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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무더위 대책이 아니라, 작업중지권이 필요하다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주 동안 전국적으로 낮 최고기온이 35℃를 넘겼다. 기상청은 폭염이 8월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라고 말하던 2018년에 이미 비슷한 더위는 반복될 것이라는 예고되었고, 불과 3년 만에 다시 무더위가 찾아온 것이다. 예견되었다고 하지만 일터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더위를 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마스크까지 착용한 채 일해야 하는 상황은 이들의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더 큰 문제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더위에도 노동자가 스스로 작업을 중지하지 못하고 일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무더위 대책으로 충분할까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지난 5월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가이드’를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가이드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일부 반영해 기온이 아니라 체감온도에 따른 행동 수칙을 세분화하는 내용을 명시했다. 7월 25일에는 더위가 더욱 심해지자 ‘폭염 대비 노동자 긴급 보호대책’을 발표했다. 주로 옥외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와 물류센터, 조선소 노동자들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집중 지도와 점검에 나서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공공부문에서 발주한 건설의 경우에는 공사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으로 실제로 노동자가 폭염을 피할 수 있을까. 가장 더운 시간대에 건설 노동자의 작업 중단을 권고하고, 공공부문 공사기한을 연장하는 대책은 2018년에 이미 시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간(2016~2020) 여름철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 26명 중 2018년에 사망한 노동자만 12명이었다. 정부는 작업을 멈추라 ‘권고’하고, 이를 ‘점검’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런 말로는 일터를 멈춰 세우지 못한 결과다.

 

누가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루어진 건설 산업에서 하청 회사가 일감을 따내는 방식은 최저 비용으로 입찰가를 제출하는 것이다. 인건비를 최소화시켜서 노동자를 투입하는 현장에서 더워서든, 추워서든 작업이 멈추면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이 비용은 결국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휴식시간만큼 노동자에겐 임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휴게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건설현장에서 무급으로 작업 중간에 휴식을 취하라는 이야기는 현장에 더 오래 머물고 임금은 덜 받아가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노동자가 스스로 위험을 느꼈을 때 작업을 중지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작업중지에 따른 비용이 노동자에게 청구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알기에 작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폭염으로 건설 작업이 중단되어도 노동자의 임금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건설현장에서 온열 질환 사망자가 많다는 이유로 더위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아닌 건설 노동자만으로 제한된 권고였다. 하지만 정부는 검토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다시 2018년에 시행했던 무더위 대책만 들고 나왔다. 비용과 관련한 대책으로 정부가 수주한 공사는 폭염으로 공사기한이 늘어도 비용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나마 정부가 급하게 할 수 있는 대책이지만 더위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에겐 닿지 못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폭염을 견디며 일하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무더위 대책만이 아니라 일터를 멈춰 세우기 위한 대안이다.

 

기후위기라는 상수

 

폭염, 폭우, 혹한, 가뭄과 같은 현상은 점점 더 짧은 주기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기후는 더 이상 예상하지 못하는 변수가 아니라 언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수가 되어가고 있다. 기업과 자본은 자신들이 기후위기를 대처해나가겠다고 말하며 대응의 주체로 스스로를 위치시키지만, 기업은 주체이기 이전에 책임자다. 애초에 기후위기를 유발해온 것은 기업과 자본이다. 자본은 지금껏 자연에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해왔다. 이 이유만으로도 자본은 응당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용부터 생산, 판매를 총괄하는 기업이 이윤을 취하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 이상기후가 상수가 되었다는 의미는 이상기후로 인해 노동자들이 이전과 같은 노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은 노동자를 상품과 다를 바 없이 취급하며 노동력을 ‘구매’하기만 하면 그게 어떤 환경이든 상관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라는 요구를 할 수 있고 그게 시장의 원리라고 말한다. 간단한 원리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노동자가 죽어 나간다.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면서 자본이 이윤을 취한다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책임도 자본의 몫이다. 기후가 이미 달라졌다면 상품 생산의 과정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추고 휴게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 인력을 충원하는 데 기꺼이 비용을 지출하라는 것이다. 이 비용을 지출하지 않기 때문에 폭염에도 기업은 이윤을 얻지만, 노동자에겐 재난이 도래한 것이다. 기업과 자본이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하지 못하도록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작업중지권이 시작이다

 

정부도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이렇게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가 나타나도 기후위기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늘 임시 대책만 들고나와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폭염 시기 작업중지를 노동자의 권리로써 행사할 수 있도록 모호하고 제한적인 법 규정을 고치고, 작업을 중지하더라도 임금을 보전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폭염이라는 기후위기를 사회적으로 대응해나가는 것과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감축과 적응’이 동시에 필요하다. 탄소배출을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이 한 축이라면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하는 사회적 역량을 모아 대처해나가는 과정이 다른 한 축이다. 하지만 적응의 측면에서 지금껏 정부의 정책은 부재했다. 기후변화의 대응을 마치 외신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는 큰 산불이나 토네이도와 같은 현상에 급박하게 대처하는 일로만 간주한 채 국내에서 발생하는 이상기후에 맞서기 위한 노동자의 권리에는 여전히 무관심한 것이다. 변화하는 기후 환경 속에서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고, 노동자를 지원하는 것이 사회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긴급한 위험을 판단해 작업을 중지하고, 이에 따른 비용을 노동자에게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감당해야 하는 몫임을 분명히 하는 과정이야말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의 역량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껏 이상기후에 따라오는 사회적인 비용을 누구도 치르지 않아 왔다.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주민, 농민, 여성, 청소년 등이 온몸으로 이를 겪어내며 질병을 얻었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렀다. 폭염과 같은 자연현상을 공동체로서의 사회가 대응하기보다 개별 구성원들에게 전가해오며 대처할 역량이 부족한 이들만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다. 하지만 자본은 기후위기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길 생각조차 못 한 채 기업 중심으로 녹색성장을 주도해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고 말한다. 이제 이 흐름을 끊어 내고 안하무인한 자본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상수가 되어버린 기후위기의 장면마다 사회적 요구를 모아내고 싸움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폭염에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