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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내가 번아웃 고위험군이라고?

번아웃에 대한 정신과전문의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자신이 혹시 번아웃증후군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면서 시작되었다. 100점 만점에 72점이었다. 한국인의 평균 점수는 50점을 웃도는데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70점 이상이면 번아웃 고위험군에 속한다고도 했다. 내가 번아웃 고위험군이라고? 요즘 꽤 피곤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 과로는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관리하며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왔던 나로서는 조금 충격이었다. 하지만 과로를 당연시하는 생각, 성과를 평가의 척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사람들을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고통 속으로 내몰고 있음도 새삼 깨달았다. 이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구로 콜센터, 쿠팡 물류센터 등 코로나19를 계기로 드러난 누군가의 노동현장은 나의 노동현장과 세부적인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논리로 움직이는 곳이었다.

 

1. 내가 맡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정서적으로 지쳐 있음을 느낀다.

2.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생각만 하면 피곤함을 느낀다.

3.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나를 긴장시킨다.

4. 나의 직무의 기여도에 대해서 더욱 냉소적으로 되었다.

5. 나의 직무의 중요성이 의심스럽다.

 

대부분의 콜센터는 봄부터 에어컨을 켠다. 나른한 봄에 졸지 말라고, 그러니까 업무 능률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에어컨을 켠다. 또한 단 몇 초라도 외부로 시선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가린다. 달력과 시계마저 일부러 배치하지 않은 곳도 있다. 감시가 편리하게 실장의 자리를 정중앙 약간 높은 단상 위에 배치하거나, 상담사들이 쉬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휴게실 길목에 배치한 곳도 있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들어도 미소 띤 음성을 발화하도록 강요받는다. 또한 매달 성과를 통해 상담사 간 순위가 매겨지고 이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지급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문화 속에서 타인과 비교되는 무능력함, 그것을 스스로 자각 하게 만드는 모멸적인 시스템. 자본주의의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해버린 세계, 인권에 대한 인식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린 이 세계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말할 수 있을까. 말한다 한들 이 공고한 세계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 놀라운 사건이다. 콜센터와 물류센터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타자화 해왔던 존재들의 생명이 내 생명과 상호연결 되어 있었다. 코로나19가 퍼져나가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던 이들의 노동환경은 이후 과연 개선되었을까. 택배기사들은 고용조건이 달라지지 않는 한 여전히 아파도 쉴 수가 없고,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업무는 폭증했는데 연장수당, 휴일근로수당을 받지 못한 채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여전히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 택배가 배송된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문자와 함께 한밤중 현관 앞에 놓이는 택배.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한편, 적을 찾는 것은 쉽다. 노동자들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하고 최대한의 성과를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게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한 기업과 자본가를 비난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스스로 그 시스템 속에 들어가 그 시스템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것은 노동자 나 자신이기도 하다. 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돈이라는 것을, 그 밖의 다른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돈을 선택하게 되면 다른 것에는 눈감아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선택’한다. 자본주의의 질서 속에서 자본가도 노동자도 어떤 점에서 보면 공모자인 셈이다. 그래서 더 빠져나오기 힘든 굴레다.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돈과 각자도생의 원리가 압도해버린 세상에서 인권과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이 단단한 세상에 균열을 내는 의미 있는 발화가 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찾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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