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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상임활동가의 편지 두울]감옥과 인권운동

지난 5월 14일 인권운동연구소는 ‘감옥과 인권운동’이라는 주제로 올해 두번째 월례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서준식 전 인권운동사랑방 대표의 기나긴 감옥생활을 통한 ‘깨달음’과 수인들의 끊이지 않는 두드림은 사랑방에겐 숙명같은 것이었습니다. 98년 감옥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사랑방은 본격적으로 ‘감옥인권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전까지 ‘양심수’위주의 감옥인권운동을 ‘일반수’로 확대해 걸어온 지 6년. 지금 인권운동사랑방은 매우 열악한 국내 감옥인권운동에 있어 독보적인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치와 사명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랑방의 감옥인권운동은 수용자들의 ‘처우개선’운동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사회보호법 폐지 투쟁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감옥의 본질’, ‘범죄의 사회성’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감옥인권운동 역시 ‘진보적’이어야한다는 고민에도 불구하고 보여지는 운동은 여전히 ‘처우중심적 운동’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감옥인권운동의 진보성을 밝히고자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인권운동연구소와 사랑방 감옥인권팀은 ‘감옥과 인권운동’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이 글은 세미나를 통해 학습한 내용, 토론한 내용, 그리고 제안된 의견들을 이창조 상임연구원이 정리해 월례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1.문제제기
일반적으로 감옥인권운동은 ‘수용자 처우개선운동’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한국의 감옥인권운동이 해 왔던 일들도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예컨대, 수인(囚人)에 대한 의료권 보장운동, 집필권?접견권 등의 권리 확대 운동, 교도관의 가혹행위 등에 대한 대응과 같은 운동들은, 수인에게 좀 더 인간적인 처우와 권리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인권운동을 전개하면서 우리는 중대한 사실과 맞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격리와 박탈, 감시와 통제를 기본 속성으로 하는 감옥은 그 기능과 역할 자체가 인권에 반(反)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수용자의 처우를 아무리 개선한다 한들, 인간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억압과 굴욕을 일상화시키는-인권에 반하는-감옥의 ‘속성’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따라서 감옥인권운동을 ‘수인의 인간화’를 위한 운동이라고 할 때, 우리의 지향이 ‘감옥의 개선’ 혹은 ‘수용자 처우개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감옥이란 무엇인가?
감옥과 구금형(자유형)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제도로 여겨지고 있으며, ‘사회 있는 곳에 범죄 있고 범죄 있는 곳에 감옥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감옥과 자유형은 보편적이고 자명한 현상도, 역사발전에 따른 필연적 산물(역사적 진보)도 아니며,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18-19세기)에 특별한 사회적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특정 집단에 의해 추진된 발명품이었습니다. 그것은

    ① 새로운 생산양식의 요구(규율의 주입을 통해 죄수들을 유능하고 예의바른 노동자로 만들고자 했던 것)
    ② 사회통제기반의 해체에 따른 대안(종래의 사회통제 기반이었던 종교, 가족, 지역사회에 대한 대안)
    ③ 형벌의 보편화 장치(덜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잘 처벌하기 위해, 그리고 형벌권을 사회전체에 보다 깊숙이 침투시키기 위한 것)
    ④ 계급통제 전략(노동자계급의 분할지배, 범죄자 스스로 체제 정당성을 승인하도록 하는 장치)의 일환으로써 발명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감옥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통치정책의 일환으로서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예방(범죄예방)과 교화(범죄자 개선)라는 감옥 역할에 대한 애초의 구상과는 달리 감옥은 일반예방의 효과도, 교정의 효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감옥의 실패’는 여전합니다. 오히려 감옥은 ‘범죄의 학교’로, 수용자를 비인간화하는 소굴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두 가지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감옥과 재사회화의 이데올로기는 범죄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범죄의 일반적 원인인 사회적 모순에 착목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회적 모순과 범죄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없는-범죄를 예방할 수 없는-한계를 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둔 상황에서 사회화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는 점입니다. ‘격리주의’에 기반한 감옥은 처음부터 사람을 ‘개선’시킬 수 없는 시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배계급의 계급통제전략이라는 면에 감옥의 가치를 둘 경우, 감옥은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계급방위의 차원에서 볼 때, 체제 내로 순치되지 않는 구성원을 가장 확실하게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이 격리와 무력화이며, 그 핵심장치로 기능하는 것이 감옥이기 때문입니다.

