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다시보는 인권하루소식] 한총련 탄압 중단 의 전제가‘그들의 변화’ 인가?

최초로(적어도 최근에는) 공안 검사가 민간단체에서 주관하는 간담회에 참석해서 한총련 문제를 가지고 토론한다는 소식에 기자는 아주 큰 기대를 가지고 취재에 나섰다. 양심수 석방 문제와 함께 늘 거론되어 오던 ‘한총련 관련 수배자의 수배해제’와 ‘한총련 이적규정철회’ 문제에 대한 검찰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거니와 ‘세상이 달라졌다’는 지금에 공안검사의 생각이 어떠한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공안검사
공개간담회에 참석한 김경수 법무부 검찰3과장은 과거 공안논리를 그대로 반복, ‘공안검사’로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한총련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의식에서 ‘반(反)헌법성’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김 검사는 한총련의 강령과 규약, 총 노선을 예로 들었다. 한총련이 대한민국을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라고 하는 것에 가치판단을 하지 않겠다면서 “한총련의 주장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검사는 한총련이 대한민국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북한의 대남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재판정에서 읊는 검사의 국가보안법 공소장과 다를 바 없는 발언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 제국주의 식민지=대한민국 부정’이라는 검찰의 오래된 논리 비약은 여전했다.

김 검사는 또 북한이 남한을 공격했던 50년 전 한국전쟁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북한은 적화를 위해 계속 노력해왔다며 북한과의 대치상황만을 강조했다. 심지어 토론회 참석자들을 향해 “50년 전에 무력을 사용했던 북한은 여전히 위험하다. 50년이 지났다고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며 당부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했던 심재환 변호사는 김 검사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심 변호사는 “한총련이 대한민국을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인식하는 것은 이 나라가 미국에 의해 자주권을 잃고 있다는 비판의식으로, 이 나라의 현실을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지, 그것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또 한총련은 학생들이 직접 뽑은 대의원들이 활동하는 조직임을 설명하고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다면 대의원을 직접 선출한 대학생들은 모두 ‘방조범’이며, 이적단체의 가입자들인데 ‘대의원과 한총련 중앙 조직’만 처벌의 대상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토론은 서로의 다른 생각과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국가보안법의 유지를 주장하는 과거의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공안검사는 방청객을 향해 “여러분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권하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했다.

변화하는 한총련은 국가보안법에서 자유롭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 검사의 주장은 매우 실망스런 것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총련이 이름을 바꾸면 된다”는 송영길 의원의 주장에 더 당황했다. 당분간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거나 개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국회현실을 설명하더니, ‘이런 상황에서는 한총련이 이름을 바꿔버리면 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민주주의 기본이념에 따른 사상?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강변하며 한총련 탄압의 부당함을 주장하지는 못할지언정 국가보안법이 당분간 개폐될 가능성이 없으니, 한총련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한총련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는 과거 97년 한총련이 이적규정 됐던 당시 ‘한총련 대의원들이 모두 한총련을 탈퇴하고 새로 조직을 만들면 된다’는 실용주의적 접근과 맥이 통하는 주장이다. 이름을 바꾸고 해쳐 모인다고 해서 한총련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총련에 대해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변화’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총련은 주장에서든 pp형식면에서든 변화해야 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 송영길 의원처럼 지금의 한총련이 싫다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있으니 변화하라는 논리는 한총련 보고 사상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 권력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사상만을 허용하겠다는 국가권력의 탄압에 굴복하는 것이다.

한총련 비판과 탄압의 차이
한총련 문제 해결을 두고 ‘한총련이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기자는 때때로(차마 묻지는 못했지만..)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간혹 한총련의 강령과 규약이 변했으니 이적단체가 아니라든지, 변하고 있으니 한총련의 탄압을 그대로 내 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식의 주장도 불편하게만 들린다. 물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지금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기본적 인권의 관점에서 ‘이제서야 포용할 수 있는 한총련’이란 있을 수 없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한총련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탄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총련이 변화해야 한다’고 게시판에 리플 달듯이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왜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