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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정책에서 배제된 틈새들, 공공성의 틈새를 말한다

2010년 8월의 끝자락, 종로 3가에는 틈새를 자처하는 이들이 모였다. 올해 봄, 35세미만 1인 가구는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독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좌절하게 하고 있다는 점을 사회에 알리고자 집단민원인을 모으기로 했다(http://www.newjinbo.org/xe/ytsignature). 보름동안 500여명이 모여 5월 19일 국토해양부에 집단민원을 제출하였는데 두 달 동안 미루고 미루다 돌아온 답변은 달랑 두 장. 국민주택기금의 재원이 부족하고 대출은 부양가족이 우선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왜 국민주택기금이 부족한지, 왜 더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1인 가구가 단지 가족형태 때문에 정책에서 배제되어야 하는지 속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우리는 법도, 규정도 아닌 업무매뉴얼 따위 때문에 전세자금대출에서 제외된 이들이지만, “소수자 주거권 확보를 위한 틈새 없는 주거권 만들기 모임 (틈새모임)”이라는 다소 긴 모임 이름을 정하고는 인권위 진정을 준비하면서 그 규정이 가진 의미를 파악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주거권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켜 보기로 했다.

공공성의 틈새

“주거는 기본권이다”는 명제는 이제 국제인권기준 상에서는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부동산은 국민의 주요한 소유대상이다”는 강력한 명제 앞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주거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주장과 노력은 일어나고 있고, 정부 또한 공공성이라는 틀은 아니겠지만 부동산 시장에 대한 개입뿐만 아니라 서민주거안정, 저소득층 주거지원 등의 이름으로 나름 주거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9월 28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주거안정을 위해 보금자리주택을 21만호 공급하고 1~2인 가구를 위한 도심 내 소형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지원하며 무주택서민의 주택금융 비용부담 완화를 위한 주택구입·전세자금을 지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은 주거안정이라는 목적에도 부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보금자리 주택은 시중의 다른 주택에 비해 최대 50%까지 저렴하다고 하지만 선뜻 이 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서민에게는 또 다른 빚을 예고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인 도시형 생활주택은 민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정부가 한 것은 규제완화밖에 없다. 당연히 임대료가 비쌀 수밖에 없고 고시원과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주택구입·전세자금 지원은 35세미만의 1인 가구를 배제하고 있다. 정부의 주거 대책이라는 것이 대책이라고 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렇다면 대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주거의 공공성이란 뭘까. 주로는 신규건설과 매입을 통한 임대주택에 대한 획기적 공급, 임대주택에 대한 소득, 장애, 나이 등에 따른 쿼터제 도입, 토지 공공성 도입, 강제퇴거 금지, 다주택 소유에 대한 규제 등을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틈새들은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대안적으로 제시된 주거의 공공성에도 틈새가 있다고 주장한다. 주거는 삶의 터전이며 다양한 삶의 양식이 시작되고 타인, 세계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준거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단지 주거는 계층적 차이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공간이라고 여겨지는 집은 사회와 분리된 가족의 공간이라고 인식되는데, 이 가족은 관습과 제도를 통한 인정의 영역이다. 하지만 계층이라는 물질적 구조와 가족이라는 사회적 인정이 별개의 것이 아니다. 국가의 정책은 철저하게 가족을 통해서, 계층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제도화되지 못한 다양한 삶의 방식이, 사회적 관계가 차단될 수 있다. 따라서 공공성이 배분되는 구조, 주거가 할당되는 단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면밀하게 보지 않으면, 거기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은폐되기 쉽다. 이런 의미들이 고려된 공공성을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소수자들도 주거권의 감각을 가져보자

인권위 진정을 계기로 만난 틈새들은 주거권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각자의 운동을 확장해나가려고 하고 있다. 기존의 주거권 운동의 주체들은 철거민으로 대표되었는데, 주거의 문제에 대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세입자들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집은 소유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바뀔 수도 있고, 정부의 정책 또한 아파트 분양에 집중되지 않게 될 것이다. 소수자들이 주거권에 대해 감각을 가진다는 것은 소수자들이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집과 집을 둘러싼 지역사회에 소속감을 가지고, 차별이나 폭력의 위험 없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공간을 점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수자들이 어떤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은 가격에 따른 접근가능성의 문제를 넘어 어떤 삶의 방식과 정체성이 인정될 수 있는 가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번 틈새모임을 통해서 우리는 좀 더 생생한 사례를 모으고, 우리의 요구를 정식화해보겠다는 계획을 나누었다. 그 노력은 아마도 주거의 공공성이라는 틀에서 다른 이들과 만나게 할 것이다.


덧붙임

나영정 님은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