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유리벽 없는 세상, 가능하지 않을까요? 우리들 모두 약속을 지킨다면

전국인권활동가대회에 자원활동가도 참가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어요. 인권활동가도 아닌 내가 참여해도 될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호기심이 더 컸기 때문에 저질렀어요. 이번 인권활동가대회 주제는 ‘분단과 평화 사이’였어요.

일정에 앞서 우리들의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소에 어길 수 있는 내용도 많았어요. 일상생활에서도 우리 모두가 약속을 기억한다면 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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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터 광주, 제주도까지 여러 지역단체도 참석했어요. ‘단체 소개 1+1’이라는 코너였는데, 단체소개와 근처 맛집 소개를 묶어서 총 2분의 소개 시간을 줬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소개는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이었어요. 제주향토음식 멜국을 알려줬어요. 멸치와 배추를 넣고 맑게 끓인 국이라고 해요.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국이라고 제주도에 가면 꼭 먹어볼 만한 음식이라고 해요. 맛집과 단체소개는 획기적이었어요. 일단 단체소개와 맛집이 연관돼서 생각나서 단체 또한 잊히지 않을 거 같네요.

이어서 ‘북도 남도 아닌’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했지만, 결국 다시 남한을 떠나 해외에 거주하는 새터민의 사연이 나와요.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새터민의 이야기도 나와요. 감상을 마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다큐 속의 말은 “탈북자들은 유리벽 속에 살아” 였어요.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새터민이 한 말이었어요. 아마 유리벽을 통해 좁아질 수 없는 어떤 간격, 차이와 같이 드러나지 않는 편견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 유리벽은 안도 밖도 보이지만 갇혀있어요. 물론 모든 것이 개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유리벽에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거예요. 벽이 존재하니까요. 그 유리벽은 사회에 존재하는 편견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최중호 감독님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어요.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새터민의 피드백”에 대한 물음에 대한 감독님의 답이 씁쓸하게 다가왔어요. 보통 다큐멘터리를 보고 고맙다,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 얘기 한 거 넣지 마시지. 한국 사람들이 그 얘기 싫어할 텐데”라는 말을 듣고 이 분들이 아직 (한국)사람의 시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감독님도 또 한 번 느꼈다고 해요.

다음으로 노순택 사진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설명을 들었어요. 저도 노순택 작가의 전시회를 본 적이 없어서 생소했어요. 2018년에 광주비엔날레에서 사진전 ‘핏빛 파란’을 전시했다고 해요. 사진을 보면 노순택 작가는 평소 분단이 한국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수집해서 재해석을 하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분단의 향기’였어요.

우리 일상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분단의 흔적이죠. 이곳은 ‘영업장소입니다’라는 표지판 아래에는 ‘우리의 역사와 마음을 담아 가세요’라는 현수막이 설치돼 있어요. 노순택 작가가 주목한 건 분단을 이용한 영업 행위였어요. 분단을 단지 정치에 국한하지 않고 돈으로 확장해요. 분단을 여러 관점으로 분해하고 재해석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분단에 대해서 평화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적을 수집해서 의미를 파악해내는 게 새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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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는 철원 DMZ 평화기행을 했어요. 철원으로 관광을 신청할 때는 꼭 가이드가 있어야 하는데 국경선 평화학교 전영숙 총무부장님이 해주셨어요.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뒤에 안보견학 팀이 있어서 가이드 내용을 듣는 데 정말 달랐어요. 안보견학 가이드가 철원 노동당사를 전리품으로 설명해서 깜짝 놀랐어요. 안보 견학이라는 말도 그 내용도 앞으로 점점 더 바꿔 나가야 될 것 같아요. 승일교, 노동당사, 평화전망대, 월정리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경선 평화학교를 방문해서 정지석 교장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어요.

승일교는 반은 북한이 반은 남한이 지었다고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한 쪽을 지을 때는 구소련의 유럽 공법으로, 그 뒤에 한국 측에서 지을 때는 그와는 다른 공법을 썼다고 해요. 그래서 양쪽의 아치 모양 또한 약간 다른데, 북한 쪽에서 먼저 지은 다리는 둥글고, 한국 측에서 지은 것은 둥근 네모 형태를 띠고 있어요. 노동당사는 무철근 건물이어서 폭격 이후에도 그나마 형태가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해요. 막상 철근이 있는 건물은 폭발할 때 철근이 망가지면서 건물의 형태도 더 남아있기 힘들다고 해요. 평화전망대에서는 모노레일을 탔어요. 또 월정리역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을 봤어요. 비무장지대 내 남쪽 한계선에 가장 가까이 있는 마지막 기차역이에요.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 일부분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의 화물열차 골격이 남아있어요. 전쟁의 흔적을 눈으로 보는데, 그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더라고요. 사실 제가 본 철원의 모습은 평화로웠어요. 넓은 들판과 지천으로 널린 재두루미는 아름답기만 했거든요. 이런 곳에서 치열한 백마고지 전투가 있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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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정지석 교장 선생님께 강연을 들었어요. 철원으로 오시고 나서 바뀌는 남북 분위기를 몸소 느꼈다고 강조했어요. 군사훈련 때문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요즘에는 훈련을 잘 하지 않아서 평화로워진 편이라고 했어요. 계속해서 평화운동을 국제평화학교에서 실천해 나가실 거라고 하네요.

숙소에 돌아와서 특식을 먹었어요. 뷔페 부럽지 않은 음식이 준비됐어요. 활동가 골든벨 중 ‘새우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300점짜리 넌센스 문제를 맞혀서 조별퀴즈에서 역전승했어요. 상품으로 캠핑용 외국 맥주를 탔어요. 그 자리에서 사람 냄새나는 인권활동가들을 만났어요. 사실 전 활동가라고 할 때 각 잡힌 도인을 상상했거든요.

마지막으로 인권운동 더하기 2019 전체회의를 참관했어요. 지속가능한 운동과 인권운동의 재생산에 대한 의제를 관심 있게 들었어요. 지속가능한 운동은 사실 활동가분들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됐어요. ‘분단과 평화사이’를 마치며 드는 생각은 분단 상황이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에요. 표면상의 평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분단이 계속 되면 남북한은 더 달라지겠죠. 이 간극을 서로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진짜 평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