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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백남기의 죽음, 그 가운데에서

지난 9월 25일 결국 백남기 농민이 운명하셨습니다. 고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14일 물대포를 맞아 서울대 병원으로 후송된 후 중환자실에서 317일을 견딘 후였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환자실에서의 경험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고통이라고 전합니다.

2015년 11월 14일 물대포로 쓰러진 고 백남기 님은 해를 보내고 봄을 지나 끝날 것 같지 않던 긴 여름을 넘기고 국회 청문회를 통해,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경찰의 민낯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도록 중환자실에서 견디어 주셨습니다. 비록 중환자실이지만 칠순 생일을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고 백남기 님은 끔직한 고통을 견디며 버티어 주셨다고 전 믿고 싶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고 백남기 님을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지만, 삶을 이어가기 위한 많은 에너지를 쓰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9월 24일 고 백남기 농민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동시에 경찰은 득달같이 서울대 병원으로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는 즉시 행동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지요. 순간, 경찰이 시신을 탈취해왔던 과거의 사건들이 떠올랐습니다. 다들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서 경찰 손에 의해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을 또다시 경찰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모이고 싸웠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를 버틴 결과 10월 28일 경찰은 영장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이 영장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순간, 저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고 백남기 님이 더 이상 차가운 냉동고에 있지 않아도 되고, 가족들이 더 이상 경찰에게 아버지를 빼앗길까봐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해방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엄청난 힘을 보유해야 하는 것처럼 죽을 때도 엄청난 힘을 보유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힘을 축적해야 할 시간을 경찰과 싸우면서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고,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하며, 고 백남기 농민 스스로 삶을 정리할 기회도 있어야 하니까요.

고 백남기 농민이 사망 전후로 한 달 동안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때로는 훼손될 수 있는지 절절하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발자취를 추적해보면,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지점은 불과 연장의 사용이라는 기준 외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죽은 동료를 그대로 두고 떠나거나 곁을 지키는 행위까지 관찰됩니다. 반면 인간은 죽은 동료를 땅에 매장합니다.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경험하며 존재의 유한성을 깨닫고 자신의 죽음을 ‘의식화’ 합니다. 이렇듯 죽음에 대한 감수성은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는 지점이지요.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겪으면서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자신을 존엄하다고 여기는지 혹은 타인을 존엄하다고 간주하는지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았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패륜을 저지르고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는 분명 존엄과 거리가 멀겠지요. 세월호, 메르스, 강남역, 구의역 등 박근혜 씨가 집권하는 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분노와 절망, 슬픔이 우리를 휘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 죽음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생명을 향해 삶을 보면서 가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이 생명의 순환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삶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삶을 돌보는 것은 또한 죽음을 돌보는 것입니다. 삶 자체는 항상 한 조각의 죽음입니다. 죽음을 견디며 다시금 인간의 존엄을 다시금 만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고가 사무치게 다가오는 가을 밤 입니다. 이제 곧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 절차를 시작합니다. 고 백남기 농민을 잘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고 백남기 님이 영면에 이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