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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용역전환 막아낸 한원CC ‘노동자’들

2월부터 <인권하루소식> 편집을 맡게 되면서 매일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인권뉴스 가운데 그날 취재할 ‘꺼리’를 선정하고 배분하는 일입니다. 인권소식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하루에 쓸 수 있는 기자는 한정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꼭 다뤘으면 하면서도 힘이 닿지 못해 쓰지 못할 때는 대신 선택한 다른 것을 쓸 때도 힘이 덜 붙습니다.

그래서 취재할 ‘꺼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 원칙을 스스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모든 소식을 다루지 못한다면 '승리한 싸움'보다는 '실패한 싸움', '쉬운 싸움'(이 어디 있겠습니까만)보다는 '어려운 싸움'에 더 관심을 둔다는 원칙입니다. 4월 16일 새벽 막 하루소식 발송을 마치고 이메일함을 열어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타결] 한원CC 원직복직 조합인정 손배가압류 철회”, “장장 283일을 싸워왔던 한원골프장 용역철회, 조합인정 투쟁이 드디어 타결, 승리하였다!”, “새벽 3시50분…합의서에 최종서명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해 한동안 먹먹했습니다. '이걸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결국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번 달 <다시보는 하루소식>은 아쉽게도 쓰지 못한,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들 이른바 ‘특수고용’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제야 눌러 씁니다. 이날 한원CC 노사는
    △경기보조원 업무복귀, 별도 자치회 구성, 원직복직
    △회사는 조합 관련 차별/불이익처분?본인의사에 반한 강제퇴사(배치중지포함) 금지
    △고소고발/손배가압류 철회
    △민형사상 책임 묻지 않고 형사사건은 해결 위해 탄원서제출
    △생계지원비/치료비 지급
등에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지난해 7월 일방적 용역도입과 해고로부터 시작된 한원CC노조의 283일 투쟁은 정규직 해고 3명, 정직 4명, 경기보조원 해고 37명, 구속 3명, 클럽하우스앞 천막투쟁, 손배가압류 12억 5천만원, 원춘희 조합원의 목숨 건 자결시도, 서초동 본사 앞 천막농성 39일, 삭발, 단식농성, 2박3일간의 연대파업과 노숙압박투쟁을 거쳐 결국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들이 해낸 것은 단순히 한 사업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다시 원직복직한 것이 아닙니다. 골프장 업계 최초로 진행된 경기보조원의 용역화에 맞서 끈질기게 싸움으로써 경기보조원의 용역화 흐름에 제동을 건 것입니다.

하지만 이날 합의가 사측의 일방적인 굴복(?)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특수고용 노동자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경기보조원들이 일반(↔특수)노동자로 대우받는 것은 아닙니다. 합의서는 정규직 조합원들은 원직에 복직시키되 현 자치회에 가입하지 않은(그래서 해고된) 경기보조원 40명은 투쟁 이전처럼 별도 자치회를 구성해 “경기보조원 업무를 부여”하도록 해, 여전히 ‘정규직’과 ‘경기보조원’은 명확하게 구분되어 노동자 취급을 받지 못하며, 지난해 7월 해고되지 않고 기존 자치회에서 용역으로 전환한 108명(지난해 7월 당시)의 경기보조원들은 여전히 용역인 채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합의는 지난해 7월 시작된 사측의 강제 용역전환 공세를 완벽하게 막아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골프장 경기보조원도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상 ‘근로자’라는 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을 받은 것은 중요한 성과입니다. 사측은 이번 투쟁과정에서 줄곧 “경기보조원은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4일 경기지노위는 조합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부당징계 등 구제신청에서

    △한원CC노조가 경기보조원을 가입대상으로 하는 규약을 가지고 있고
    △2003년 2월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도 조합원 자격은 규약에 따르도록 되어있으며
    △사측이 경기보조원에게 매월 정기교육을 실시하고 근무수칙이나 복장에 대해 지시하는 등 업무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감독권을 가지고 있어 노동조합법상 ‘사용종속관계’에 놓여 있다
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한원의 푸르른(?) 골프장으로 돌아온 경기보조원 노동자들의 상황은 1년 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회사의 업무 지시를 받고 규율을 지켜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특수고용직’이라는 딱지를 붙여 노동3권을 박탈하고 있는 현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해 온 회사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는 이번 투쟁 승리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한원CC의 경우도 정규직노조 규약에 경기보조원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조항이 없었다면 승리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지노위 판단이 언제 뒤집어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불안한 평화입니다. 결국 이번 한원CC 투쟁 승리는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레미콘 지입차주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해묵은 요구를 재확인하도록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