3. 감옥폐지론
위와 같은 감옥의 역할과 실패, 그리고 현재의 기능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는 ‘수인의 인간화’는 궁극적으로 ‘감옥의 폐지’를 통하지 않고는 달성될 수 없는 목표라는 결론에 이르게됐습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감옥인권운동은 범죄를 만들어내는 ‘환경’, 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등, 사회 전반의 변화를 수반해야하는 운동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감옥인권운동은 새로운 사회의 형성을 꿈꾸는 ‘변혁운동’과 분리될 수도, 분리돼서도 안 되는 운동이며, 바로 우리가 고민하는 ‘진보적 인권운동’과 그 맥락을 같이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진행해온 처우개선 운동을 한축으로 설정하고 장기적 지향(사회변혁을 위한 감옥폐지운동)과 당면한 요청(처우개선) 사이의 접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감옥인권운동과 여타의 사회운동 사이에 어디서 접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나아가 고민하게 됩니다.

4. 감옥운동과 사회운동의 접합- 감옥인구 줄이기
감옥폐지라는 거대한 지향을 향해 나서는 우리는 ‘감옥인구 줄이기’가 감옥인권운동의 주요한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으로 보내지 않는 것?감옥에 장기간 가둬두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수준에서나마 ‘감옥’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는 주요하게 ‘감옥인구 줄이기’를 고민해봅니다. 이는 ① 지금의 감옥인구를 줄이는 것(내보내기/구금기간의 축소) ② 잠재적 감옥인구를 줄이는 것(들여보내지 않기/처벌대상의 축소)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형사제도?형사정책상의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감옥인구 줄이기’는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다른 사회운동과 접점을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는 이른바 ‘빈곤(퇴치) 운동’과의 연계입니다. 우리 사회 범죄의 상당수는 절도를 비롯한 재산범죄 즉, ‘상대적 빈곤에서 비롯된 범죄’들입니다. 그러한 범죄행위는 근본적으로 ‘처벌’이 아닌 ‘상대적 빈곤의 해소’를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빈곤형?생계형 범죄에 대한 구금형 배제?혹은 완화를 위한 투쟁’(감옥인권운동의 주장)과 ‘상대적 빈곤의 해소를 위한 투쟁’(빈곤운동의 주장)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투쟁으로 기획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둘째는 ‘아동인권 운동’과의 연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3만여명 이상의 아동(12-19세)이 보호처분을 받고 있으며, 형사처분에 따라 소년교도소(천안, 김천)에 수감되어 있는 수도 연평균 1천명 이상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억압과 폭력, 굴욕’의 문화에 익숙하게 만드는 소년원, 소년교도소과 같은 소년사법제도를 재검토하면서, 소년사법 영역에서의 새로운 실험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년사법의 영역은 사회적 관용이 좀 더 허용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실험의 가능성이 더 열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수인 주체의 감옥인권운동
감옥의 인구를 아무리 줄인다 해도, 감옥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감옥 내 처우개선과 수인의 인권신장을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인의 인간화를 위한 투쟁은 단순히 수인들에게 부여되는 권리의 폭을 확대시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수인들 스스로 사회적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하는 투쟁을 의미한다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투쟁에 있어 주체로서야 할 것은 바로 수인들이겠죠. 이러한 모든 투쟁을 위해 수인들 스스로가 권리주체로서의 인식을 갖고, 권리확보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출발은 수인의 조직화일 것입니다.

6. 마치며
감옥인권운동은 처우개선의 수준을 넘어 사회를 바꾸는 운동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격리와 배제의 논리에 저항하는 최일선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의 벗으로서,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사회변화와 감옥의 폐지를 꿈꾸면서, 현실에서는 당면한 수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감옥인권운동은 전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감옥인권운동의 질적 전환을 가져다 줄 ‘수인 주체의 감옥인권운동’ 형성에 집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옥인구의 축소를 위한 여타 사회운동과의 연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 그것이 현실을 딛고 미래로 나가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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