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선거 연령 낮추고, 시민 권리 올리고

시위에 참여한 대견한 청소년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이자 광장의 동료시민으로

조기 대선이 예상되는 가운데 선거 가능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논의가 국회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2017년 1월 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에서 선거연령을 기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지난 11일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정당은 태도를 바꿔 상임위 처리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앞으로 정치권 논의는 더욱 치열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촛불 민심 운운하며 표 계산에 바빠

야당을 비롯해 선거 연령을 낮추자는 이들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현행 선거 연령은 OECD국가들과 맞지 않다. 대부분 만 18세 혹은 그 보다 더 적은 나이에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에 비해 한국만 만 19세로 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둘째 청소년도 촛불집회에 정치 행위자로 참여해서 성숙한 집회문화를 만들어왔다. 따라서 성숙한 시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셋째 나이가 어릴수록 정치성향이 야당색이 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정책이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진다. 오히려 나이가 어릴수록 정치성향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권의 유불리로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야당이 대선을 앞두고 표를 늘리기 위한 꼼수를 부려, 아직은 공부를 해야 하는 미성숙한 학생들을 정치판에 끼워 넣는다는 것이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정당이 표 계산하는 것까지 나무라고 싶진 않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의 정치권 기본권이 정치인들의 숫자놀음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광장의 목소리는 어처구니없이 강탈당한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회복하고 확장시켜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모두의 함성이다. 아니, 처지는 다르지만 기본권을 박탈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주권자임을 선언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운동이다. 선거 연령을 낮추는 문제 역시 기본권 확장의 측면에서, 정치적 주체로서 청소년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절대 기준은 없다

이번 국회의 선거 연령 논의는 앞서 이야기 했듯 시민 기본권이 확장되는 측면에서 반가운 일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말하면 도대체 몇 세까지 내려가야 시민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된다는 것이냐, 영유아도 투표권을 주면 되는 것이냐는 반론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선거 연령을 정하는 문제는 결국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고 제약하기도 하는 제도의 문제다. 법제도적 현실과 별개로 청소년은 이미 정치 주체로 자리잡아왔다. 1960년 4.19니 87년 민주항쟁이니 하는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지금도 진행 중인 박근혜 퇴진 촛불은 물론이거니와 세월호 참사, 2008 촛불 때도 청소년은 정치적 주체로서 광장을 함께 만들어왔다. 2011년 약 8만 5천명의 서울 시민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 학생 인권조례를 주민발의로 만들어낸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청소년이었다. 이 주민발의 역시 만 19세 이상만 참여 가능했지만 자기 권리의 문제로 청소년이 제도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추진 중인 선거 연령 만 18세 역시 청소년 투표권의 마지노선이 될 이유가 전혀 없다. 더 많은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선거 연령을 더 낮추기 위한 논의도 함께 시작되어야한다.

제대로 된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한다

우리는 2016년 겨울 광장을 밝힌 촛불이 그저 선거권자를 늘리는 개혁을 낳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중요한 열쇠는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출처- 18세 선거권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대로 된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한다 기자회견문 중)

선거 연령의 확대는 청소년의 참정권 확장의 일부일 뿐이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청소년을 사회의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고, 미성숙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온 사회적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기특하거나 미숙하거나로 표현되는 이 사회의 청소년을 대하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 대자보 하나 게시할 수 없고, 동료들과 함께 공동으로 작은 행사 하나 하기 어려운 청소년의 현실은 선거권 이상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18세 선거권 논의는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조차 꿈꾸기 어려운 현실을 바꿔내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18세 선거권 논의는 정치인들의 숫자놀음에 그치게 된다. 미성숙이 보호를 부르는 게 아니라 보호가 정치적 권리가 박탈된 ‘미성숙’을 만든다.

우리는 이미 표로 계산되는 시민의 권리가 지닌 한계를 경험해왔다. 당장 2016년 총선만 하더라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양산하는 기독교 세력에 머리를 숙이고 표를 애원하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통해서 여/야 상관없이 표가 되지 않는 시민의 권리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본 것이다.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주장은 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작년까지도 청소년의 정치참여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던 국회다. 이를 하루아침에 정치권의 문제까지 끌고 온 힘은 광장에 있었다. 노란리본을 달고, 대자보를 붙이며 청소년의 목소리로 광장을 함께 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가 더 많은 시민의 권리를 증진시킨다. ‘시위에 참여한 대견한 청소년’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이자 광장의 동료시민으로서 청소년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힘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