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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의 한달

[꿈사마당] 추억의 군대와 ‘이 갈리는’ 군대

사람들은 군대를 추억 삼아 질겅질겅 씹으면서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저에게 그곳은 질겅질겅 이를 갈게 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땡보’로 살았는데도 말이죠. 사실 논산 연병장에서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이상한 노래를 부를 때까지만 해도 저는 ‘캠프 간다’는 생각이 짙었습니다. 뭐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죠. 그런데 군대는 생각보다 이상한 곳이더군요.

사람들은 군대라는 곳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 다녀와야 사람된다 (속없는 아들을 둔 부모님)
    - 남자라면 다녀올 만한 곳이다. (예비역들 단골 멘트)
    - 난 군대 안 갔다 온 남자보면 이상해 보이더라 (어느 여학우)
    - 딱 1년이었으면 다녀올 만하다 (현역들의 푸념)
    - 군대에 다녀와야만 부모님께 효도할 생각을 한다. (나도 조금 인정)

그 중 가장 골 때리는 괴담은 군대에서의 단체생활에 관한 찬양입니다. 가장 낮은 계급에서 높은 계급에 이르기까지 생활해 보니, 사회 나가서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들입니다. 사실 도움은 됩니다. 바깥에서도 군사문화가 고스란히 존재하니까요.
갓 전입한 이등병은 그야말로 나무토막처럼 얼어 있습니다. 요즘 구타도 없어졌는데 으레 군대라면 그래야 한다는 거겠죠. 그 단체생활에서 이등병의 ‘개인적 인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서 모난 짓 하면 군 생활 ‘조진’ 겁니다. 그게 진정한 왕따 아닐까요. 육체적 폭력은 사라져 가도 단체생활에서 그런 식으로 ‘개기다가’ 소외당하는 건 더 심각한 일이죠.

조용히 하라는 대로 지내다가 차츰 계급이 높아지면 녀석들은 이제 놀라운 속도로 군대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일종의 보상심리가 강해서 불합리한 것들을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나도 당했는데 다 그래야 한다는 거죠. 뭐 당한 녀석들도 짬 좀 먹으면 편해질 테니까 공평하다 이거죠. 그렇게 악순환은 계속 됩니다. 결국은 좋은 게 좋은 것으로 되는 거고 그렇게 제대하고 모든 기억을 잊은 채 한 번 다녀와야 한다느니 하는 자극적인 발언을 일삼습니다.
그렇게 해서 군사조직의 일상은 아직 20세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끔 군부대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부대개방 행사가 있습니다. 저도 입대하기 전에 형의 부대에 가봤더랬죠. 왜 이런 누추한 곳을 감추지 못하고 뭐가 자랑스러워서 보여주는지 참 의심스러웠는데 (그것도 며칠동안 열심히 청소한 결과겠지요) 그 곳을 보는 우리 가족들의 감회는 각각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당신께서 군생활 하던 때와 다름없는 내무반의 모습을 보시며 추억에 젖고 어머니는 이런 곳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발을 동동 구르시고 저는 제가 이런 곳에서 ‘뺑이’ 쳐야 한다는 생각에 공포에 젖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논산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 머물렀던 막사가 30년 되었다더군요. 국방부에서 일부러 예비역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방치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꾸 병역의 의무가 20대의 건장한 모든 힘없는 남성들에게 국가가 부여한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조금 무섭습니다. 하긴 저도 양심적 병역거부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그냥 슬쩍 남몰래 웃었습니다. 정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저런 거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보이지 않게 슬슬, 정말 슬슬 병역거부문제가 이성적으로 대화되기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게 힘겹게 세상은 슬슬 변하는데 사람들은 마치 때가 되어 당연스레 세상이 좋아진 것이라 느끼고 말합니다.

저도 이제 무임승차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