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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상임활동가의 편지] 사람사랑 100호를 맞으며

사람들에게는 단위별로 뭔가를 기념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10년, 50년, 100년 같은 단위도 그렇다. 그게 우리나라만은 아닌 것 같고, 인류 보편의 인식인 것처럼 보인다. 사랑방의 소식지 사람사랑도 이번이 100호란다. 그러니, 사람사랑 편집을 책임진 총무를 탓할 수도 없다. 단지 하나 내가 처음 사람사랑을 만들었다면서 회상기를 쓰라고 한다. 총무의 까탈이 심하니 안 쓸 수는 없는 일인데, 나도 내가 처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류은숙 씨가 자기가 먼저 만들었고, 갈월동 사무실 시절에 만들었노라고 기억을 일깨워주었다. 자신이 편집 실력이 부족해 엉성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사랑은 1995년부터 류은숙 씨가 만들었던 것 같고, 류은숙 씨가 영국으로 가고 나서부터 내가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대충 나이를 먹으며 살다 보면 아주 큰 것 아니면 잊어 먹게 된다. 특히 나와 같이 뇌 용량이 작은 사람은 빨리 빨리 잊어먹어야 새로운 것을 채우며 살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지 오래라 잊어 먹는 것 자체에 대해 안타까워 하지도 않는다.

갈월동 사무실 시절에 당시 자문위원들이 딱 1백명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1백부씩 만들었다고 하는 류은숙 씨의 기억이 맞을 것이다. 그때 그들에게 사랑방이 무엇을 하는지, 보내주는 돈은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려야 한다는 소박한 심경에서 임시적으로 복사물로 만들었다. '사람사랑'이란 제호도 류은숙씨가 대충 학교 모임을 갖다 붙였던 것이란다. 우선 형식이나 질을 떠나서 일단 후원해 주는 사람도 있고 하니 일단은 만들어서 보내고, 나중에 세련되게 인쇄를 하자는 심뽀였던 것 같다. 그래서 겉표지는 대충 신문의 사진이나 만평을 오려 붙이고, 안의 내용은 한 달 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서 보고한다는 마음으로, 편집을 맡은 사람이 혼자 다 작성해서 썼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게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어서 하루 밤새 해버린 것 같다.
그렇게 성의 없이 만들었던 임시물(?)이 벌써 100호를 맞은 것이고, 내용은 풍부해졌으나, 형식적인 면에서는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내용이 나아진 것은 각자의 사업에 대해 각자가 책임있게 쓰고, 재정 보고가 풍부해졌고, 읽을 거리도 넣고 한 때문이리라. 아직은 싸구려 소식지를 벗어나지 못해도 거기에 사랑방의 소식들이 꼼꼼이 기록되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서준식 전 대표가 낸 『서준식의 생각』 책에도 보니 사람사랑에 썼던 글도 있었다. '아, 이런 글이 실린 적이 있었구나. 그런데, 사람들이 출처를 사람사랑이라고 하면 알 수 있을까? 김규항이란 놈 출전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야지 사람들이 알 게 뭐람.'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다른 단체의 소식지와 비교를 해서 보면, 참 우리 소식지는 볼 품이 없다. 후원회원들이 다른 단체의 소식지와 함께 우리 사람사람을 받아본다면 어디에 먼저 손이 갈까? 생각해 보면 얼굴이 후끈거릴 때가 있다. 정말 깔끔한 천연색 표지에다가 이것저것 오밀조밀한 읽을 거리들이 많다. (그런데 외양이 잘 갖춰진 단체 소식지일수록 재정 보고는 부실하다. 왜 일까? J) 단체 소식지가 하나의 잡지 수준은 되는 것 같다. 거기에 비해서 아직도 복사물인 우리의 소식지는 정말 성의가 없는 것 같아 후원회원들에게 죄송스럽다.

우리 하는 일을 충실히 알리면 되지 그 이상 뭐 바랄 것 있나 하고 우리 활동가 마음대로 편하게 생각해왔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인다. 이제 100호를 맞았으니 임시 편집체계를 벗어나 제대로 된(그렇다고 외양이 너무 화려하지는 않은) 소박하지만 깔끔한 소식지를 보내고 싶다. 이렇게 싸구려 소식지에도 불구하고 지난 8년여 동안 꾸준히 후원해 주신 분들께 이 지면을 통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린다. 어쩌면 우리는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 너무나 큰 사랑과 믿음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이 사랑과 믿음을 우리는 운동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깨가 절로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