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잠시 멈춘 시간의 힘

지난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전을 하러 나갔을 때다. 맞은편 광화문 세월호 광장 앞에서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분이 수색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고 계셨다. 얼마 전 이곳을 지나갔을 때도 계셨던 분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서명전을 진행하는 시간은 11시반부터 1시까지, 점심식사를 하러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서명을 받기란 쉽지가 않다. 그날따라 기온도 뚝 떨어지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사람들은 더욱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서인지 서명은커녕 선전물을 받아주는 분들도 많지 않았다. 주춤거리는 새 맞은 편 스피커가 울린다. 

“저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입니다. 제 아들은 스텔라데이지호 1등 항해사였습니다. 유조선이었던 낡은 선박을 고쳐 화물선으로 바꾼 게 스텔라데이지호입니다. 철광석을 싣고 가다 남대서양에서 침몰했습니다. 8개월이 되어가지만 전 제 아들이 어딘가에서 살아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배가 침몰한 부근에는 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섬 어딘가에 제 아들이 표류해있습니다. 그곳을 하루 빨리 수색해달라는 서명에 함께 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서명이 큰 힘입니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중요합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어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광장을 지나칠 때마다 그분은 마이크를 들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다시 빨간불, 지나치는 사람들이 없을 때를 틈타 이쪽으로 건너온 그분은 좀처럼 서명을 하고 가는 사람이 없는 것에 안타까워하면서 “나도 함께 해야죠” 하고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서명을 하고 가셨다. 초록불이 꺼지고 다시 빨간불이 켜졌을 때 그쪽으로 건너가 잠시 그분과 이야길 나눴다. 이전에 뵈었을 땐 다른 분들도 계셨는데 오늘은 왜 혼자시냐고 여쭈니 다들 바쁘고 아파서 요즘에는 혼자 서명전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집이 있는 은평구에서 이곳까지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오가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명을 받고 있다고 하셨다. 10만인 서명 중 얼마나 받으셨나 여쭤보니 9만4천 정도 되었다고, 아직 6천명 남았는데 다 채울 때까지 아파도 절대 쉴 수 없다고 하신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 한 사람의 발걸음을 붙들기 위해 말거는 것도 쉬지 않으셨다. “Welcome to Korea”라는 인사와 함께 어떤 사건인지, 지금 이곳에서 받는 서명이 무슨 의미인지 정말 열띠게 이야기하셨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난 외국인들 중에 그냥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전에 이곳을 지나쳤을 때 나 역시 서명만 하고 이동하느라 바빴다. 그곳에 멈춰 서서 그분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같은 이야기를 수천 번, 수만 번, 셀 수없이 반복하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듣는 사람이 없는 것, 반응이 보이지 않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왔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애도의 권리는 멀고 먼 것 같다. 2017년 3월 31일 그날로부터 8개월이 지나는 동안 이분들은 아플 수도 없었겠구나, 누군가의 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잠시 시간과 마음을 내는 것,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지만, 그 작디작은 행동이 그분들에겐 오늘을 딛을 수 있는 위로이고 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죠? 서로 기대는 모습을 본따 만든 게 사람 人자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타인이 안 보이는 시대라는 이야기에 절망할 때도 있었다. 도돌이표 같은 뉴스가 보기 싫고, 누군가의 고통에 점점 무감해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며 두려울 때도 있다. 그분의 말이 바쁜 걸음들을 멈추게 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이 다시 그분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각자가 멈춰서며 낸 ‘잠시’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로 이어지고 또 다시 이어지는 것 같아 보였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분의 말이 계속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