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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가자! 10월 평등행진! 만들자! 차별금지법!

2018년 제가 가는 웬만한 집회마다 한 번쯤은 볼 수 있던 문구였는데요. 10월 20일, 드디어 평등행진이 진행되었습니다. 행진을 한 달여 앞두고부터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는 방방곡곡 캠페인을 진행하고, 온라인을 통해 #평등선언_인증샷 캠페인도 시작했었는데요. 1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덕분일까요. 평등행진 당일에는 전국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행진할 수 있었습니다.

  

평등행진, 출발

  

평등행진에 앞선 사전 행사로 난민 환영집회가 열렸는데요. 난민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할 존중을 가로막는 현실에 맞서 환영과 연대의 마음을 드러내는 자리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차별을 다루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에 앞서 ‘왜 더 포괄적인 차별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평등을 외치는 행진에 앞서 적대가 아닌 환대의 마음을 함께 확인하고 나누는 자리야말로 가장 적절한 자리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민 환영집회가 마무리되고 바로 신나는 풍물패를 선두로 평등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출발부터 혐오 세력의 방해도 있었지만 평등행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 공원에서 처음 행진이 시작할 땐 2~300명가량이 출발했는데, 5분 정도 내려와 광화문역 사거리에서 행진 대열을 정비하는 동안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본격 출발에 앞서 다양한 사람들이 평등선언문을 한 구절씩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조금은 어수선한 상태에서 음향도 원활하지 못했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의 길은 우리가 만든다’, ‘국회는 평등을 발의하라’는 외침은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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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다

  

행진에 걸린 시간은 총 3시간 30분. 긴 시간 행진을 하는 동안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작할 때부터 행진을 방해하던 혐오 세력의 일부는 국회까지 따라오면서 혐오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경찰은 그런 혐오 세력을 쫓아다니며 가로막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직접 충돌만 막으면 된다는 듯이 혐오 발언에는 어떤 저지도 없이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진을 하면서 늘어나는 대열이 긴 시간 걷기에는 너무 좁은 차선을 내주어 여러모로 불편함도 있었는데요.

  

그렇다고 평등을 발의하라는 목소리는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차선을 내주지 않으면 우리가 스스로 차선을 넓혔고, 혐오 발언이 쏟아지면 더욱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특히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미리 가사를 바꾼 동요 ‘머리 어깨 무릎 발’은 가족차별, 난민혐오, 학력차별, 성적권리, 에이즈혐오, 여성인권, 이주노동자 차별, 장애인 차별, 청소년 인권, 평등한 일터, 홈리스 차별을 가사에 전부 담으며 노래가 11절까지 이어졌는데요. 평등행진을 함께 한 시간이 가사에 나오는 온갖 차별을 끝장내고 다양한 권리가 보장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두고두고 뿌듯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지갯빛 행진

  

행진은 광화문에서 충정로를 통과해 마포대교를 건너 국회까지 이어졌습니다.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함께 퍼포먼스를 할 수 있도록 손 펼침막을 나누어주었는데요. 마침 햇볕도 좋은 날 무지개색의 손 펼침막이 종류별로 여기저기서 흔들리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우리의 행진이 다양성과 평등에 관심 없는 국회를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로 뒤덮으러 가는 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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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질 때쯤 국회 앞에 당도했습니다. 누더기 차별금지법, 무늬만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 만들라는 주장을 외치며 무지갯빛의 사람들이 국회 앞에 모여 외쳤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10년은 국회와 정부에겐 혐오와 차별에 굴복한 시간이지만 우리들에겐 평등으로 나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행진 한 번으로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고 평등한 세상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행진을 계기로 더 이상 국가와 사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외침을 모아낸 자리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초조해하기보다 앞으로를 어떻게 할지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지금껏 모아낸 목소리로 우리가 원하는 차별금지법,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드는 일 지치지 않고 외쳐야겠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평등을 발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