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팔레스타인에서 제국주의의 도구가 되다
“전기는 매일 6-7시간 정도 들어왔고, 남은 시간은 전기 없이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샤워 하는 것조차도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정전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고 이스라엘 점령군이 고의적으로 전력을 무기로 삼아 가자지구 민간인을 억압하고 체계적으로 해치는 노력의 일부였습니다.” 가자지구 출신의 활동가 살레 알-란티시가 말했다. 철저히 이스라엘군에게 의존적으로 생활하도록 체계화된 식민지배 하에서 살레와 가족들, 수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일상의 작은 일들도 고통이 되고 있다.
그가 전한 이스라엘 점령군이 에너지를 무기로 써먹는 방식은 팔레스타인들의 에너지 공급망 접근을 통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스라엘군은 에너지 기업의 투자를 받아 팔레스타인의 에너지 자원들을 약탈하고 돈을 번다. 그 돈으로 식민지배를 지속하고 부를 축적한다. 이스라엘군과 에너지 기업 간의 긴밀한 결탁이 기후정의와 민중의 해방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 중 하나가 바로 ‘다나 페트롤리엄’이다.
다나 페트롤리엄, 그리고 이 회사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한국석유공사. 이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대응은 기후정의와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에너지 기업 대응 실천 가이드>(이하 가이드)와 함께, 지난 11월 26일 울산에 위치한 한국석유공사 앞에서 열린 ‘11.26 한국석유공사&다나페트롤리엄 규탄 국제 행동의 날’ 집회(공동주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긴급행동 울산,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기후위기비상행동, 민주노총 기후특위, 울산 기후위기비상행동)를 돌아본다.
집단학살에 힘 보태는 대자본들의 ‘에너지’ 거래
디스럽트 파워, 팔레스타인을 위한 글로벌 에너지 금수조치 운동, 팔레스타인 BDS전국위원회에서 작성하고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에서 한국어로 배포한 가이드는, 이스라엘의 에너지가 “집단학살을 ‘정상화’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다국적 에너지 기업들은 20~100년 단위의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이스라엘에 투자한다. 이 돈이 이스라엘의 ‘전쟁 경제’를 굴린다. 식민지배와 군사점령으로 빼앗은 에너지와 자원들을 팔아넘겨 벌어들인 돈과 그 돈을 매개로 맺어진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스라엘로부터 석유 및 가스 탐사권을 매입함으로써 사실상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선언하는 이 결탁 행위들을 중단시키는 것은 자본의 논리가 기후정의와 민중의 해방을 압도하는 상황을 전환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싸움이다. 다나 페트롤리엄, 그리고 이 회사의 지분 100%를 가진 한국석유공사에 대한 싸움 말이다.
한국석유공사의 다나, 전쟁범죄의 공모자
“전범국과 거래해야만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해방은, 우리가 이제는 가해자가 돼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고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까? 한국이 잘 살기 위해서 피 묻은 돈을 벌어야 합니까?” 울산 집회에 함께 한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한나 활동가는 한국석유공사와 다나 페트롤리엄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다나 페트롤리엄은 2023년 10월에 이스라엘로부터 석유 및 가스 탐사권을 매입한 뒤 탐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가이드에 따르면 이는 국제법 위반이다. "점령국의 천연자원 약탈, 매매, 착취를 금지"하는 국제법 ‘헤이그 제2협약 제43조’에 근거하여, 다나 페트롤리엄이 사들인 바다는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에 속해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바다에 있는 것들을 파괴하거나, 그 소유권을 팔 자격이 없다.
이 날 울산 투쟁버스와 200여명의 시민들은 한국석유공사에게 “한국석유공사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연료를 대지 마라!” 1만인 서명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다나 패트롤리엄을 포함한 에너지 기업들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점령에 참여하고, 기후를 파괴시키는 것을 규탄”하며, 불법 가스 약탈 즉각 중단과 이스라엘과의 계약 철회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울산가는 투쟁버스가 출발하기 바로 전날 밤에 서명인 목표 1만명을 달성했다는데, 버스 안에서 이 소식을 전하던 긴급행동 활동가들의 얼굴이 밝아 보여 나도 잠시간 함께 기뻤다.
