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자원활동가의 편지 하나] ‘그 자리에 앉는 법’을 깨닫게 하는 반차별포럼

예전부터 한번 꼭 가 보고자 했으나 내 특유의 소심증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었던 반차별 포럼. 그러나 이번 포럼만은 꼭 가고 싶었다. <인권활동가 포럼>에서 가족 문제를 다루다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는 발제자 정희진 씨의 말대로 가족과 차별이라는 주제가 너무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평소 집안 문제로 무던히도 속앓이를 하는 선배와 함께 노동사목회관으로 달려갔다.

시작 시간이 되고 몇몇 사람들이 모이고, 첫번째 순서는 상황극이었다. 정상가족, 성적 소수자 가족, 국제 결혼 가족, 장애인 가족 등의 가족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차별, 인권 침해적 모습에 대한 여러 상황들을 직접 몸으로 재현해 보고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성적 소수자 가족’ 모둠에 참여했다.
다른 모듬의 상황극을 보며 저런 일도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통찰을 얻는 기쁨과 실제 대사를 뱉으며 한명의 성적 소수자가 겪어야 할 아픔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 동생이 동성애자라니 창피해, 동성애자라니 징그러워, 동성애자라니 이상해’ 등등의 무시무시한 말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게 되었다. 정죄받는 것 혹은 정죄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무엇인가를, 그 자리에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그런 감수성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동그랗게 책상을 맞대고 앉아 진행했던 토론회 또한 별미였다. 홍수처럼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시는 정희진 씨, 자신의 의견을 진솔하게 밝혔던 타리님, 그리고 유명한 인권 규약마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지적해주신 배경내 씨의 흥미 진진한 발제와 더불어 정말 자유롭고 활발한 ‘자유토론’이 진행되었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진행한 포럼, 토론회 등의 행사를 겨우 두번째 참여해 보았지만 그 두 번 다 참 활발한 자유토론이 부담없이 진행되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함께 활동한 사람들, 혹은 같은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다양함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 날은 ‘가족’을 주제로 삼다 보니 가족 안에 약자의 위치에 처해있는 ‘여성’ 에 대한 재미있는 논의들이 많이 진행되었다. 기계화되고 도구화되는 가족 안에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자로 존재하는 여성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항상 정상가족 중심으로 움직이는 우리 사회 속에서 여러 다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권익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등.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 막연히 불만을 품던 지점에 대해 한층 더 나아간 이야기들이 일상의 경험들과 버무려져 쌉쌀한 맛을 풍기며 도마 위로 오르내렸다. 이야기의 정도-radical함-는 구성원에서부터 나온다. 인권활동가, 초등학교 교사, 여러 영역의 자원 활동가, 이성애자, 동성애자, 기혼자, 미혼자... 다양한 사람들을 그저 함께함으로 같은 원탁에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장을 열 수 있는 것이 ‘사랑방’ 인 거 같다. 인권활동단체에 굳이 ‘사랑방’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결코 헛되지 않다.
또 이런 토론들을 거쳐 ‘개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내 눈 앞의 한 사람을 수많은 이성애자 중의 한명이라든가, 혹은 가족의 일원-딸, 부모-으로 본다든가, 어느 단체의 누구라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를 그가 불리길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사람으로 보는 방법을 배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하다’는 것과,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해 나갈 권리가 있는 사람임을 되새김질한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호적 상에 적혀 있는 세글자 이름과는 상관없다. 나이도 연령, 성적 지향성마저도 우리가 함께 자유롭게 토론하는데 방해가 되지 못한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친분을 쌓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과 그 수업을 들을 법한 사람이 친구가 된다.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껍질들-성별, 외모, 나이-을 깨고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법을 훈련받는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임의 별미 중 하나가 바로 ‘뒷풀이’아니겠는가. 능력에 따라 내고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멋진 공간, 뒷풀이. 맛난 음식과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음료를 나누며 미처 다 하지 못한 토론과 회포를 푸는 시간.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 걸죽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처음 참여한 사람 또한 자신을 알리고 함께 식탁을 나눌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다.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혹은 같음을 즐기며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부담없이 그리고 유쾌하게 나눌 수 있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말들과 웃음들로 가득한 뒷풀이, 아마 놓치시면 아쉬울 것이니 반차별 포럼에 갈까말까 망설이는 분들은 ‘최소 30분만이라도 엉덩이를 내려놓을 것’이라고 메모해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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