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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참 깜깜했던 크리스마스

안티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오는데 애인이 없으니 울적하고……. 근데 '깜'에서 안티크리스마스 액션이란 걸 한단다. 오호라? 기발한 듯? 하기도 하면서 이거 솔로들의 열폭아님ㅡ_ㅡ 하기도……. 2008년에도 한 번 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청소년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여성주의 팀에서 하는 10대 여성주의 온라인 커뮤니티 '깜' 에서(헤엑헤엑) 안티크리스마스 액션 팀이 되어 기획을 하게 되었다. 올해 두 번째인 이 액션은 올해 '깜깜한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뚜껑을 여니 안티 커플보다 쫌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우리는 이성애 커플 중심주의, 온정주의, 청소년 보호주의, 소비주의를 까는 것으로 주제를 잡았다. 이성애 커플들을 위한 날이 된 크리스마스, 일 년에 한 번 반짝 하는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딸랑이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에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리에 나설 수 없는 청소년들을 만드는 크리스마스, 기회다 싶어 관련 상품을 마구 팔아대는 덕에 휴가도 가질 수 없이 초과 근무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만드는 크리스마스.

막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는 괜찮았는데, 막상 이걸 어떻게 보여주지? 하고 생각하니 또 막막하고...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말풍선 피켓이었다. 서너 명이 하나의 상황을 나타내는 말풍선을 들고 서 있는 것. 우리는 각 상황에 맞는 말풍선을 만드느라 머리를 쥐어짰다.

['깜깜한 크리스마스' 진행시 사용했던 말풍선들 모음. 사진: 박김형준] <br />

▲ ['깜깜한 크리스마스' 진행시 사용했던 말풍선들 모음. 사진: 박김형준]

['깜깜한 크리스마스' 진행시 사용했던 말풍선들 모음. 사진: 박김형준] <br />

▲ ['깜깜한 크리스마스' 진행시 사용했던 말풍선들 모음. 사진: 박김형준]



말풍선에 간단한 상황을 담고 그 이야기에 대해 발언하는 식으로 캠페인을 했다. 포장지에 구호를 적은 스티커를 붙인 '깜 껌' 을 나눠주고, '밟을 거리'에서 우리가 자근자근 밟아주고 싶은 것들을 적은 종이들을 밟기도 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보려고 멈춰서고, 힘내라고 응원하거나 호응했다. '밟을 거리'를 밟고 지나가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있었고. 내가 로리타양복을 (로리타콤플렉스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입고 갔었는데 어떤 분이 내 모습을 그려주시기도 했다. 두 시간 정도 했는데 나중에는 다들 목이 쉬고 너무 추워서 다들 고생을 했다. 사진에 있던 것처럼 알바몬을 광고하는 알바를 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하기도 했는데, 광고를 잘하고 있나 감시하는 사람들(정말 뜨악했다. 그걸 감시할 인력이 있으면 그 사람이 광고 일을 하면 될 텐데..ㅎㄷㄷ)이 와서 같이 하지 말라고 했다. 씁쓸했다.

[홍대 거리에서 배포했던 '깜 껌'과 전시했던 '밟을 거리' 사진: 박김형준] <br />

▲ [홍대 거리에서 배포했던 '깜 껌'과 전시했던 '밟을 거리' 사진: 박김형준]


세상의 쩌는 것들!

여러 비정규직 알바들의 초과노동이 있어야 빵집에서 케잌도 사 먹고 밤늦게까지 문 여는 술집과 패스트푸드점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완성된다. 기업들은 크리스마스가 대목인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크리스마스는 더 고생하는 날일뿐이다. 마음껏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이성애 커플이고, 솔로는 참 '처량하게' 집에서 TV영화를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커플들이 넘치는 거리가 더 외롭기 때문에. 그리고 동성애 커플의 경우는 모처럼 데이트를 즐겨도 칙칙하게 같은 여자들, 남자들 끼리 몰려다닌다는 측은한(?) 시선을 받기 일쑤. 사람들은 자선냄비에 돈을 넣고는 나는 좋은 일을 했고, 이 세상은 참 훈훈한 곳이라 생각하고는 산뜻하게 다음 1년을 보낸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그런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미지를 타고 정부주관 봉사활동 같은 것도 좀 하고, 정치인들도 기부 비슷한 거 좀 한 다음, 우리나라는 참 복지 좋은 나라라는 뻥을 친다. 청소년들은 '어린 게' 늦게까지 밖에서 싸돌아다니면 안 되기 때문에 일찍일찍 집에 돌아가서 가족하고(꼭 '부모님하고' 지내라고 말하는 사람들 있다.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은 어쩌라고.)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강요당해서 그나마 밤늦게까지 놀 수도 없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다시 학교와 학원에서 쩔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좀 더 발랄하게

거리에서 이런 것들에 관해 우리가 발언을 하면서 참 발랄한 방법이긴 했지만 마냥 발랄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용산참사와 관련해서 말했는데, 너무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안들도 당사자에게는 정말 급하고 절실한 문제인 건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 속에서 간질간질 하는 것들이 올라왔다.

