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돋움활동가로 새롭게 내딛는 한 [거름]

돋움활동가로 새롭게 내딛는 한 [거름]
박석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안식년 휴가를 얻어서 사랑방 활동을 쉬고 돌아 왔거든요. 2월부터 다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돋움활동가 편지’로 복귀 인사를 드리게 되었네요. 의아해하실 분들도 있겠지요. 아 참, 전 이전까지 상임활동가로 활동해왔거든요. 이제는 돋움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이에 대해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될까...

그 이유를 꺼내보려니, 너무 많은 이유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그 모든 이유들이 다 아무 소용없는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일단 표면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어 교사를 하려고 알아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지난 2월에 대학원을 졸업한 후 지금은 전공을 살려 한국어 교사를 하려 하고 있어요. 2년 전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전공으로 공부해왔고, 이제 졸업 후 한국어 교사를 하기 위해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어 교사를 해보려고 하는 이유는, 좀 다양하긴 한데, 우선 그 일을 사랑방 운동과 같은 활동과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한국어교육이 장기적으로 나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나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대학 졸업하기 전에 중국에서 어학연수하면서 가졌던 좋은 기억과 그 때 보았던 중국어 선생님들이 생각나서 그와 비슷하게 한국어 교사를 해보고 싶었던 것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한국어 교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하는데, 아무래도 한국어교육을 하게 되면 사랑방 상임활동과 병행하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돋움활동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이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들은 좀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어쨌든 이 방법이 개인적으로는 인권운동과 같은 활동을 내 삶에서 보다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방법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상임활동에서 돋움활동으로 전환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고민들은 많이 남네요. 뭐, 정답이 따로 있진 않겠지요. 시행착오들을 거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내딛은 걸음, 몇 걸음 더 내디뎌보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안식년 휴가를 받았지만, 실질적인 ‘안식’은 아쉽게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다니고 논문 쓰느라 사실상 더 바쁘고 스트레스 받으며 생활했거든요. 2010년 사랑방 상임활동을 하면서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주말에 제대로 쉬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주중에는 사랑방 일하고 짬짬이 학교 다니면서 주말에는 밀린 대학원 과제와 공부를 해야 했거든요. 지난해에는 사랑방 일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 좀 더 여유가 생겨야 했겠지만, 그 전 해 학교에 다니면서 졸업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미뤄뒀던 터라 정작 별로 여유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나마 작년 말에 논문 통과하고 난 후에 사랑방 복귀하기 전까지 귀한 여유를 누리긴 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제대로 안식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별로 후회되지는 않습니다. 학교 다니고 논문 쓰면서 나름대로 배운 것들도 많았거든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이라는 전공 공부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하고 진학했지만, 전공 공부를 통해 접하게 된 언어학과 교육학, 그리고 국어학 일부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 그곳의 사회 역시 이전에 내가 경험해본 곳들과 많이 달라서 새롭게 느끼고 배운 것들도 많습니다.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경험의 범주가 좁았다는 점을 새삼 느끼며 삶과 사회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 물론 그것 역시도 제한적이겠지만요. 그리고 졸업논문 쓰면서 느꼈던 좌절과 깊은 고민, 그리고 일부의 성취감은 또 다른 것들을 알려 주었습니다. 졸업논문 주제는 결국 인권운동을 하면서 고민했던 지점 중 하나가 되었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고민했던 많은 것들이 인권운동을 했던 나의 고민의 연장선 속에 있었습니다.(매 수업의 핵심 과제였던 기말 보고서 주제들은 ‘남한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의 차이에 대한 사회 맥락적 이해’, ‘한국어교육에서 차별적 어휘 교육 방법 연구’, ‘이주노동자를 위한 한국어 교재 선정을 위한 평가틀 개발’,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 문제와 인종주의’ 등이었습니다.^^) 인권운동의 경험 덕분에 대학원 공부를 그나마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고, 대학원 공부 덕분에 인권운동의 고민을 좀 더 심화시키거나 혹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랑방 일에 푹 빠져 지내고 있어요. 어쩌면 얼마 전에 있었던 사무실 이사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복귀와 더불어 사무실 이사라니... ㅠㅠ 2007년 혜화동에서 중림동으로 사랑방 사무실을 옮기면서 그때 너무 힘들어서 ‘사무실 이사를 한 번만 더 하게 되면 그 땐 사랑방을 그만 둔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다짐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게다가 한국어 교사 자리를 아직 못 구하고 있어서 사랑방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네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런 걸 두고 요즘엔 “웃프다”고 한다죠. ㅋㅋ 그래서 요즘엔 상임활동가처럼 상근 활동을 하고 있어요. 뭐,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소득 수입 현황으로 보면, 지금과 같은 백수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라도 구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걱정보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그냥 사랑방 활동에 집중하려고 해요. 어떻게든 되겠죠. 흐흐

운 좋게 일자리가 구해져 한국어 교사가 된다면, 그때부턴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아니, 벌써 지금부터 ‘88만원 세대’, ‘3포 세대’로서 구직이 얼마나 어렵고 자신을 구차하게 만드는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점도 너무 많이 보이고요.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화도 많이 나고요. 물론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졸업한 대학원 동기들 모두 비슷한 상황입니다. 팔팔한 젊은이들이 이런 상황에서 폭동이라도 일으키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예요. 장차 취직이 된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겪게 될 고난의 시간도 만만치 않겠죠? 좀 힘들더라도 어쨌거나 좋은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도대체 언제쯤 한국어 교사로 취직할 수 있을지, 아직 전혀 짐작할 수 없지만(“웃프네요.ㅋㅋㅠㅠ”), 지금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거름] 내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