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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원더풀 라이프

"책 사게 돈 좀 줘요."

받은 돈을 꾸깃꾸깃 주머니에 넣고,
슈퍼에서 담배 두 갑을 챙기고,
도서관 옆 PC방에 들어가 하루 정액을 끊는다.

공무원시험 준비를 4년째 하고 있던 나.
어두운 PC방 찌들어가는 담배연기,
게임 속 나의 레벨이 올라가면 갈수록
나는 나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인권영화제…
단지 우연이었는지 모른다.
올해도 하려나 하는 생각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적었다.

1998년 처음 접했던 인권영화제…
그 이후 나는 마치 버리지 못했던 미련처럼
언제나 그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내가 그곳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원활동가 모집…
9회 인권영화제가 열리기 며칠 전까지 고민했다.
해볼까, 아니 하지 말자….

시간이 없기보다는 용기가 없었던 나.
애써 변명을 만들어가며 내 자신을 납득시킨 채
만화책 속에 파묻혀 다시 며칠을 보냈다.

'나는 도대체 왜 살아가고 있는 걸까?'

26살!
앞으로 26년 정도 지나면 조만간 눈감을 준비를 할 텐데
나는 젊은 날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해보자, 더 늦기 전에 해보자.'

인권영화제가 시작되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영화제를 찾아왔다.
그와 함께 담배를 한대 물었다.

"네가 웃으며, 그렇게 좋아 보이는 건 처음 본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바로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그렇게 또다시 교과서를 붙잡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되뇌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그저 꿈이라고 되뇌었는데…

나는 이곳에서
내가 멀리서라도 함께 있기를 꿈꾸었던 사람들 속에서
그 꿈이라고 했던 일들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생각보다 형편없는 인생이기에
어른이 되어가는 언젠가 속에 이곳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
누군가 한명이라도 인권영화제를 통해
애써 외면했던 현실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거라 믿기에,
그리고 그 용기들이 모이는 이곳이 '세상을 바꾸는 힘' 출발점이라는 것을 믿기에,
이곳을 지키고 싶다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

비록 지금은 제대로 활동도 않는
잡일 처리 및 뒷풀이 전문 자원활동가이지만서도,
그것도 좋다.
무엇보다 인권영화제에 처음 왔을 때 되뇌던,
함께 영화제를 준비하고 싶다는 18살 소년의 꿈을 헛되게 하지 않았으니까…


[Cinema Paradise…]


영화라는 꿈을 당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땀이 흘려진다.
그 땀을 흘리기 위해 나는 영사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잔혹했다…
내가 일한 극장은 멀티플렉스 극장이다.
7명의 영사기사들이 하루 14시간씩 머리가 깨질 듯한 소음 속에서
공업용 기름에 범벅된 손을 수없이 필름에 배인 채
단 한 명의 관객이 오더라도 그를 위해 영화를 틀었다.
비록 망해가는 극장이더라도 다시 살리기 위해,
마치 Cinema Paradise의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4개월째 월급을 못 받은 청소부 아주머니들,
입사한 후 3개월째 한 푼도 못 받고 있는 영사기사,
필름 배급이 끊겨 한 달째 같은 영화를 상영하고 있지만
모두가 이 극장을 꿈으로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바람을 짓밟은 건 그 누구도 아닌 극장의 "회장님"
1억만 있어도 이 극장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불행히도 우리의 꿈들은 소모품이 되었다…
자기 딸 호프집, 자기 사위 산부인과에 모든 돈들이 쓰였고,
주린 배에 지친 영사기사들은 파업을 결정했다.

영화를 한번이라도 안튼다는 것은 극장이 문 닫는 것과 동일어다.
왜냐하면 배급사에서 필름을 회수해 가버리고
다른 새로운 영화도 그곳에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사기사들이 영화를 안튼다는 건 처절한 눈물이었다.
청소부 아주머니들은 울먹이며 영사기자들에게 같이하자고 했다.
하지만 피해는 오히려 그들에게 더 크게 돌아가기에,
영사기사들은 혼자서 싸우기로 했다.
영사기사들과 극장주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어,

결과는 패배했다…
변절하고 "회장님"에게 타협한 자,
현실에 침묵한 자,
극장에서 쫓겨난 자,
그리고 그 모두를 이용한 자…

월급을 올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밀린 월급을 달라고 했던 지극히 당연한 일은 패배하고
나는 잘린 것과 그만둔 것 그 가운데에서 그 곳을 떠났다.
앞으로 절대 잊을 수 없을,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눈물을 뒤로하고,
나는 그렇게 그곳을 떠났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영사기는 돌아갈 것이다.
머리가 깨질 듯한 소음만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