‘기후정의’로 ‘평화’를 쟁취하는 방법
울산 집회는 기후정의동맹,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기후정의를 외치는 단체들도 함께 공동주최 한 자리였다. 팔레스타인이 되찾아야 할 평화와 기후정의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기후정의운동에 있어 팔레스타인 해방은 어떤 의미일까? 이번 집회를 통해, 나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기후정의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김은정 위원장은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와 다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석유공사의 화석연료 채굴은 생태계 파괴, 온실가스 배출만으로 그치지 않으며, 가자 앞바다 시추를 통해 팔레스타인 학살을 돕고 에너지 식민화를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가 보기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초토화 전략은 “자본의 자기증식과 무한한 잉여를 위해 지구 구석구석 사람과 자원을 약탈하고 남은 연료를 모조리 태움으로서 지구를 회복 불가능 상태로 몰아가는 초토화”와 닮아 있다.
기후정의동맹 은혜 활동가는 병원도 학교도 지하철도 공장도 모두 전력 없이 돌아가지 않는데, 여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소수 기업의 돈벌이로 맡겨선 안되며, 전쟁범죄와 학살의 연료로 쓰이게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고 외쳤다. 에너지는 돈 되는 상품이 아니라, 누구나 차별 없이 보장받아야 할 삶의 필수 요소, ‘공공성’ 높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세상의 착취가 자본으로 이어져 있는 세계를 바꿔내고 싶을 때, 우리에게 팔레스타인 해방은 남의 일에 대한 연대가 아니라 “반드시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우리의 투쟁과 해방이 된다.
연대의 힘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변주현 조합원도 연대발언을 함께 했다. 지난 5년 간 불법파견 해고 투쟁을 해냈고, 내년에 현대건설기계 정규직 복직을 앞둔 이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노동자로서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들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사용되어 학살 도구가 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들은 잿더미가 된 팔레스타인을 재건하는 평화와 자유의 수단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들은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을 해결하는 삶과 생존의 수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울산기후위기비상행동, 울산환경운동연합 이현숙 활동가는 화석연료 석유로 돈 버는 공장이 즐비한 곳, 양 옆으로 핵발전소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끼고 있는 곳, 우리나라 최초의 ‘공해병’이 발생한 곳이 바로 울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울산과 한국 곳곳에 위치한 석유화학 공단의 노후화 문제를 지적하면서, 한국석유공사가 어떤 대안을 가지고 에너지 전환을 할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고 더 많은 개발과 생태 파괴에 뛰어들며 학살과 에너지 수탈에 가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들이 한국 울산의 한국석유공사 앞에서 모여 집회를 열었듯이, 데이브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활동가들도 애버딘의 다나 페트롤리엄 본부 앞에서 모였다고 한다. 울산 집회에서 대독을 통해 전해진 데이브의 이야기도 인상 었다. 그는 “다나의 주인들이 수천 마일 거리 멀리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스코틀랜드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서로의 운동을 연결시키면서 지리적 거리를 극복하는 국제 연대를 구축해냈다면서, “다나 페트롤리엄과 한국석유공사 그리고 한국 정부가 응할 때까지 우리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자”는 의지를 전했다.
우리는 집회를 마친 뒤, 1만인 서명을 전달하는 활동가들을 앞장세우고 공사 앞까지 깃발을 휘날리며 걸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활동가들이 실내에서 서명을 전달하고 면담을 나누는 동안, 건물 코앞에 도달한 사람들이 깃발을 휘날리고, 다나 페트롤리엄과 한국석유공사를 규탄하는 노래를 부르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염원하는 말들을 아스팔트 위에 빼곡히 적었다. 서울에 돌아온 뒤, 함께 갔던 사랑방 활동가들과 적어두었던 ‘정의 없이 평화 없다’라는 피켓을 책상 옆에 세워두었다. 한국석유공사 앞에 뽀얀 분필로 빨간색 초록색 수박을 그려내던 이들을 생각한다. 나의 노동이 학살 도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평화와 자유를 향해 조력하는 과정이 되길 바라는 마음, 나의 지역이 기후위기와 수탈의 시작점이 아니라 투쟁과 대안적 전환의 교차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떠올려본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나의 해방이라는 말을 곱씹는다. 기꺼이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해 함께 연결되어 있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