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같이 봄을 만들어가 볼까요?

아침에 눈을 자극하는 빛들이 조금 빨라진다. 세상을 회색으로 드리우는 저녁의 어둠도 조금 걸음을 늦춘다. 바람이 얼굴에 와 닿을 때 아주 차갑지만은 않다. 거리에 노란색 꽃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향기를 뽐낸다. 

이것이 내가 계절을 느끼는 방식, 봄을 느끼는 때이다. 그런데 봄이 다가오는 3월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겁지 않게, 그러나 진지하게 세상을 살려고 하는 나에게,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최근까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와 77일 농성이후 죽은 사람이 14분이다. 그 참혹했던 2009년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그 이후의 삶도 힘들었을 그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우리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지? 뭘 했어야 하지? 등등의 질문과 막막함과 자책이 쏟아진다. 

우리에게 봄은 언제 올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열매가 맺어야 봄이라면 봄은 얼마나 먼 것일까? 인권운동은 뭘 해야 할까? 잘하고 있는 걸까? 라는 수많은 질문들이 터져 나온다. 

내가 `인권`운동이라는 거에 관심을 가지고 인권운동사랑방에 문을 두드린 거는 2004년. 그때도 여전히 `운동`을 10년 넘게 하고 있었고,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혼자서는 답할 수 없었고, 다른 세상을 간절히 원했기에 다른 세상을 함께 일구어갈, 같이 꿈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나의 열망이 인권운동사랑방에 문을 두드린 이유였다. 

당시에는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곳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그리고 지인이 사랑방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인권운동을 하는`곳이라고 했다. 홈페이지에 써 있는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 질서에 대한 꿈이 마음에 들었다. 또 `대표나 간부는 없고, 인권운동사랑방 상임/돋움활동가 전원이 대표성을 갖습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위계적 질서로는 위계적인 자본의 탐욕질서를, 가부장질서를 넘어설 수 없다고 느낀 나에게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씨앗이 새로운 세상을 일굴 수 있으니까. 물론 대표는 없되 최소한의 조직 내 소통과 중장기전망을 고민하는 ??집행조정??을 둔다. 조정의 역할이라는 게 사실 보이지 않는 노동이지만 쉽지 않다. 올해 나는 집행조정의 역할을 맡았다. 선출이라고 하지만 사실 거의 돌아가면서 하는 형편일 정도로 즐겁고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사실 마음이 무겁다. 그동안 나는 주로 밖으로 쏘다니는 스타일이라 안살림을 잘할지 말이다. 

인권 운동이, 인권운동사랑방이 다른 세상을 꿈꾸는데 잘 기여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촉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권운동의 의제주도력이 떨어지고 인권활동가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현실에서 말이다. 더구나 그런 지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힘을 보태도록 하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말이다. 상임활동가가 6명으로 줄어든 어려운 상황에서 이일을 제대로 해낼지도 말이다. 우리안의 소통과 운동, 우리 밖의 사람들과 소통과 운동, 둘 다 쉬운 일은 아니다. 

2012년은 대선과 총선이라는 큰 사회권력 구조의 재편이 있는 시기이고, 2013년은 사랑방이 만들어진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11년은 초입이다. 사랑방의 초창기 멤버들이 여러 다른 일들을 하러 나가고 거의 남아있지 않은 사랑방의 현실도 이러한 역할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말해준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변화된 상황에서 변화된 운동과 변하지 않는 운동으로, 사랑방운동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마음을 움직이는 거겠지. 그러나 요란스럽지 않고 평범하게 보일 듯, 말 듯 마음을 움직이는 거가 필요하다. 요란함이 진솔함을 가리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추상적인 구호로만으로는 다가가기 힘들 테니까. 속물화된 세상에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속물적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 시기에 마음을 움직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우리 모두는 용산 철거민사망사건에서 배웠으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동산 투기열풍에, 주식 펀딩에 귀 기울이고 목매는 현실을 몸소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러려면 우선 내 마음부터 움직여놓고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거에 주목하려고 한다. 인권운동과 인권운동사랑방이 붙어있듯이.... 

올해의 나의 바람, 같이 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봄의 따사로움을 몸의 움직임을 통해, 마음으로 함께 느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