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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겨울 지리산에서의 추억

안녕하세요. 사랑방 여러분, 이렇게 돋움활동가 편지를 쓰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연말 잘 보내셨나요. 전 지난해만 해도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경계의 시간을 기다리며 내년의 계획들을 조금 세워보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일찌감치 잠들어서 다음 날 늦게야 깼습니다.ㅎㅎ 1박 2일의 산행 여파 때문이기도 합니다. 겨울산엘 다녀왔습니다. 경남 산청의 중산리에서 시작해 지리산의 천왕봉까지 오르는 여정이었습니다. 지리산의 나무도, 바위도, 폭포도, 산새도 좋지만 가장 바랐던 건 새벽 세 시 고도 1800미터에서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원 없이 보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눈 때문에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등산 이틀째 천왕봉으로 가는 길과 하산하는 길에 새하얀 눈은 원 없이 보았습니다. 눈이 내려 더욱 고요해진 산속을 자박자박 소리만 내며 걷다보니 정말이지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중산리에서 천왕봉 코스로 등산하는 건 2년 전 겨울 이후 두 번째입니다. 그 당시 저는, 히말라야도 다녀왔다던 저라는 사람은, 아이젠도 전등도 없이 그것도 늦게 입산을 한데다 하필이면 지리산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갖게 됩니다. 뭔가에 홀렸는지 대피소까지 0.2km가 남았다는 안내판의 화살표 방향을 잘못 이해하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이미 주위는 어둑해진 뒤였습니다. 대피소와는 반대방향으로 정신없이 내려가기 시작했고 혹시나 길을 잃는다면 오던 길에 보았던 동굴에서 자야겠다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만, 다행히도 먹통이던 휴대폰이 살아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대피소에 연락을 했습니다. 왔던 길로 침착히 올라오라는 직원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 훌쩍거리며 올랐습니다. 살아오면서 가장 길었던 고작 2백 미터였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저를 홀린 그 표지판을 다시 만났을 때 한껏 포즈를 잡고는 사진을 찍었지요!) 어느 순간 위에서 커다란 불빛이 저를 비추었습니다. “거기 사람 있어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직원이 눈부신 빛을 던졌고 한쪽 아이젠도 벗어주었습니다. 조난될 뻔한 것이 인연이 되어 저는 대피소의 직원 사무실에서 따뜻한 커피와 따끈한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저의 멍청함에 대해서도 한창 설교를 들어야 했지요. 그리고 대피소의 대여섯 명의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등산이라는 것도 누군가의 노동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니 처음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만난 이 사람들은 등산객의 안전과 자연 보호를 위해 지리산의 모든 시설들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서비스 노동자이기도 했습니다. 대피소에서 등산객들과 대면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꽤 받는다고 했습니다. 전국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그들의 수많은 요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욕을 먹는 일이 잦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어느 등산객이 추운 날 김밥을 먹어서 체한 걸 따주느라 진땀을, 이 겨울에 정말 땀을 뻘뻘 흘렸다며 껄껄 웃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는 대장이라 불리는 사람이 방문했습니다. 그는 앞니가 두어 개 없었습니다. 그런 얼굴로 한 번씩 웃자 영락없이 산사람이었습니다. 눈이 와서 어느 구간을 다시 손봐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으니 이 큰 산에 이 사람 손이 타지 않은 곳이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그의 얼굴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 법계사에 들렀다가 멀찍이서 그를 보았습니다. 2년 전의 기억들이 환기되는데, 차마 아는 체는 못했지만 어찌나 반갑던지요. 그는 ‘국립공원’이라 적힌 잠바를 입고 법계사에서 사람들과 연등을 달고 있었습니다.

2년 전과 같은 대피소에 다시 묵게 되면서 그때 그 직원들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있더라도 절반은 없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네모난 얼굴에 덩치가 큰 남자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와 단둘이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일이 좋긴 한데 나는 계약직이라서 이후에 어떻게 될진 모르겠네.”라고요. 국립공원에도 비정규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생각이 나서 이번에 기사를 찾아보니 비정규직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였습니다. 안전을 책임지는 국립공원이 전문적인 훈련과 경험을 단절시키는 비정규직을 쓰는 것에 대한 비판 글도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 사람들에게 “국립공원에서도 비정규직을 쓴다.”라는, 다소 거친 말이지만 이 말을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비정규직의 경험이 있던 저로서는 그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거든요.

그는 다른 직장을 다니던 시절 주말마다 산엘 왔다고 했습니다. 산이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만 되면 집에 회사 가방을 던져두고 등산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탔다.”는 이 표현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뒤늦게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도 했는데 한 달에 두 번밖에 집에 못 간다며 웃었습니다. 이젠 얼굴이 가물한데 다시 만나면 알아볼 것도 같습니다. 언제 어디선가 또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2년 전 이들과의 추억이 없었더라면 저는 산을 오르면서도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생각하지 못 했을 겁니다. 평소 무심했던 것에 어떤 사연이 생기고 낯선 얼굴들이 침입하면서 더 이상은 나와 상관없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기회가 생겼을 때 잘 흡수할 수 있는 능력, 또 그런 경험들을 스스로도 만들어가야겠다고 새해에는 다짐해봅니다. 그렇게 더 많은 세계를 만나고 싶습니다.

“연말의 겨울산은 참 좋았어요. 하지만 해돋이는 보지 못 했답니다!”는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한 글이 여기까지 왔네요. 그래도 제 이야기가 주위의 보이지 않던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저보다 여러분들의 감수성이 훨씬 높을 것 같아요 헤헤. 그럼... 부끄러운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려 합니다. 4년 동안 직장을 핑계로 돋움활동가로서는 한 게 없어 민망하고 미안할 때가 많았는데 그런 미안함과 괜한 죄책감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인권 활동마저 손을 놓게 하는 것 같아 늦게나마 자원활동가의 자리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 자리에서 여유를 갖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려 해요. 저의 결심에 따뜻하게 말해준 상임, 돋움 활동가들 정말 고맙습니다. 마음이 약해질 때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도 고마운 거더라고요. 일단은 그동안 잔뜩 움츠렸던 긴장된 마음부터 푸는 것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자주 만나요. 그럼 오래 만나 온 사랑방 친구들, 그리고 아직은 얼굴을 마주하지 못 한 사랑방 사람들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