크리스마스는 참 사람이 느슨해지는 날인 것 같다. 이제까지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을 많이 접하지 못한 탓도 있고, 연말이랑 겹쳐서 뭔가 들뜨는 기분이 더해지는 것도 있고, 그래서 주위를 돌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 안티크리스마스 액션을 기획하면서 살짝 반성도 했고, 더 생각해 볼 거리도 얻었다. 우와, 진짜 '깜깜한' 크리스마스다. 진짜 우울한 세상이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준비 모임이 모이기가 힘들어서 마지막에 정신없이 엉성하게 준비했는데 앞으로는 더 빠방하게 준비하고 싶은 욕심도 난다.

10대 여성주의의 가장 큰 무기는 발랄함인 것 같다. 무거운 주제도 거침없이 꺼낼 수 있고, 더 발칙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발랄함은 사람들에게 더욱 잘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된다. 그 발랄함이 내용의 가벼움이 되지 않도록 충분히 경계해야 하는 면이 있지만. 이 세상의 '쩌는 것들'을 좀 더 발랄하게 깔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2009년 12월 24일 10대 여성주의 온라인 커뮤니티 <깜>에서 진행했던 안티크리스마스게릴라액션 시즌 2 <깜깜한 크리스마스> 후기입니다.

[끄덕끄덕 맞장구]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생일일 뿐이다. 더군다나 확실한 생일도 아니고,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혹은 조작된) 생일이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간, 언제나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그 분은 이런 휘황찬란한 생일상을 아마 걷어 차실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생일상의 주인은 원래부터 그 분이 아니었던 거다. 여성들이 뼈 빠지게 고생하며 차린 제사상이 결국은 편하게 노닥거리던 남성들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고단해도 크리스마스만 되면 모두가 따뜻할 것 같고, 모두가 축복받을 것 같다. 딸랑이는 종소리, 자그마한 선물 바구니, 해맑은 웃음소리, 행복해하는 연인들. 이 훈훈한 크리스마스 풍경은 도대체 누구의 작품일까. 이 신비로운 기적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의 노동이다. 부드럽고 달콤해 한 스푼만 먹어도 온몸을 전율케 하는 그 케이크도, 그리하여 만면에 띄우게 되는 그 웃음도, 가장 아래에 있는 존재들이 소비자들에게 판매한 축복이다. 이것이 기실 '보이지 않는 손' 이다. 누구도 보려하지 않기에 삭제되어 버린 그 손들이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신비를 빚어낸다. 공인된 빨간 날에도 쉴 수 없는, 아마도 더욱 손놀림이 바빠질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외된 노동을 까발리기 위해 우리는 홍대 거리로 나섰다.

멋들어진 크리스마스 풍경은 어디까지나 설정이다.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건 뺀다. 예쁘고 잘생긴 선남선녀 이성애 커플, 엄마 아빠 손잡고 이곳저곳 둘러보는 아이로 구성된 '정상 가족'은 많을수록 좋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커플은? 찐하게 키스하는 레즈비언 커플은? 딱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청소년들은?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거나, 나오더라도 금방 들어가야 한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라지만, 돈이 있어도 '불편한' 존재들은 거리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이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될 수 있으니까. 이 얼마나 편안한 계산인가? 그런데, 돈마저 없다면. 이 그림에 포함될 최소한의 전제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 정답은 사진 속에 있다.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만 되면 선물 보따리와 함께 찾아오는 부자 손님들의 인증샷 찍기.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크리스마스가 조금은 떠들썩해지는 순간이다.

크리스마스가 불편해 모인 사람들이 어느덧 2년째 안티크리스마스 게릴라 액션을 벌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급진적 구호는 외치지 않는다. 가뜩이나 줄어드는 빨간 날, 이마저 없앤다면 얼마나 안습인가. 다만, 좀 다르게 보내자는 것이 우리의 취지다. 자본에 찌든 크리스마스가 걸어오는 주문을 까버리고, 많은 이들이 자연스레 거리로 뛰어나오는 이 날, 운동적인 깜을 한번 키워보자는 거다. 돌아오는 2010년 크리스마스를 깜깜하게 보내고 싶은 분들은 10대 여성주의 온라인 커뮤니티 <깜>에 흔적 남겨주시길. 한 해 동안 각자 까다가 크리스마스에는 함께 까는 신비를 경험해 보자.
-한낱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덧붙임

둠코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