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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나는 호야, 사랑방을 찾다

따르릉~~~

"네, 인권영화제입니다."
"내일 영화제 하는 거 맞나요? TV에서 보니까 취소됐다고 하던데..."
"아 그게... 취소된 건 아니 구요, 취소통보를 받긴 했는데 영화제는 그대로 열립니다."
"그래요..."
"영화제 개막식도 그대로 진행되니까 꼭 오세요 7시입니다."

4개월 전이네요 벌써, 영화제를 하루 앞두고 걸려온 전화. 기억이 생생한걸 보니 올 영화제의 여운이 꽤 오래 가네요, 가슴은 아직도 뛰고 있구요.

안녕하세요, 4개월 전 바로 그 전화를 받았던 호야에요.

여러분이 알고계신 것처럼 얼마 전부터 인권영화제 상근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언덕과 같은 중림동 사랑방길을 매일 오르는 일상이 시작되었어요. 재미니네 슈퍼에서 담배 사는 것을 깜빡 잊어 다시 내려갔다오는 날은, 어휴~ 악몽이 따로 없어요. 인권운동하기 참 힘들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리고 생각하죠. 농담처럼 던진 이 무거운 단어의 조합을...

'인권','운동' 저에게는 좀 멀었던 단어들이에요. 늘 멀리서 누군가 해줄 것 같았던 제 일상 밖의 단어들이었어요. 고백하자면 작년과 올해 인권영화제를 통해 활동 하면서도 여전히 제 일상 속으로 휙~하고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인권운동을 하러 사랑방에 나오는 것을 일상으로 삼게 되었네요. 

그럼 잠깐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여기서 살아 보겠다 다짐하고 사랑방을 찾은 계기를요. 

지난 6월 영화제를 끝내고 용산으로 갔었어요. 용산철거민 살인진압이 다섯 달째로 접어들던 토요일 오후. 범국민추모대회를 마친 사람들이 남일당을 출발 용산역을 돌아 다시 남일당으로 행진을 하던 날이에요. 예상대로 경찰들이 저지를 하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급기야 고인들의 영정이 파손되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리고 저는 그 과정을 캠코더로 담고 있었고요. 유가족분들과 행진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항의를 하고 결국 남일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유가족분들이 도로에 앉아 영정을 파손한 책임자에 대한 사과와 함께 영정을 복원시켜줄 것을 요구했어요. 책임자로 보이는 경찰이 왔고 신부님들과 이야기 끝에 영정을 가지고 돌아갔어요. 물론 영정을 복원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하구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영정을 가지고 간 경찰이 돌아오지 않는 거에요. 

잠시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저도 촬영을 쉬며 담배 한대를 피고 있었어요. 그런데 용산범대위의 활동가 한분이 혹시 영정이 파손되는 장면을 보았는지를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그 과정을 이야기 해 줄 수 있는지도... 저는 본대로 이야기해드릴 생각으로 그러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용산범대위에서 하는 인터뷰 정도로 생각하고 말이에요. 다행히 영정이 다시 돌아왔어요. 그리고 잠시 후 예정에 없던 집회가 다시 열렸어요. 영정을 파손한 경찰들을 규탄하는 집회가 남일당 앞에서 시작됐고 저는 다시 캠코더를 들었어요.

"그럼 먼저 오늘 행진에서 있었던 영정파손 과정을 인권활동가이신 호야님께서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사회를 맡았던 목사님이 부른 이름은 분명 저였어요. 영화제 활동을 하면서부터 쓰고 있는 이름. 분명히 "호야"였어요. 어~ 뭐지?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 그럴 리가요. 용산범대위에서 뭐 하러 저 같은 사람에게... 그때처럼 이름이 낯설게 느껴진 때가 없어요. 더군다나 인.권.활.동.가.호.야. 머리속이 까매졌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나 나오는 암전상황이었어요.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남일당 앞에서의 집회는 그렇게 끝이 났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인.권.활.동.가.호.야'가 생각났어요. 나는 스스로를 인권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가? 인권영화제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춰진 인권활동가 호야가 아니라 정말 스스로 나를 인권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가? 

부끄러웠어요. 참으로. 스스로에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활동이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사랑방에서라면 왠지 그 답을 찾을 것 같기도 해요. 제 가슴을 뛰게 하는 동지들과 함께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