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짧은 물음에 긴 실천으로 답해야 할 때

짧은 물음에 긴 실천으로 답해야 할 때

명숙(상임활동가)


2012년 12월, 우리는 두 가지 미신이 깨지는 걸 보았다. 하나는 지구종말론은 마야 달력에 대한 직설적 해석일 뿐이라는 사실과 다른 하나는 정권교체는 쉽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보수화되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미신은 깨졌다. 전자는 그리 충격을 주지 않았지만 후자는 충격이 컸다. 정권교체를 주창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나조차도 너무나 힘든 이틀을 겪었다.

왜 1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독재 유신정권의 그림자인 박근혜를 택했는가? 조금만 뒤돌아보면 답이 보인다. 그 정도로 한국사회가 보수화되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만을 가르치고, 성공과 부만을 생의 유일 목표로 교육하는 사회에서 다른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더구나 유신정권이 사람들을 먹여살렸다는 잘못된 역사평가가 팽배한 현실에서 경제위기를 구할 재목으로 박근혜의 손을 들어줄 수많은 빈민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이를 어찌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문제는 유신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성공과 경쟁이 주요 화두인 현실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세대론’을 문제의 원인으로 짚으며, 반동적이고 반인권적인 결론에 다다르는 걸 볼 때, 내 마음은 자기 손으로 자기 발을 찍는 것만큼 쓰리다. 그래서 50대와 60대가 박근혜를 찍었으니 노인 무임승차는 폐지해야 한다거나, 영남사람들이 인구가 많아 그러니 호남사람들이나 수도권사람들이 출산을 많이 해야 한다거나, 노인인권 해봤자 소용없으니 선거 연령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거나 하는 우스개 소리들이 마냥 웃기지만 않다. 이러한 발상은 ‘신은 멸망케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먼저 미치게 한다’는 에우리피데스 말처럼 우리 스스로를 미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현실에 대한 직시가 부족하다. 나이든 사람들만이 아니라 20~30대도 박근혜를 지지했는데, 그들은 누구인지, 왜 박근혜를 지지했는지 규명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스개 소리를 하는 중에 5명의 생떼 같은 목숨들이 이 땅을 떠났다. 한진중공업 해고복직자 최강서,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 이운남, 외국어대학교 한국외대 이호일 지부장, 이기연 수석부지부장.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최경남... 암울한 시대를 이겨내기 힘들어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대선결과와 그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깊은 성찰과 기나긴 실천이 필요한 때다.

투표자 과반이 지지하는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다수가 지지한다고 옳다는 뜻이 아니다. 다수가 지지할 정도로 그들은 레토릭을 잘 이용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보수화되었다. 그만큼 돌아보고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이는 인권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고뇌만 하고, 분석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실천하지 않는 자가 부르는 해방의 노래는 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에, 실천을 하되, 분석과 변화가 필요하다.

올해 3월 2일이면 사랑방이 창립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이비 문민정부 김영삼 정부 시기, 만들어진 사랑방이 진보적 인권운동을 주창하며 ‘진보’를 주창한 지 어언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 변했다. 20년 운동을 평가하는 것과 함께 이제 새로운 과제가 우리의 어깨 위에 얹혀졌다. 바로 박근혜 유사(類似) 유신정권 아래서, 어떻게 인권의 가치를 오롯이 지켜낼 것인가? 쉽지 않겠지만 사랑방 동무들과, 그리고 다른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그리고 민중들과 호흡하며, 한발 한발 밑그림을 그려나가야겠다.

암울한 2013년을 상징하듯, 1월1일은 해도 구름에 가렸다. 하지만 구름이 가렸다고 해가 뜨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활동을 사랑방이 실천해야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2012년 12월 대선 이후 던진 질문에 2013년에 실천으로 답해야겠지. 그리고 나도 사람들의 마음의 해를 바라보며 한 해를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