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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멋

민선

색깔도 문구도 가지각색 다양한 단체티를 모으면서 입고 다니는 것을 나름 멋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단박에 알아볼 수 없는 단체티만 지금은 가끔 입고 다닌다. 시절마다 달라지는 멋이 아닌, 시절이 지나도 쥐고 살고픈 멋이 좀 있으면 좋겠다.

 

정록

내가 누군가를 보고 멋있다는 말을 하게 되는건 대부분 외양이 아니라 행동이다. 어떤 행동일까 생각해보면, 일단 좀 나서줘야 한다. 집회 때 멋진 발언을 하는 사람, 토론회때 뻔한 말을 하지 않고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멋진 토론 등등. 여러모로 난 멋과는 거리가 멀다.

 

아해

멋을 잘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멋스럽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일까. 대학에 다닐 때 '아껴입던' 트레이닝복 바지가 있었다. 여러가지 기능과 편안함이 있어 맘에 들어하던 옷이었다. 반대로 친구들은 제발 그것 좀 입지 말라고 정말로 화를 낼 것처럼 얘기하기도 했는데, 나름 '멋스러운' 추리닝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친구들의 그런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한참,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된 나. 너무너무 후줄근하고 이상한 바지를 입고 있는 자신을 보고서야 당시의 친구들의 분노를 이해하게 되었다. 멋있는 사람은 사람이 멋있는 것이다.

 

디요

멋...외적인 멋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살면서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도 내가 멋을 부리는 문제로 갈등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은 부분은 참 편했다고 인정한다. 그런 내가 요즘 대위기를 맞이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살을 열심히 뺏더니 이제 밸트를 채워도 바지가 헐렁하다. 온갖 옷이 안맞아서 옷을 전부 새로 사야하나 싶은 지경이 되었다. 자연스레 옷을 생각하면 외양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인생의 관성이 너무 심한 탓인지 어떤 옷을 사야하나 생각만하면 너무너무너무 귀찮고, 또 귀찮다.

 

가원

유년 시절 부산에서 자랐다. 거기선 멋 부리는 걸 '깔롱'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일종의 깔롱쟁이였다. 어찌나 멋을 부리는 지 주변 친지들이 나를 그리 불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깔롱쟁이로 살았는데. 요즘은 깔롱 부리는 게 귀찮다. 언제부터 그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공교롭게도 사랑방 상임활동을 시작한 시점과 겹친다…헙.

 

어쓰

칭찬으로는 '멋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잘생겼다거나 예쁘다는 말처럼 외모 중심적으로만 들리지도 않고, 착하다거나 귀엽다는 말처럼 내려다보는 느낌을 주지도 않아서일까. 건넬 때도, 받을 때도 늘 기분 좋은 말이다. 멋이 묻어나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세주

멋멋.. 머리 염색도 하고 귀고리를 했던 때가 있는....이게 '멋'이었을까요? 헛헛... 그런데 지금 멋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듯 합니다. 시대적 흐름이 그렇게 '멋'을 부리는 분위기가 아닌게 되어 버린것 일까요? 단지 유행이라는게 사라진걸까요? 아니면 원래 '멋'을 모르는 사람..ㅜㅜ 인생의 멋(?)이 차곡 차곡 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는데 어찌보면 다들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지 않지만 자기만의 멋에 살아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면서도, 살다보면 인생의 멋이 저절로 쌓이게 되지 않을까란 '멋'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에게 '멋'은 상당한 정도의 편집증 혹은 완벽에 대한 지향에서 나오는 것. 자연스럽고 충동적이고 즉흥적이기보다, 뭔가 고집스러운 원칙을 가지고 고집스럽게 파고들 때 나오는 것. 그래서 '멋'의 결과를 바라보는 건 너무 즐겁고 충만한 경험이지만, '멋'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래서 나에게 멋있는 사람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편집증과 완벽주의를 성실함으로 만들어버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