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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탄소중립사회라는 전환의 문 앞에서

한국정부는 오는 11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온실가스감축 목표를 상향하고 탄소 중립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청사진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탄소 중립사회로의 전환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한 법과 제도를 급히 구축하는 모양새다. 지금껏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만 하고 움직이지 않던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구체적인 변화가 예고되는 가운데 정부의 탄소 중립사회로의 전환 계획이 의미 있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책이 될 수 있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원칙에 기반한 전환이어야 하나?

지금의 기후 위기는 생태와 환경, 인간에 대한 수탈과 착취를 기반으로 생산하고 축적하는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의 전환하자는 제안이자 자본주의적인 관계를 끊어내자는 기획이어야 한다. 그 시작이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제출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를 배출을 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목표 수치만 난무할 뿐 정작 어떻게 탄소를 줄일 것인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탄소 중립 사회의 기본전제는 당연하게도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의 퇴출과 전환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10년 안에 탄소 배출량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탄소 배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성장제일주의 일변도인 경제 정책의 방향성을 돌려놓는 계획이 필요하다.

또한 기후위기가 인간 사회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문제라는 점에서 해결 과정 역시 정의롭게 진행되어야 한다. 기후 위기로 인한 사회의 전환 과정이라면 기후위기를 초래한 기업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실 2034년까지 국내 30기의 석탄발전소가 폐쇄 예정이다. (신규 석탄화력 발전소는 계속 짓고 있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부는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에 타격을 미치지 않도록,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그 대책이라는 게 직업훈련과 재취업지원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피해를 보는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정책수혜의 대상으로 놓고, 구제책이나 보상책을 마련하는 것으로는 정의로운 전환은 달성되지 않는다. 탄소 중립 사회로의 전환 과정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은 전환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국가와 사회가 함께 듣고,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탄소중립사회를 위한 법의 진정성

하지만 정부와 국회가 내놓고 있는 답은 탄소 중립을 위한 실질적인 계획이나, 정의로운 전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발의되어 국회 환노위에 계류 중이던 법안들이 <탄소 중립 녹색성장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주창했던 ‘녹색성장’이라는 기표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며 국가 주도의 수십조원 규모의 토건 사업과 기업 투자를 유치했던 정책의 상징하는 단어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녹색성장을 다시 들고 온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한 벌채 사업을 벌이겠다는 계획부터 녹색이 아니라 성장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의심케한다.

정부의 탄소중립사회 전환의 목표는 실은 저탄소 녹색성장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지난 5월말 한국이 주최한 P4G 서울정상회의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Global Goals 2030) 라는 이름의 이 기후변화대응 국제 회의에서 한국의 현대자동차, SK, 한화, 포스코, LG화학 등이 참여했다. 주요 탄소 배출 기업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탈탄소 그린뉴딜 기술을 통해 탄소중립사회에 자신들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추었다. P4G는 기업이 이미지 제고를 할 수 있도록 마이크를 쥐어준 셈이었다. 더불어 ‘P4G 스타트업 챌린지’와 같은 스타트업 기업의 투자 유치 기획은 기업이 녹색성장을 이윤창출의 기회로 삼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런 가운데 현재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본법은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이 양립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기업과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과학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명확히 제시하지 않음은 물론, 산업전환 과정에서 취약한 계층의 피해를 보상하고 지원하는 정책의 대상으로만 정의하고 있다. 탄소중립사회 전환에 대한 기본 원칙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제대로 된 전환 정책, 즉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책을 수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주체에 책임 묻기도 요원해진다. 만약 이대로 이 법이 통과된다면 정부는 이 거대한 전환을 이루는 주체를 정부와 기업으로 국한하며, 국가의 장기 탈탄소 정책이 기후 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과 배치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일 것이다.

탄소중립위원회, 방향을 바꾸자

지난 5월에 출범한 탄소중립위원회도 마찬가지다. 18개 부처 장관급 인사와 각계 전문가 및 시민사회 대표 77명으로 구성된 민관 참여 기구인 탄소중립 위원회는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된 국정 전반의 계획을 심의, 의결하여 탄소 중립에 관한 국가 전략과 정책,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이 위원회의 구성에는 ‘탈탄소’라는 전환 과정의 당사자인 석탄화력발전·내연기관 노동자, 농민, 중소 상공인 등 당사자들은 배제되었다. 여기에 탄소중립위원회가 논의하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라는 정부의 계획에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계획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기초자료일 뿐이라고 선을 긋지만 탄소중립위원회의 구성부터 논의 과정까지 시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모아나가는 데 관심은 없었다. 오히려 정부의 일방적 계획을 밀어붙이기 위한 구실이 되어주는 위원회를 꾸려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2019년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인구 대표성을 반영한 무작위추첨으로 시민의회를 구성해 구체적으로 온실가스감축 목표를 정하고 기후 위기 대응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과제를 제시하는 보고서를 펴냈다. 프랑스의 경우 이 논의를 바탕으로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반대에 부딪히는 갈등 과정을 겪으며 자연스레 ‘기후 위기’라는 의제를 사회화시키는 과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사회 전환의 주체로, 어떻게 함께 전환할 수 있을까를 사회적으로 던지고 함께 묻고 답하는 일련의 사회적 논의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하다. 한국의 탄소중립위원회 역시 방향을 바꿔야 한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반영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사회 구성원이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의 방향을 토론하고 논쟁하며 전환의 상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확인할 때, 탄소중립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그저 국가와 기업의 산업전환 계획, 이윤 창출의 방안을 위한 수사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탄소중립사회에선 지속가능한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이어야

올해 11월 열리는 유엔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까지 앞으로 남은 150여일. 지금 우리는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의 원칙과 방향을 묻고, 이 변화의 주체는 지금 여기 기후위기를 삶의 위기로 겪는 바로 우리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 솔직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지금과 같은 성장과 이윤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지속가능한 삶의 조건은 무엇이고, 이를 위한 사회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가? 분명한 점은 적어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녹색성장' 사회로의 전환은 아니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