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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평등을 위한 용기, ‘차별잇수다’를 미리 만났어요

사랑방이 참여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는 4개의 팀이 있습니다. 전략조직팀, 정책담론팀, 입법추진팀, 미디어팀 각자 모두 바쁘게 2019년의 활동들을 열어가고 있지요. 그 중에서도 전략조직팀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확장을 위해서 간담회나 캠페인 등 대중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팀입니다. 올해 전략조직팀의 주요 활동은 차별당한 나만의 이야기를 꺼내어 함께 말하고 듣는, <차별잇수다>라는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차별잇수다>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될 예정인데요, 차별 경험을 잘 이야기하고 듣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들이 필요한지, 차별당한 경험이 어떻게 평등과 연결될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차별당한 경험, ‘굳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어디 가서 누구에게 말하기 참 애매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차별당한 경험도 그런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너무 황당해서 ‘이게 무슨 일이지?’ 하다보면 어느새 상황은 종료되어 있고, 화를 낼 타이밍도 놓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화를 낼만한 상황에서 화를 내기라도 했으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 말도 못하고 집에 돌아와 ‘아, 내가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하며 이불발차기는 또 얼마나 많이 했는지. 드물지만 침착하게 대응하고 나서도 그때의 기억이 한동안 잊혀 지지 않아서 ‘나는 어떤 말을 더 하고 싶었던 걸까’ 긴 시간 곱씹어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은 친구에게 바로 전화해서 열변을 토하며 위로받기도 하고, ‘나 얼마 전에 웃긴 일 있었다?’ 하면서 우스운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어떤 일은 뭘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어 혼자 삼키기도 하는데, 뜬금없는 순간에 갑자기 울컥했던 경험이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별받은 경험은 각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겠지만, 그 경험을 잘 다루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야기해본 기억 또한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차별잇수다>는 누구나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지만, 막상 차별당한 경험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는 공통적인 어려움에서 출발한 사업이기도 합니다. 차별을 경험한 순간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 한다고 무엇이 바뀔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말하고 나면 불이익이나 해코지를 당할까봐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나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삼켜진 채로 남아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차별적인 사회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차별받은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건 단순히 공감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용기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차별받은 경험을 듣는 것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다르게 개입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모두가 차별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동시에 듣는 과정, 그리고 다시 서로의 말을 보태고 덧붙이는 과정은 우리가 차별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를 상상하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차별받았던 순간이 후회로 인한 이불발차기나 마음 속 응어리로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면, 그만큼 함께 평등을 향해 갈 동료를 얻게 된 것이기도 할 테고요.

 

평등을 위한 용기, 어렵지는 않아요

 

<차별잇수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에는 ‘내가 차별당한 경험이 뭐가 있지?’ 잘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는데, 포스트잇을 눈앞에 두니 저 역시도 줄줄 써내려가지더군요. 각자가 작성한 차별당한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에는 한숨과 탄식,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택시 기사나 남자 기자를 매번 만나게 되는 경험, 목소리를 크게 내며 음식을 파는 장애인에게 시끄럽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목격했던 경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외모 때문에 바로 거절당하고 돌아와야 했던 경험,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자신보다 ‘더 나이 많은 전문가’를 찾는 내담자와 통화했던 경험 등. 10여 년 전부터 엊그제까지 경험의 시간대는 다 달랐지만, 전략조직팀 활동가 모두가 생생하게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런 자리의 의미가 다시 새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내가 그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혹은 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고 나면 그 경험의 ‘정체’를 전보다는 더 명확하게 알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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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에서 끝낼 수는 없지요 :)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고 난 후에는 또 다시 새로운 질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바대로 행동하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외부의 자원이나 다른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의 경험을 작성한 종이를 돌려가며 모두에게 자신의 꿀팁과 지지의 한마디를 남겨주는 것도 잊지 않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에 “다시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가 잘 떠오르지 않네요(눈물)”이라고 적었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더라구요. 그럴 때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이 자기가 대응했던 방법을 새롭게 알려주시기도 하고, “그런데 충분히 잘하신 것 같아요! 박수 짝짝짝”이라고 써주신 것을 보며 며칠 동안 혼자서 씩씩거렸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분들에게 써준 이야기들이 함께 분노하거나 마음을 도닥여주는 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요.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이 모인다면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된다는 말이, 평등을 향한 동료를 만날 수 있게 된다는 말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차별당한 경험을 다른 경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때까지, <차별잇수다>를 잘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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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잇수다> 평등을 이어가기!

 

4월부터 본격적으로 <차별잇수다>가 시작됩니다.

(1) 오프라인 <차별잇수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에서 <차별잇수다> 모임을 개설하거나 참여해보세요. 모임의 구성원이 스스로 이끔이가 되어 동료들과 함께 진행해볼 수 있도록 안내 페이지와 함께 툴킷 패키지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2) 온라인 <차별잇수다> : 4월 12일(금) 오픈 예정! 오프라인 모임 참여가 어렵다면, 온라인에서도 누구나 자신의 차별 경험을 기록하고 서로를 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 이후 진행일정은 메일로 자세히 안내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