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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헤이그 평화회의를 돌아본다 ①

'전쟁'에 대한 반성, '인권의 시대' 모색

5월 11일부터 15일까지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대규모 평화회의가 열렸다.

이는 전쟁과 대량학살의 비극을 목도해야 했던 지난 한 세기를 반성하는 한편 전쟁이 없는 21세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데 모으기 위한 것이다. 국제 평화운동단체들이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100여 개 나라에서 총 1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①전쟁의 근본 원인/평화의 문화 ②국제 인도주의법․인권법․국제기구 ③무력분쟁의 방지․해결 그리고 (평화적) 이행 ④군축과 인간안보 등 4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안보의 새 개념, '인권'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헤이그는 이준 열사를 떠올리게 하는 비극적 장소이기도 하다.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던 비극의 흔적이 한반도 땅에 아직도 남아있는 가운데, 헤이그에서 열린 평화회의 5일 동안에는 한국과 관련된 행사도 몇 차례 열렸다.

그 중 하나는 아시아-유럽 대안 안보 전략에 관한 워크숍으로 이는 내년 서울에서 열릴 아시아 유럽 정상회담(아셈, ASEMⅢ)에 대비하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민족회의의 김창수 씨와 참여연대의 이대훈 씨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워크숍에서는 안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눈에 띄었다. 즉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권의 가치를 포함시키는 안보 개념, 그리고 국가의 소유물인 양 인식되는 안보 논의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것 등이 제시됐다.

또 필리핀의 진보적 학자 윌든 벨로 씨는 "아시아 지역이 군사적으로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아시아 국가들 간의 다자간 안보 협력 체제의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11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진행됐던 워크숍의 후속작업으로 몇 가지 구체적인 행동이 제안됐는데 이는 ▲무기거래․무기 판매의 구체적 동향과 이것이 인권과 평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작업 ▲미․일 신 가이드 라인 채택 등이 동북아시아 지역 평화에 불러올 위험성과 관련해 '대안적 안보'에 대한 회의 개최를 검토하는 것 등이었다.


동북아 비핵지대화 논의

이밖에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의 사회운동 단체들이 함께 모여 '한반도․일본의 비핵지대화'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도 마련됐다.

일본의 평화운동 단체 '평화의 배'가 주최한 이 회의는 최근 미국과 일본 간에 채택한 신 가이드 라인에 대해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운동이 긴급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성에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북한 쪽이 회의장 근처를 맴돌다 끝내 참석하지 않아 회의가 순조롭게 이뤄지지는 못했다. 회의를 통해 제안된 '한반도․일본의 비핵지대화' 구상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예상 가능한 핵 군사 경쟁이 초래할 인간적 재앙을 미리 방지하고 ▲비핵지대를 동북아 지역에 확대함으로써 전세계적인 핵 군축 운동에 동참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 쪽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남․북한 간 그리고 북․미간에 이미 존재하는 협정들만 당사국들에 의해 준수된다면 별도의 '비핵지대화' 선언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발제에 이은 토론에서는 "이미 핵을 갖고 있는 강대국들이 핵무기를 폐기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됐다. 또 동북아시아지역의 비핵지대화에 대해, "시민사회와 민중의 힘을 통해 국가를 움직여야 하지 않겠냐"는 입장이 다수를 이뤘다.


"미군기지 반대" 연대 과시

군사기지가 발생시키는 인권침해 문제 그리고 여성과 군대폭력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도 여러 차례 열렸다.

한국에서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정유진 씨와 '새움터'의 김현선 씨가 발제자로 참석했다. 이들 회의에는 한국 뿐 아니라 필리핀․오키나와 등 미군 기지가 주둔해 있는 지역의 여성들도 함께 참여해 미군 기지 반대운동의 강력한 연대를 과시했다.

또 아시아 지역에서 미군기지가 여성․아동 그리고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인권의 시각에서 강하게 제기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전쟁예방, 시민사회 개입 필수"

한편 이번 회의를 통해 참석자들은 최소한 한가지 중요한 결론을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평화와 안보의 문제를 국가에만 맡겨둘 수 없다. 전쟁의 비극을 예방하는데 시민사회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또 유엔이 강대국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진정 전세계 민중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반성적 평가도 그 한 축을 이뤘다.

회의에 참석한 많은 평화․인권단체들은 후속작업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소형무기의 불법 사용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 ▲평화교육을 확산시키기 위한 국제 캠페인 ▲전쟁 방지를 위한 지구적 행동 등이 포함된다.

이와 관련, 한국 참가단 중 한 명은 한국이 시위진압 무기․소형 무기 등을 수출하는 국가인 만큼 국내에서도 소형무기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알리면서 생산․수출을 반대하는 움직임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인권보호에 큰 진전을 가져다 줄 국제형사재판소 비준을 한국정부에 촉구하자는 제안도 잇따랐다. 이들 제안에는 오랜 군사적 긴장을 경험한 입장에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사고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와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바탕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헤이그: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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