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성명> 국가의 폭력에 양심의 자유는 굴복하지 않는다.

<성명>

국가의 폭력에 양심의 자유는 굴복하지 않는다.


5월 27일 대법원(재판장 서성, 주심 배기원)은 인권운동가 서준식 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91년 고 강경대 씨 노제 참가 및 97년 인권영화제 개최에 관한 것으로, 그 본질은 91년 유서대필 진상규명 활동과 97년 사전심의 거부를 전면에 내세운 인권영화제 개최 등에 대한 탄압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일단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최근 대법원의 잇따른 보수적 판결을 감안할 땐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 4·3 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드헌트>에 대한 이적성 시비는 애초부터 상식을 벗어난 공권력의 남용임이 명확했으며, 박노해 시인의 시집 『참된 시작』을 취득, 소지, 보관했다는 죄 역시 공안 검찰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반인권적 악법을 가지고 벌이는 코메디와 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다시금 드러났다.

그러나 대법원이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 등을 인정한 것은 인권의식을 결여한 반쪽 짜리 판결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보안관찰법이 정한 신고사항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안관찰법 위반이라 잘라 말하는 판결문에서는 보안관찰법이 지니고 있는 인권 유린적 구조에 대한 어떠한 성찰도, 일말의 가책도 엿볼 수 없다.

보안관찰법은 가족 및 동거인 상황, 교우관계, 주요활동상황, 여행에 관한 사항 등 개인의 사생활을 일상적으로 경찰에 신고하도록 강제하는 법이다. 또한 이 법에 의해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사는 사람들의 내심은 끊임없이 '심판대'에 올려짐으로써, 양심의 자유 또한 철저히 억압당하고 있다. 보안관찰법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대자, '사상범'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영원히 국가권력의 감시망 안에 두면서, 눈에 거슬릴 땐 올가미를 씌워 잡아 가두겠다는 것으로 법의 껍데기를 쓴 야만적인 폭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번 사건들에서도 애초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는 주된 죄목은 아니었으나 끈질기게 남아, 결국 한 인권운동가를 '죄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우리는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기 전 인권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해주기를 기대했으나, 그 기대는 허황된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보안관찰법의 철망이 가두고자 하는 것은 서준식이라는 한 인권운동가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양심과 지성 그 자체임을 우리는 직시한다. 이에 우리는 유엔인권절차를 활용하는 등 이번 사건의 반인권성을 밝혀내기 위한 마지막까지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나아가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 등 국가의 폭력을 폐지하기 위한 부단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2003년 6월 2일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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