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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부끄러운 나의 고백

칼바람이 유난히도 매서웠던 이천십년 일월. 
군대에서 갓 제대한 나는 마음이 분주했다. 그보다 더 추웠을 이천구년 일월의 기억과, 그리고 그 보다 더 뜨겁게 불타올랐을 이천팔년 촛불의 기억을 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던 그 무렵 입대를 하게 되었고, 차갑고 비정한 총부리를 북녘을 향해 겨누는 동안 내가 한가로이 거닐던 이 땅, 이 거리 위에선 폭력과 비폭력의 치열한 싸움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부대 안에서 시청이 가능했던 몇몇 공중파 뉴스를 통해 난 용산에서의 일을 ‘도심 테러리스트들의 난동’으로 이해하였을 뿐, 언론의 정제된 보도안에 가려진 가슴 아픈 진실을 알지 못했다. 질서 정연한 시위의 모습보다는 어지럽혀진 거리와 파손된 기물들의 흉물스런 모습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외박을 나갔던 아침이었던가, 젊은 시절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전직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난 이유 없이 슬펐다. 마냥 푸르던 강들이 처참히 파헤쳐지기 시작하고, 현 정권이 가진 광기와도 같은 공권력의 횡포가 극을 향해 치닫고 있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표적을 향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기며 희열을 느끼던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군대라는 것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 보다는 내부 국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역사는 늘 말해주었는데, 난 내가 쏜 탄환이 거리의 무고한 시민들을 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난 군대를 통해 공권력의 실체를 막연하게나마 느끼게 되었고, 물밀듯 밀려오는 자괴감에 너무도 괴로웠다. 문득, 거리 위 사람들이 궁금했고, 제대 후 복학하기 위해 상경해 있던 어느 날, 난 허름한 차림으로 무작정 서울역을 찾아갔다. 

하루 노숙 ‘체험’을 통해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심리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대기업 하청 공장에서 일하다 나이와 건강 문제로 정리해고 되어 수개월 째 거리 위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계신다는 한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고, 한 나절의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통해 열악한 작업장 환경과 상시 고용 불안을 안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심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턱없이 부족한 노숙인 재활시설로 인해 추운 겨울에도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결코 난 서울역 노숙인들의 근심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한겨울의 서울역 거리는 몸서리칠 만큼 너무도 추웠고, 내게는 작지만 지친 한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방이 또 다른 거리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거리로 나왔지만, 난 결코 그들이 될 수 없다는 그 사실이 또 한 번 나를 괴롭게 했다. 칠팔십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학출’이 이해가 되었지만, 내게 그럴 수 있을 만한 용기는 없어보였다. 노숙인들에 비하면 난 너무도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세상을 향하는 나의 정신은 너무도 빈약하고 볼품없었음을, 난 너무도 뒤늦게 깨달았다. 

세상의 가려진 진실들을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고, 나아가 변화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너무도 기뻤다. 서툴기만 하던 나의 생각들이 이곳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제 그들의 열정을 닮아가고픈 욕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내가 이곳 사랑방 식구들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들과 함께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다시 광장에 설 그날이 너무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