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대다그대

내인생의 복면

정록

복면까지는 모르겠고, 어렸을 때는 가면 놀이를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귀에 고무줄 끼울 수 있게 팔았던 각종 동물 마스크, 프로레슬러 마스크 생각이 난다. 왠지 그 때는 순진하게 그런 가면을 쓰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진심으로) 행동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가면이나 복면이 없어도 스스로 복면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바람소리

얼마 전 한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자기 신분도 잊은 채 시위하는 시민들을 테러를 일삼은 IS에 빚댔다. 그러면서 복면을 쓰고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분노한 시민들이 집회 때 마스크와 가면을 썼다. 집회에 참여했던 친구의 딸은 가면들이 너무 기발해서 재밌었다고 했다. 대통령의 막말 덕에 사람들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나 누릴 수 있는 가면축제를 한바탕 벌인 셈이다. 그래도 정부여당의 비상식적인 발상을 누르기 위해선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지 모른다.

 

ㅎㅊ

영화 반칙왕에서 송강호는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밤에 프로레슬링 링에 오르면 낮에 직장상사에게 갈굼당하던 모습과는 달라진다. 그에게 마스크는 외면, 내면적인 변화를 준다. 나도 그런 마스크를 가지고 싶다. 평소의 나를 넘어설 수 있는 그런 마스크~.아 마스크 하니까 20살 무렵 갔던 집회에서 만난 마스크 아저씨가 생각난다. 통일운동 집회에서는 통일 마스크~ 이러다가, 노동자 집회가면 해방 마스크~ 이렇게 외치던ㅋㅋ 잘 지내시고 계시려남..

 

초코파이

예전에 달빛시위라는 것이 있었다. 그 취지도 좋았지만 함께 분장을 하거나 가면을 쓰고 밤거리에서 즐겁게 행진하는 것이 참 좋았다. 특히 집회이지만 결연한 무언가를 해야 할 거 같은 정형에서 벗어나 무언가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가 좋았던 듯. 그 전에 기억을 굳이 떠올리자면 사수대할 때 복면을 썼던 것밖에 없던 나로서는 더더욱 ;;;;

 

복면? 복면가왕이 먼저여야 하는데 복면금지법부터 생각나다니! 이런...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제정일에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2015 인권의 그날들'을 발표하는 자리 제목이 "못살겠다 갈아보자" 성토대회였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니! 별 감흥이 없었던 이 구호가 이렇게 와닿고 지르고픈 외침이 될 줄이야! ㅠㅠ 정말! 못살겠다!!! 갈아보자!!! 제발!!!

 

미류

가면 하면 가면놀이가 생각나는데 복면 하면 복면강도가 생각난다. 집회나 시위에서 사람들이 곧잘 끼는 마스크를 굳이 ‘복면’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미 의도가 있다. 그런데 복면은 ‘남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헝겊 따위로 얼굴을 싸서 가림’을 뜻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 야구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칭칭 둘러감았던 직원 김하영 씨야말로 복면의 정의를 보여준 듯한데…….

 

승은

경찰이 물포로 백남기 어르신을 쓰러뜨리고도 연일 정부와 보수언론은 집회참여자들이 밧줄로 차벽을 당기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이 때 새누리당이 집중한 것은 집회참여자들의 복면, 이들은 곧바로 복면금지법(복면을 착용한 사람을 더욱 높게 처벌하는 집시법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이어 시민들은 2차 민중총궐기에서 복면금지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다양한 복면을 쓰고 집회에 왔다. 집회 참여자를 채증하는 경찰에 맞서 최소한 나의 신원을 경찰이 확인하지 못하도록 불복종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만들어놓은 덧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나의 우리들의 유쾌한 저항을 보여주었다.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는 정부에 맞서 그들의 말을 희화화하는 우리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구석진

중국에서 '변검'이라는 전통 예술을 본 적이 있다. 아마 많이들 알텐데...변검은 전통 복장을 하고 얼굴에 전통 가면을 쓰고 춤을 추다가 수시로 가면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전혀 손을 안 대고 가면(얼굴)을 휙휙 바꾼다는 것이다. 변검의 기술은 중국에서 국보로 지정해 놓아서 지금도 외부인들에게는 절대로 비밀로 하고 있다나.(확인해보진 않았다) 직접 보니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마음대로 얼굴을 바꿀 수 있을까. 과연 진짜 얼굴은 뭘까. 진짜로 복면을 쓰고 있는 건 시위 참가자가 아니라, 정치인들, 국가 정보기관 직원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