란다가 없어 실내에 빨래 건조대를 두니 공간이 더 좁아졌다는 삶의 이야기로 어려움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또 에너지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냉난방 설비가 잘 갖춰져야 하는데, 이때 에너지 요금이 감당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로부터 ‘에너지 바우처’라는 정책도 설명해줬다.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에너지 비용을 지원하는 이 정책은 일부 도움이 되지만 수급자 중에서도 ‘일부’에게만 ‘소액’을 지원하는 개별 소비 보조 방식이라서, 실제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충분히 보장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나눠주었다.

기후재난 참사가 반복되며 정부와 지자체도 나름의 대응책이라는 걸 내놓고 있긴 하다. 반지하 물막이판 설치처럼 단기 대책부터,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처럼 장기 계획까지 꽤 다양하다. 그러나 큰 틀에서 기후위기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한 행보나 태도를 보이고 있진 않다. 얼마 전 발표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만 해도 그렇다. 국제사회와 한국 시민사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최소 65% 감축이 필요하다고 말해왔지만, 정부는 2035년의 감축목표를 53~61%로 냈다. 여기서 61%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숫자일 뿐, 실질적으론 53%에 가깝게 진행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방향도 문제다. 정부는 온실가스를 배출권거래제, 대기업 신기술 투자와 금융지원 등으로 감축하려고 한다. 배출권거래제는 그 설명엔 “기업 규제”가 적혀있지만, 실제론 정부가 앞장서 기업이 탄소를 배출할 권한을 주겠단 제도다. 정부가 그간 배출권을 너무 많이 나눠준 탓에, 오히려 기업들은 남은 권한을 다른 기업에게 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인 포스코가 2021년에 3백억을 벌었던 바가 있다.

주거권과 관련한 기후위기 대응책을 살펴보면, 대표적으로는 ‘그린리모델링’이 있다. 지금의 그린리모델링은 사실상 건물 소유주에게 공사 자금 대출 이자를 지원해주는 사업에 가깝다. 그러고선 건물과 집값, 임대료는 상승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그린리모델링이 되면 기존에 그 집에 살고 있던 이들은 쫓겨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거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고려한 정책적 고민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령 기후생태위기를 심화시키지 않는 ‘공공임대주택’을 떠올려보자면, 새로 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기존 주택을 공공이 매입하여 그린리모델링을 진행할 수도 있겠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책으로써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 있는 기업들에게 ‘기후정의세’ 같은 걸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뒤이어 두 번째로 강연 <기후정의를 위한 최저주거기준 마련 요구>가 이어졌다. 최저주거기준을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주거생활 기준’이라고 할 때,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려해볼 수 있다. 자신의 경제적 처지에서도 적절한 주거에서 살 수 있는지. 깨끗한 물과 전기, 채광, 도로, 에너지, 의료 등에 무리 없이 접근할 수 있는지. 여기에 주택의 건설방식에 있어 재료나 형태 등도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도 알게 됐다. 모든 사회적 권리들을 고민하고 요구하는 기반으로써 집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대여섯 명씩 조를 나누어 ‘최저주거기준 빈칸 채우기’를 진행했다. (1) 기후위기 시대 최저주거기준이라면 이런 조항은 꼭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준을 현실로 만들려면 (2) 어떤 개정운동이 필요할까?를 나누어 전지에 적었다. ‘나’의 집을 떠올린 나와 다르게 쪽방이나 고시원, 기숙사에 사는 이들은 ‘공동’의 시설에 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줬다. 가령 우리 조에는 기숙사에 사는 학생이 주방이 지하에 있어 매번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다갔다 해야 하고 냉장고도 개인 공간이 협소하여 외식만 하게 된다는 경험을 나눠줬다. 다른 조에선 공동세탁실, 집과 집 사이 거리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각자가 각자의 집에 관한 경험으로 ‘최저주거기준’을 세워보며, 지금의 정책이 얼마나 삶과 동떨어져있는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번 월례포럼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집이 나를 살게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당사자들의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최저주거기준을 세우는 개정안 만들기 대작전의 첫 시작이 좋다. 집이 좁고 춥고 덥다는 문제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삶의 안전과 존엄을 흔드는 일이라는 걸 확인한 만큼, 이제는 현실의 주거조건을 제대로 반영한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져야 할 테다. 그 기준을 실제로 바꾸기 위한 논의와 행동을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쌓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