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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월담 10년을 돌아보며

 

 

2013년 인권운동사랑방이 20주년을 맞으며 ‘대중의 힘을 변혁적으로 조직’하는 운동전략을 세우면서 시작했던 활동이 있습니다. 바로 월담-반월·시화공단노동자 조직화-활동입니다. 그 시기 사랑방은 지난 20년 한국사회 그리고 사회운동의 궤적을 살피며 인권운동/사랑방은 어떻게 움직여왔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체제변혁의 전망을 그려가는 길로 삼으며 월담 활동에 함께하게 된 데는 ‘노동’ 그리고 ‘조직화’라는 두 가지의 키워드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 열망들이 어떻게 모일 수 있을지 고민할 때 보편적인 삶의 조건을 좌우하는 생산관계를 우회할 수 없고 노동에 주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인권운동에 요청이 들어오고, 사랑방도 피해 당사자와 함께했던 경험들이 있는데 이러한 역할을 넘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어요. 인간의 존엄을 구획하고 할당하는 구조에 맞설 힘을 조직하는 것을 우리의 과제로 삼고 그 실마리를 공단조직화 활동에서 찾아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공단에서 월담이 움직여온 시간

3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일하는 국가 최대 산업단지인 반월·시화공단의 현실을 대표하는 말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이었습니다. 사업장 대부분이 중소영세사업장인 조건은 노동자들에게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스스로 감내하는 이유가 되고, 업체는 노동조건 변화 요구에 폐업이나 해고로 대응하면 그만인 이유로 삼습니다. 여러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하기 어려운데, 이러한 공단의 특성 때문에 사업장 단위 노조는 만들기도 지속하기도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원청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들이 밀집한 공단에서 물량을 빼거나 압박하며 실질적으로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사슬관계가 공단을 움직입니다. 사업장 넘어 공단을 단위로 한 조직화를 고민하며 시도해 온 시간들이 있었고, 그 흐름에 월담도 함께 있었습니다.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함께 공단과 지역을 바꾸자는 포부를 담아 월담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2023년 어느덧 10년을 함께 해왔던 월담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사랑방에서 가졌습니다. 매년 평가와 방향 논의를 해왔고, 운동전략과 연결 지어 우리의 과제를 고민하며 찾아가고자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왜 공단이냐, 왜 노동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하고 우리 안에서 서로 던져오기도 했습니다. 사랑방 안팎으로 그 질문들을 품고 답하고자 고심하며 계속 움직였는데, 그간 어떤 시간이었는지 조금 더 너른 조망 속에서 해석하고 발견하여 이후를 가늠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함께 나눌 이야기를 준비해 온 시간입니다.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으로 시작해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월담>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발자취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초반 월담을 열심히 알리며 언제든 월담을 찾을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광활한 공단 어디에서 활동을 펼쳐갈지 구석구석 다니면서 거점이 될 곳들을 찾았던 ‘공단지도 그리기’로 시작해 정기적으로 소식지를 만들어 선전전을 진행하고, 매달 안산역에서 상담소를 운영하고 문화제를 열며 접촉면을 만들기 위해 바삐 움직였습니다. 임금실태와 요구를 비롯해 노동/생활환경, 인권침해,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영향, 쉴 권리 등 공단의 현실을 드러내는 의제를 고민하며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공단노조와 지역투쟁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활동하면서 초동주체가 될 사람들을 만나고 이를 더 너르게 엮어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업장의 여러 문제를 나누고 어떻게 맞설지 궁리하며 서로 힘이 되는 관계, 장소가 되기를 바라면서 임금교실, 노조하자모임, 최저임금위반감시단 등 함께 모일 거리를 고민하고 자리를 만들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고, 체불임금을 받아내기도 하고 화학물질조례를 제정하기도 하며 유의미한 결실을 일구기도 했지만, 더 깊고 길게 발걸음을 포개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건 어려웠어요. 월담에서 7년여 시간을 돌아보며 진행했던 전망 논의 이후 조직화 활동의 결과로 그려온 공단노조를 다르게 접근하고 시도하게 됩니다. 지역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으로 공단노조를 준비하기로 하면서 2021년 월담노조로 재출발하였습니다. 사업장 규모가 ‘영세하다'며 휴게공간 설치 의무화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범위에서도 제외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는 너무 쉽게 뒤로 넘겨집니다. 공단지역에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전하면서, 함께 체감할 수 있는 작은 변화를 만들 날을 기대하며 활동하고 있는 월담노조입니다. 

 

사랑방의 월담 활동을 갈무리하며

월담을 돌아보는 시간에 월담만 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로 전략조직화 사업 20년을 맞으며 민주노총에서 진행한 평가와 전망 토론도 참조점이 되었습니다. 97년 IMF 이후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화된 흐름 속에서 2003년 민주노총은 전략조직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불안정노동이 심화되는 와중 정규직 중심 넘어 전체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조직화 사업이 이어지고, 그중 공단도 있었습니다. 월담에서 실태조사를 할 때 눈에 들어온 것 중 하나가 근속기간이었습니다. 현재 사업장에서 일한 기간은 짧지만, 공단 안에서 일한 기간은 깁니다. 5인 미만 규모도 다수로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한 공단에서 노동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을 찾아 공단 안에서 계속 부유합니다.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며 공단 안에서 이동을 반복하는 조건으로 업종과 사업장 너머 노동자들을 가로지르는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그러한 지역성과 집단성으로부터 실마리를 찾았지만, 추상적인 당위를 구체적인 현실에서 관계로 조직하고 싸움을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을 월담 활동을 하며 배웠습니다. 지난 10년 분투해왔음에도 막막하고 어려운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 시간이 이어져왔습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서투름, 거대한 공단을 떠올려볼 때 작기만 한 우리의 역량과 조건, 이런 것들이 먼저 떠오르곤 했는데요, 공단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고민을 접하면서 월담을 넘어 공단의 객관적인 조건에 내포된 어려움으로 월담의 지난 시간과 현재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공단노동자들의 집단적 이해관계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를 계속 질문하며 도전이 이어지고 있고, 그 길에 월담노조도 있습니다.

월담을 되돌아본 10년 사이 사랑방의 변화도 다시 살피게 됩니다. 체제변혁이라는 텅 빈 기표 같기도 한 말을 푯대로 다시금 세웠던 20주년 이후 10년, 사랑방이 함께 분투하며 엮어가는 운동들에서 그 방향과 내용을 채워가려고 고심하며 움직여왔습니다. 그 사이 불안정노동이 어떻게 더 확산되며 존엄을 무너뜨리고 있는지도 더 살펴보게 됩니다. 고용관계만으로 책임을 설명하기 어려운 플랫폼노동 등의 비정형노동이 늘어나고, 제도화되어온 노동권의 확장을 이끌어온 노동조합운동을 탄압하는 흐름도 거센 상황.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그 시간에서 사랑방 운동의 자리들을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월담 활동을 사랑방은 올해까지로 갈무리하기로 하였습니다. 공단지역에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하며 세상에 닿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전하기 위한 월담노조의 분투는 이어질 것입니다. 그간 월담 활동을 하면서 공단을 오가면서 부딪히고 배웠던 것들을 기억하면서, 그 시간 위에 월담의 활동과 고민을 다르게 또다시 만날 날들을 기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