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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성명]한국정부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진출에 관해

한국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 출마를
국내외 인권상황에 대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난 3월 15일 유엔 총회는 기존의 유엔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를 폐지하고 유엔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를 신설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이로써 지난 60여 년간 전 세계 인권논의의 장으로 자리잡아왔던 유엔인권위원회가 올해부터 유엔인권이사회로 그 지위가 격상되어 내일 5월 9일 초대이사국 선거와 6월 19일 첫 회의를 앞두고 있다.

기존의 유엔인권위원회는 그동안 나라별 결의안 제도 운용에 있어서의 선별성, 인권의 정치화 경향, 비효율성 등의 문제들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서구사회의 인종차별 문제 등 서구 강대국들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눈 감은 채 특정 국가들에 대해서만 나라별 결의안을 채택하여 ‘인권을 정치적 압박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어 왔다.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서구 선진국들도 수단, 쿠바 등이 유엔인권위원회 위원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비판해왔고,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유엔인권위원회가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해왔다.

앞으로 신설될 유엔인권이사회는 △그 지위를 유엔총회의 직속 보조기구로 하여 인권의 중요성을 높이고 있고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모든 유엔 회원국들의 인권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보편적 정례검토제도(Universal Periodic Review)를 운영하게 되며 △이사국 선출시 후보국의 인권상황을 적극 고려하고 이후 퇴출제도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유엔인권위원회와 차별성을 두고 있다.

그러나 유엔인권이사회가 기존 유엔인권위원회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의 인권증진과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논의와 협력의 장이 될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며, 내일 (5월 9일, 한국시간 5월 10일 새벽)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릴 예정인 초대 이사국 선거는 유엔인권이사회 초기운영의 성패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유엔인권이사회의 구체적인 업무절차들을 만들어나가는 논의에 있어 초대 이사국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일 선거에서는 아시아 지역의 13개국을 포함하여 총 47개 이사국이 선출될 예정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등 18개국이 출마를 선언하였고 각 후보국들은 국내외의 인권상황 개선과 유엔인권이사회의 운영 등에 대한 기여와 전망을 담은 공약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지난 4월 19일 발표된 한국정부의 공약 내용과 그 작성과정을 볼 때, 우리는 정부가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인권증진을 위해 수행해야 할 막중한 책임과 역할에 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였는가에 대해 깊은 의문과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국내인권 상황에 기여하기 위해 ‘시민사회와의 협력과 파트너십 강화’를 공약 사항으로 내걸었지만, 이사국 입후보를 위한 인권정책 공약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어떠한 논의도 시도하지 않았다. 공약의 이행에 있어 주된 역할을 하게 될 실제 주무부처 간 논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약을 영문으로만 작성하여 인권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접근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절차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공약의 내용에 있어서도 이주노동자협약 등 한국정부가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는 주요 인권조약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헌법상 기본권인 결사의 자유에 관한 자유권규약 조항에 대한 유보 철회 의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유엔인권이사회의 운영에 있어 비정부기구들(NGO)의 참여와 역할에 대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의 자질 평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외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한국정부의 전망과 의지일 것이다. 자유권규약위원회를 비롯한 유엔의 인권기구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한 인권침해문제를 수년 동안 반복하여 지적하여 왔지만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과 남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만 명 이상의 미등록이주노동자 문제를 과도한 단속으로만 해결하려 하고 있어 강제추방의 위기에 몰린 이주노동자들이 목숨까지 잃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인 1,000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어 있으나 대체복무제 등 그 해결을 위한 어떠한 방안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군 기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평택 주민들의 거주권, 발전권이 침해되고 있으며, 경찰과 군 병력을 동원한 폭력적 시위진압으로 지난주에도 500여명의 평택주민과 인권옹호자들이 연행되었다. 정부가 강력 추진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그 대비책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건강권, 교육권, 노동권, 식량권 등 많은 인권침해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버마 군사독재 정부와의 협력 속에서 벌이고 있는 대규모 가스개발 사업은 버마 민중들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인권현안을 일차적 국정과제로 삼아 한국의 인권정책을 재정비함과 동시에, 나아가 독재와 가난,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여러 개발도상국의 인권증진에 기여할 적극적인 인권정책을 세움으로써 국제사회에 모범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의 진정한 역할임을 우리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국내외 인권상황의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 국가들이 이사국으로 선출된다면 이는 앞으로 유엔인권이사회의 활동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올 수도 있다. 정부는 이번 유엔인권이사회 선거 출마를 국내외 인권상황에 대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06년 5월 8일

국제민주연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 성공회대학교 인권평화센터,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인권운동사랑방, 전쟁없는 세상,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상 14개 인권사회단체)
[참조]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 한국정부의 공약 내용

영어원문: 유엔총회 웹페이지 (http://www.un.org/ga/60/elect/hrc) 참조


<국내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공약>

△ 여성차별철폐협약 선택의정서 (개인청원권) 가입
△ 자유권규약 14조 5항 (모든 사람의 상소권 인정), 고문방지협약 21조와 22조, 여성차별철폐협약 16조 1(g)항 (가족의 성씨 및 직업의 동등한 선택권)에 대한 유보철회 검토
△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 (국내 구금시설 방문 및 조사) 가입 검토
△ 국제노동기구(ILO) 기본조약 중 87호 (결사의 자유), 98호 (단체협약권), 29호 (강제노동), 105호 (강제노동폐지)를 2008년까지 비준
△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07-2011)을 2006년 말까지 확정
△ 인권의 주류화 실현을 위해 공공의 인식고양을 위한 인권교육 강화
△ 공공정책의 개발과 이행, 평가의 과정에서 시민사회와의 협력과 파트너쉽 강화

<국제사회의 인권증진을 위한 공약>

△ 국제인권조약 감시기구의 개혁 논의에 지속적으로 기여
△ 국제인권조약에 대한 이행보고서 제출기한 준수, 조약감시기구의 권고에 대한 신속한 이행
△ 기술적 협력을 통해 유엔 회원국들의 인권의무 이행을 지원
△ 민주주의, 법의 지배,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 강화를 위한 양자적, 다자적 협력
△ 민주주의 공동체 활동을 통해 민주적 제도 정립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국가들과 협력
△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업무 향상을 위해 기여
△ 국제인권조약 미가입국들이 주요 조약을 가입하도록 독려
△ 장애인권리협약에 관한 특별위원회 업무 등 인권조약의 성안을 위한 논의에 적극 참여
△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역 인권기구 설립을 위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
△ 생명윤리, 정보기술(IT) 등 새로운 인권문제에 관한 기준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에 기여

<유엔인권이사회의 운영에 대한 공약>

△ 유엔인권이사회가 투명한, 생산적, 실질적 기구가 될 수 있도록 업무방식 논의에 적극 참여
△ 인권침해에 신속히,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이사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
△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동등하게 강조,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