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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산책하는 즐거움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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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책을 자주 하고 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보는 재미가 있는 뭉게구름, 깨끗한 공기에 멋진 노을까지, 산책하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산책하게 만드는 멋진 전망이 압권인 공원이 가까운 곳에 생겼기 때문이다. 전망 명소라고 소문이 났는지, 좁은 골목길에 어렵게 차를 주차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이런 공원이 생기니, 산책을 안 할 도리가 없다. 여유가 좀 더 있으면, 한강 노들섬도 간다. 몇 년 전에 공연장과 몇몇 시설들을 갖춘 공원으로 조성된 뒤에는 운동하고 피크닉하기 참 좋은 곳이 되었다. 물론 나는 운동과 피크닉은 아니고, 산책을 할 뿐이지만 말이다. 주변에 이런 곳들이 생기니, 한 번 집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는 나도 산책이란 걸 하게 된다.

코로나19 4차 유행이 심해지면서 사랑방도 다시 재택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산책도 늘었다. 골치 아픈 온라인 회의를 몇 시간씩 하고 나면, 절로 바람 쐬고 싶어진다. 마스크의 답답함은 여전하지만,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를 잘 골라보면 맑은 공기 흡입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저녁 약속도 줄어들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생긴 변화다.

기후위기 대응 해법으로 이야기되는 그린뉴딜의 구호 중 ‘개인은 여유롭게, 공공은 호화롭게’라는 게 있다. 장시간 노동에 삶의 시간을 빼앗기고, 노동의 스트레스를 ‘보복소비’로 푸는 현대인들의 삶을 강제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제안이다. 풍요를 개인의 물질적 소비가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여 삶의 시간을 되찾는 것, 교육/의료/에너지와 같이 공공이 함께 이용하는 재화는 ‘호화’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산책은 바로 공공의 재화로서 ‘호화로운 공원’, 훌쩍 산책을 나갈 수 있는 근무조건 때문에 가능했다.

새벽배송을 하는 택배차량 소리에 잠이 깰 때가 많다. ‘텅텅’ 화물칸 문을 열고 닫는 소리. 지난 7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졌었다. 에어컨을 켜고 글을 쓰다가 창밖을 보니 옥상에서 혼자 지붕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있었다.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집 근처에 쉽게 갈 수 있는 ‘좋은 공원’ 하나쯤은 다들 있었으면 한다. 최대 규모의 도심 공원이니 하면서 ‘용산 공원’을 삐까번쩍하게 조성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공간이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답답할 때, 훌쩍 산책을 할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을 모두 가졌으면 좋겠다. 산책하는 즐거움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이 ‘거대한 소망’은 누구에게 청원하거나 기도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닐 거다. 단결하고 연대해서 잘 싸우는 수밖에 없다. 산책을 줄이고 투쟁을 늘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