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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공공성’ 담론과 운동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 체제전환연구모임 작은포럼 ‘공공성의 탈환과 재구성’ 후기

공공성? 공공임대아파트에 들어갈 날을 바라며 들었던 청약저축, 몇 번 넣었다가 떨어진 후로는 마음을 접었다. 사무실 근처 영등포문화원에서 지난 봄부터 서예를 배우고 있다. 수원에 회의하러 갈 때 애용했던 무궁화호가 예전보다 줄었다. 동네에 공공체육시설이 들어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완공시기가 지났지만 아무 진척이 없다... 나의 일상과 연결된 공공성을 떠올려보는데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럼에도 공공성은 내 삶과 바로 만나는 말로 바로 연상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민영화 저지를 위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을 공공성 투쟁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갖고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불어닥치며 경쟁과 비용, 효율을 이유로 파괴되는 자리를 지키는 대안적인 말로 2000년대 공공성이란 말을 처음 접했고, 그 말이 넘쳤던 시간이 있었다.

익숙하지만 또 멀어진 말인 공공성을 다시금 고민하는 기회가 생겼다. 6월 26일 ‘공공성의 탈환과 재구성’ 포럼이 열렸다. 체제전환의 전략으로 공공성 운동의 가능성에 대해 토론해온 체제전환연구모임에서 연 자리였다.

 

 

체제전환을 향해 공공성을 재구성하자

발제를 맡은 미류 활동가(인권운동사랑방)는 다시, 누구와 함께 운동을 만들어갈 것인가 질문하며, ‘모두의 삶의 필요가 충족되는 질서를 가질 권리 투쟁’으로 공공성 운동을 접근하자고 제안했다. 먼저 한국사회 공공성 운동의 궤적을 살폈다. 2000년 전후 신자유주의의 전면화와 함께 공공성이 화두가 됐지만, 그 이전으로 거슬러 가보면 해방 이후 공공성의 토대가 형성되다가 사라진 역사가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자본주의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공공성은 채 있지 못한 채 ‘없어진 것’이 됐다. 2000년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은 공공성을 다시 ‘있게 만드는’ 출발선이기도 했다. 이때 발전, 철도, 가스 등 국가기간산업을 매각하려는 민영화 시도를 막아낸다. 공기업의 자리는 지켜졌지만, 자회사로 쪼개지고 민간자본을 들이며 기업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제 신자유주의 기획은 노골적인 민영화가 아닌 교묘한 외주화로 이어졌다. 업무의 분할과 위계화를 시장의 원리가 가른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확산으로 주로 조명된 이러한 문제는 공공성 파괴 시도이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 공공이 주도하여 사회서비스 시장이 열리는데, 공적 제공은 모두 민간에 위탁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흐름에서 서비스 이용자, 소비자, 민원인이라는 신자유주의 주체로서의 개인만 남게 됐다.

그리고 공공성을 둘러싼 여러 사례들과 투쟁의 역사를 살피면서 앞서 공공성 운동을 재정의하며 새롭게 형성해가야 하는 ‘모두’, ‘필요’, ‘충족’, ‘질서’라는 말에 담길 내용과 방향을 그려보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제도는 시민권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투쟁이 공공성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모두’가 되고 싶게 하는 정치적 기획이 공공성 운동을 함께 할 주체 형성일 수 있다고 본다.

이어진 토론에서 구준모 활동가(기후정의동맹)는 “저항하라, 탈환하라, 재구성하라” 세 축으로 에너지 민주주의를 개념화한 것을 소개하며, 민영화에 대한 ‘저항’, 민영화된 공공서비스에 대한 ‘탈환’, 인프라와 공공서비스, 권리의 ‘재구성’으로 공공성 투쟁을 다시 그려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축이 교차하고 결합하는 모습으로 본격적으로 띄운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의 의미를 짚었다. 정성식 연구원(시민건강연구소)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공병원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정작 낙후된 공공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현실인데, 그 배경에는 공공병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민간병원이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게 의료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인식을 유포해온 체제 차원의 전략이 있음을 짚었다. 어디서나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게 공공병원을 지으라는 운동이 체제전환의 투쟁일 수 있음을 말하며 현재 여러 지역에서 진행 중인 공공병원 설립 운동과 접속하는 고민을 나눴다. 나영 활동가(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는 재생산 영역에 국가, 자본, 극우의 개입으로 공공성 구축의 기회와 가능성을 단절시키고 있는 현실을 짚었다. 그리고 의료인에서 임신당사자로, 병원에서 임신당사자가 편한 공간으로 방향을 전환한 SMA(Self-Managed Abortion/스스로 하는 임신중지)를 소개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자원을 재조직하며 공공성을 재구축하는 가능성을 그렸다.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저지 투쟁’ 중심, 업종별로 파편화, 소유구조와 직결되어 시장주의에 대항하는 싸움으로 그간의 공공성 투쟁을 짚었다. 그리고 공공경제론으로 종합적인 체제 모델을 그리며 생명-안전-일상의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구체적인 과제들을 재배열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우리가 발명해야 할 미래의 공산주의

3시간 꽉 채운 발제와 토론을 쫓아 열심히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언젠가부터 내 삶과는 동떨어진, 어떤 감응도 없게 된 ‘공공성’을 이 세계를 바꿔낼 열쇠말로 다시 그려가보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포럼을 준비하며 연구모임에서는 공공성을 “우리가 발명해야 할 미래의 공산주의”로 말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했다. 이 체제가 그은 경계선을 넘어 존엄하고 평등한 삶으로 ‘모두’의 자리를 넓혀가는 과정, 주어지는 ‘대상’의 위치가 아닌 만들어가는 ‘주체’의 위치로의 전환, 공공성을 둘러싼 담론과 운동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됐다. 우리의 삶과 엮어가는 공공성 운동의 시도와 사례들을 쌓아가는 시간이 이어지길 바란다.

*포럼 자료집은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www.gosystemchange.kr/resources/25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