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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 김관홍 민간잠수사를 보내며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양심으로 간 게 죄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타인에게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와 수습 과정에 참여했고, 이후 민간잠수사 피해 인정과 진실 규명 작업에 적극 참여하였던 김관홍 잠수사가 지난 17일 우리 곁을 떠났다. 많은 죽음과 이별이 그렇겠지만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움과 미안한 맘이 섞여드는 이유는 현실에서 그를 답답하게 했던 일들이 전혀 해결되지 못한 채 그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말은 그가 작년 9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남긴 말이다. 저 말 속에 담긴 분노와 울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민간 잠수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민간잠수사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우리에게 남은 과제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국민이니까, 내 직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나선 길

2014년 4월 16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탄 배가 침몰되었다. 그러나 이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수많은 목숨을 빼앗고 안전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 참사로 바뀌었다. 대형 참사에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이들도 많았다. 고(故) 김관홍 잠수사를 비롯해 많은 민간잠수사들이 그런 마음으로 팽목항에 모였다. 당시 해경은 수백 명의 잠수사들이 구조 및 수습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수십 명의 민간 잠수사들에게 그 몫이 떠넘겨져 있었다.

당시 한 잠수사는 “다이빙 끝내고 와서, 그 때 날씨 추웠거든요. 4월 달에 굉장히 추웠으니까 어디 편하게 쉴 공간이 없었습니다. 식사도 마찬가지”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민간잠수사들은 하루에 한 번 내려가는 것도 부담이 되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해야 했다. 알면서도 나선 길이지만 수많은 시신들을 수습하는 과정은 그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세월호 같은 경우는 수십 구, 많게는 수백 구를 다 그걸 봤으니까, 얼마나 기억이 납니까 ……. 무슨 지나가다 그런 비슷한 일도 있을 거구 ……. 누군 아디다스 추리닝만 봐두 미쳐 버리겠다구 얘기할 정도니까.”

대형 참사는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해서 극복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민간 참여는 보장되어야 하며 이들에 대한 적절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기구의 의무이다. 특히나 수난 구호 명령을 내렸던 정부는 작업 환경의 안전성과 그들이 겪게 될 육체적, 심리적 피해에 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는 무시된 채 민간 잠수사의 헌신만이 강요되었고 결국 한 잠수사의 죽음과 수많은 잠수사들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고(故) 김관홍 잠수사도 잠수병과 트라우마로 인해 잠수사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양심이 죄가 됨을 확인한 순간

해경은 작업 계획이나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민간 잠수사들의 전문성은 무시한 채 그 때 그 때의 고위층과 언론의 관심에 휩쓸려 예정된 작업 동선을 맘대로 바꾸면서 즉흥적인 작업에 민간잠수사들을 계속 투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故) 이광욱 잠수사가 사망하자 해경은 도리어 당시 민간 잠수사 중 고참이었던 공우영 잠수사에게 책임을 덮어씌워 기소하였다. 1년이 넘는 재판 과정을 통해 그의 무죄는 입증되었지만 그 긴 시간동안 민간잠수사들은 “양심이 죄가 되는” 상황을 경험해야 했다.

“억울한 것들이 많죠. 공0영 선배님은 재판까지 받으니까, 우리는 조심스러워요. …… 그 때(선고 때) 무죄 재판 나오고 우리는 잘못이 없다고 입증되면 그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이죠.”

이 과정에서 민간 잠수사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인권 단체, 언론을 찾아다니며 세월호 참사 당시의 열악한 상황을 알린 것은 이후 진상 조사 과정에서 주요한 단초가 되었다. 그럼에도 민간잠수사들은 시신을 가지고 수백만 원씩 돈놀이를 하는 파렴치한이라는 잘못된 여론에 고통을 받아야 했다. “가장 화가 났던 게, 니네 거기서 그렇게 돈 많이 벌었대매, 이 소리. 아 그래 가지고 같이 술 한 잔 먹다가 싸운 적도 있어요. 그 민정 수석 말 한 마디에 모든 그걸 봤던 사람들은 니들 한 구에 오백씩 받았다, 라고 아직까지도 알고 있는 거야.” 정부는 이렇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공감대로 나선 사람들의 존엄을 철저하게 짓밟았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어떠한 사과와 반성도 없다.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들

정부는 수난 구호 명령을 내려 민간잠수사들을 불러 모았지만 국제 기준보다도 낮은 수준의 수당을 책정했다. 이마저도 일부 민간잠수사에게만 지급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빌미로 고(故) 이광욱 잠수사의 의사자 인정도 거부하였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구실로 이들에 대한 치료비 지원도 몇 달 만에 중단시켰다. 김관홍 잠수사를 비롯해 잠수병, 골괴사, 트라우마 등으로 고통 받던 민간잠수사들은 의사상자로서 적절한 피해를 보상받지 못함은 물론 떼를 쓰는 민원인으로 취급당하였다. 이후 제정된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서도 민간 잠수사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김관홍 잠수사도 피해 회복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의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등에 내몰렸다. “생활. 생활이 안 되고 있습니다. 팔 개월째, 구 개월째. 지금 생활을 아예, 뭐, 없으니까. 그게 가장 힘들죠.”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생계에 대한 압박 속에 피해는 점점 더 곪아갔고 그 결과가 또 다시 누군가의 죽음으로 확인되는 잔혹함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치유와 회복을 위한 권리는 피해 당사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이다. 배상은 단순히 그/녀를 피해자로 대상화함을 넘어 동시에 권리의 주체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또한 피해자 지원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피해자들이 최대한 사고 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전반적인 것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성이 보장받고 배제와 차별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민간잠수사를 비롯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지금 당장 보장되어야 할 권리들이다.

모두의 노력으로 참사를 극복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 당시 김관홍 님을 비롯한 많은 민간 잠수사가 인명 구조와 수색을 위해 현장을 찾았다. 또한 진도 어민들도 일손이 끊기는 것을 감수하면서 세월호 생존자를 구조하고 세월호 수습을 도왔다.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수백 명의 시신을 수습하고, 가족과 친구를 찾는 애끓는 마음들을 계속 지켜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이들도 참사의 피해자이다. 이들이 피해자로서 인정받고 그들의 헌신을 존중받을 수 있을 때 참사가 구성원 모두의 노력 속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감각이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그동안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을 대상에 포함시키는 피해자지원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늦었지만 더 이상의 아픔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세월호 유가족이 고(故) 김관홍 잠수사에게 건네었던, 그 분 스스로 가장 마음이 치유되었다던 말, 그런데 우리는 자주 하지 못했던 그 말로 글을 마무리 하려 한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덧붙임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