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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백신 접종, 더 많은 의견과 더 소란스러운 논쟁을

<코로나19 백신접종에 대한 인권시민사회 연속집담회> 후기

지난 2월 초부터 한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습니다. ‘코로나 종식’에 대한 기대가 조심스레 피어오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백신의 안정성이나 효과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퍼지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이미 지난 12월, ‘70% 접종률 달성’을 통한 ‘집단 면역 형성’을 말하며 백신 접종 계획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의료계 전문가와 보건 공무원으로 구성된 ‘예방접종전문위원회’에서 백신별 공급 시기, 특성, 유통 및 보관 방법 등을 고려해 여타 우선순위를 심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백신 배분을 통해서 집단 면역을 형성하는 과정이 정부와 의료 전문가들만의 몫일까요?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드러나고 심화되는 과정을 보아왔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잠시 멈춤이라는 방역 정책을 수행할 수 없었던 불안정 노동자와 홈리스, 시설 거주 장애인이 처한 상황을 꼼꼼히 살피지 않는다면 평등한 백신 보급과 접종은 불가능합니다. 원래부터 의료 접근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던 HIV 감염인이나 일상적으로 의료 조치를 받아야 하는 기저질환자가 코로나19 상황에서 겪은 의료 공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을 때, 이 공백은 고스란히 백신 접종 과정에서 재현될 것입니다. 코로나19를 통해서 공공의료체계 강화의 필요성은 더욱 선명해졌으며, 이는 그저 ‘백신을 잘 분배하고 공급하는 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 면역 형성은 단지 국가가 백신을 잘 확보해서 보급하는 일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백신 접종 우선순위와 계획을 수립할 때 누가, 언제, 어떻게 백신에 접근할 수 있을지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신만이 아니다 –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인권시민사회 연속집담회>를 기획, 진행했습니다.

차별과 배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매주 이어진 집담회에서는 장애인, 홈리스,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HIV 감염인, 간병노동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1년여 간 코로나19를 어떻게 겪어왔는지,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백신 접종 과정에서 우려와 요구는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비가시화되며 배제되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백신 접종 과정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지는 않을지 우려를 이야기했습니다. 방역 당국은 코호트 격리라는 이름으로 시설 거주인을 위험에 내몰았으며,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중증장애인과 홈리스에게 별다른 대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기존의 방역 수칙만을 내세운 바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공적 마스크 배분 과정에서 이주민은 철저하게 배제되었으나, 1년여 시간이 지난 2021년 초에는 반대로 모든 이주노동자에게 코로나19 선제 검사를 강제하는 행정 명령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간병노동자를 포함한 필수대면노동자들은 소위 언택트 시대에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노동을 수행하며 심지어 한 주에도 몇 번씩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의 노동자성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논란의 소재로 취급되며 산업재해 적용을 포함해 필요한 지원에서 배제되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문제적 순간들은 방역의 주요한 과제로 등장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도 없이 유야무야 지나오곤 했습니다. 백신 접종 과정에서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수많은 전문가와 지식인들이 머리를 맞대 백신 접종 계획을 수립한들 실제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백신 접종 계획과 우선순위를 수립하는 과정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의견과 더 소란스러운 사회적 논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백신 접종 이후의 사회를 만드는 과정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는 2020년 6월 발간한 <코로나19와 인권 –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에서 코로나19 대응의 원칙으로 존엄, 평등, 참여를 제시했습니다. 이번 연속집담회를 끝마친 후에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백신 접종, 다양한 주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백신 접종을 요구하는 후속 의견서를 방역 당국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스스로가 목표로 삼는 ‘70% 접종률 달성’과 ‘집단 면역 형성’을 위해서라도 누구나 차별과 배제 없이, 평등하게 백신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집단 면역 형성에 그칠 수 없는 과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그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간 방역 당국은 철저한 추적검사와 방역을 통해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일에 몰두해왔지만, 코로나19 대응은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배제 없는 백신 접종을 위한 우선접종순위는 무엇일지, 집단 면역을 형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신이 가닿을 수 있도록 할지, 코로나19가 드러낸 불평등과 배제를 돌아보며 집단 면역 이후의 사회는 어떠해야 할지, 사회적으로 논의하며 함께 그려나가는 과정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